피난 놀이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와의 추억 이야기

by소임

"엄마 어릴 때도 닌텐도가 있었어요?"


게임을 좋아하는 중학생 첫째가 문득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다.


"음... 엄마가 좀 컸을 때는 게임 보이라고 비슷한 게 있긴 했는데, 엄마는 게임을 안 좋아했어."


"그럼 하루 종일 뭐 하고 놀았어요?" 아들은 마치 외계인과 대화하듯 궁금해하며 물었다.


"엄마? 음... 피난 놀이?"



모든 사람들이 피난 놀이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랑 함께 무엇을 하고 놀까 생각하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피난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피난 놀이? 그게 뭐야?"

"피난 놀이! 피난 가면서 숨어 있고 먹을 거 구하고 이런 거. 너 몰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친구 얼굴이 생각난다. 나는 답답하다는 듯, 얼른 침대 위 이불들을 들고 와 피아노 위부터 의자 아래까지 덮었다. 그 안에 쏙 들어가서 친구에게 손짓했다.


"얼른 들어와! 북한군이 쳐들어온대!!!"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불 덮인 피아노 아래로 기어 들어왔다.

어린 시절 나는 누구나 피난 놀이를 하면서 큰 줄 알았다. 할머니는 영양가 없는 음식이라며 과자는 잘 사 주시지 않으셨고 식탁에는 언제나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의 따끈한 간식들이 보리차와 함께 놓여 있었다. 이불로 둘러싸여 작은 동굴이 된 피아노 아래에서 나는 한참을 숨을 죽이며 앉아 있다가 마치 영웅이라도 된 듯 조용히 말했다.


"내가 나가서 음식을 좀 구해 올게."


그리고 낮은 자세로 피아노 동굴을 나와 바카라상 아래로 잽싸게 기어 들어갔다.


"휴, 하마터면 들킬 뻔했네..."


할머니는 주방에 계셔서 거실엔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경계를 풀지 않고 문 뒤에서 상황을 주시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손짓했다.


"지금이야! 여기 아무도 없어. 얼른 뛰어와."


어리둥절한 친구는 엉금엉금 피아노 아래에서 기어 나와 내 옆에 섰다. 나는 재빠르게 식탁에 있는 고구마와 감자를 내 옷 속에 넣고는 또다시 낮은 자세로 피아노 동굴 아래로 잽싸게 들어갔다.


"빨리 와, 빨리! 들키면 안 돼!"


피아노 동굴 안에서 나는 친구와 고구마도 까먹고 감자도 까먹었다. 중간중간 이불 밖 상황을 체크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원래는 밤에 보초 서는 것까지 해야 하지만 그날의 피난 놀이는 일찍 마무리되었다. 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먹을 것을 구하고, 멀리 혼자 남겨진 아이들을 구하고, 동굴에 숨겨 주기도 하는 정말 스펙터클한 놀이인데 이상하게 친구와 할 때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아마 피난 놀이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친구의 눈초리에 의기소침해진 탓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나에게 피난 놀이는 단순한 상황극에 지나지 않는 재미있는 놀이였지만 할머니께는 그게 실제 인생이었을 것이다. 나의 피난 놀이 중 어느 부분이 내가 상상한 것이고 어느 부분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구현된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 땅을 파 고구마와 감자를 캐어 먹는 건 아마 내가 들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할머니는 원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분이라 나는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단지 많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 학교 가는 아이들이 부러워 손가락으로 애꿎은 땅만 파며 쳐다보니 할머니의 아버지가 "니도 학교 가고 싶나?" 하셨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 덕분에 학교를 다녀서 그래도 글도 읽고 쓸 수 있다고 종종 말씀하셨던 것, 그뿐이다. 할머니는 내가 학교에서 받아온 커다랗고 동그란 손잡이 돋보기를 들고 늘 신문을 읽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할머니 아부지 덕에 핵교를 댕겨서 할머니가 글도 읽고 쓰고 할 수 있어. 소임이도 핵교 잘 댕기지? 공부 잘하지?"


할머니는 원체 체구가 작으셔서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메던 가방과 장갑이 할머니께 맞을 정도였다. 색이 바래고 낡아 내가 더 이상 쓰지 않는 옷이나 물건 하나 할머니는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다. 내가 중학생쯤 되어 할머니 댁에 내려갔을 때 나는 내가 초등학교 때 쓰고 버린 노란색 장갑과 파우치를 할머니께서 아직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새 옷과 좋은 가방을 사 드려도 할머니는 언제나 철 지나고 때 지난 제일 낡고 닳은 것들을 사용하셨다.


