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와의 추억 이야기
"너는 나이답지 않게 할머니 같은 면이 있어."
첫째 아이가 두 돌이 넘었을 무렵, 수제비를 작은 그릇에 덜어 놓는 나를 보고 동네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수제비 너무 먹고 싶었다며. 없으면 또 끓여 줄 테니까 덜어 놓지 말고 그냥 너 다 먹어."
나는 머쓱하게 웃었지만 결국 덜어 놓은 수제비는 내 아이가 식사를 다 마칠 동안 먹지 못했다. 20대 중반,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나는 어찌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받아 온 사랑을 그대로 물려주고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나보다 먼저 식사를 하신 적이 없었다. 식탁이 있었지만 티브이 앞에 앉아 밥 먹는 걸 좋아하던 나를 위해 언제나 작은 밥상에 따로 식사를 준비해 주셨는데, 철없던 나는 할머니께서는 왜 나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으셨는지 잘 알지 못했다.
"아~~~~~" 소리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꽁치와 밥이 숟가락 비행기를 타고 입 안으로 쏙 들어왔다. 티브이를 보다가 힐끗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반찬이 올려져 있으면 입을 꾹 다문 채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얼른 반찬을 바꾸고 다시 숟가락 비행기를 입 안에 넣어 주었다. 나의 눈은 티브이에 나오는 만화에 집중되어 있었고 할머니의 눈은 언제나 오물오물 먹고 있는 나의 입에 집중되어 있었다. 음식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또 다른 숟가락 비행기가 내 입 앞에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더 이상 먹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제야 할머니는 내가 남긴 밥에 물을 말아 남은 반찬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머리만 남은 생선을 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생선 머리가 맛있나?'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
나는 그것이 불효인지도 모르고 오랜 시간을 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첫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20대 중반 첫아이를 낳고 나는 많이 힘들었다. 나이가 무색하게 출산 후 몸이 많이 안 좋았던 나는 워낙 없던 체력에 머나먼 미국 땅에서 공부하며 아이까지 키우느라 이미 신체 나이는 30대가 넘었던 것 같다. 요리는커녕 설거지도 제대로 해 보지 않고 컸던 탓에 아이를 위해 몇 가지 음식을 만드는 것 이외에 요리를 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지도 못하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또는 내가 못 하는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바로 먹지 못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지만 혹시 내 아이가 이 음식을 좋아한다면 바로 줄 수 있게 언제나 맛있는 음식은 덜어 