"엄마, 안 쓰면 결국 버려요. 그냥 좋은 거 좀 쓰셔."


우리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보며 정말 답답해 죽겠다는 듯 한숨 섞인 어투로 말했다.


"아휴... 박씨 고집은 못 말려, 진짜."


할머니는 늘 쓰던 것, 낡은 것을 고집하셨지만 나에게는 그러지 않으셨다. 대학생이 되어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할머니는 장롱에서 안 입은 내복과 양말을 꺼내어 주셨다.


"소임이 가져가. 난 안 가져." 할머니는 일부러 새 내복과 양말을 바닥에 툭 던지며 마치 애물단지 보듯 나에게 밀어버린다. 정말 갖기 싫은 거라 주는 거라는 듯.


"왜 안 가져, 할머니. 할머니도 새것 좀 쓰세요. 맨날 왜 헌것만 써."


내가 할머니께 쓰시라고 하자 고개까지 획 돌려버린 할머니는 또다시 나에게 새 옷을 밀어버린다.


"난 싫어. 소임이 다 가져. 다 가져가."


나는 그런 할머니를 답답해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또 그런 할머니도 이해한다. 나는 그 당시 할머니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시대였을 것이다. 입고 먹고 자는 것이 다 부담이던 시대. 할머니는 그 시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고 그런 시대를 살아남은 지혜로 남은 인생을 사시고 계신 것뿐이었다.



미국에서 할머니를 보러 급히 돌아온 손녀를 보고 할머니는 기뻐하셨다. 거동이 불편해 뛰어나오진 못하시지만 할머니의 마음만은 이미 버선발로 마당까지 뛰어나오신 것이 느껴졌다.


"아이고 우리 소임이. 우리 소임이 왔네. 우리 소임이 왔어. 오느라 고생했지? 힘들었지? 할미 본다고 오느라?"


할머니의 치매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지만 다행히 최근의 기억부터 사라지는 것이지 오래된 기억들은 여전히 잘 간직하고 계셨다. 오래 앉아 계신 것도 불편하신 할머니가 젊은 손녀 걱정을 먼저 하신다.


"할머니 주려고 내가 목도리 사 왔어."

미국에서 올 때 급하게 사 온 털 목도리를 할머니 목에 두르며 말했다.


"아휴, 뭣 하러 이런 거 사 와. 돈 들게. 할머니 이런 거 장롱에 잔뜩 있어. 너나 해 너나. 밥은 먹었어? 이제 밥 해 먹을 수 있어?"


여전히 새 물건 쓰는 것이 서툰 할머니는 목도리를 내 손에 도로 쥐여 주시며 벌써 애 둘 엄마가 된 손녀에게 언제나 밥은 해 먹을 수 있냐고 연신 물으신다.


"그럼, 나 밥 잘해, 할머니. 나 돈도 벌어."

"응, 그래야지. 밥 잘해 먹고살아야지. 우리 소임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할머니는 연신 내 등을 쓰다듬으신다. 이제는 안 그래도 작은 체구가 더 작아져 내 둘째 아이보다도 훨씬 작은 우리 할머니가 이제는 할머니보다 훨씬 커진 손녀를 아기 보듯 보시며 주문 외듯 말씀하신다.

그날 나는 할머니 손을 연신 쓰다듬었다. 살아온 세월이 보이듯 거칠고 투박한 손.

두껍고 투박한 할머니 손 위에 아무 상처 없는 나의 흰 손이 한없이 미안했다.


"할머니가 나 잘 키워 줬잖아. 그래서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할머니 고마워. 할머니 덕분에 내가 잘 컸어."


할머니는 내 손 위에 본인 손을 얹으셨다.


"아녀.소임이는 원래가 최고루 이쁘고 잘했어. 원체 잘했어."


새 물건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노력마저 나한테 다시 돌려주는 할머니. 할머니 말씀처럼 나는 잘난 사람도 세상 똑똑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돌고 돌아 돌아온 할머니 품 안 세상에서 난 다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할머니 옆에서 눈물을 꾹 누르고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니야 할머니. 할머니가 늘 그렇게 말해줘서 그런거지...할머니가 늘 그렇게 말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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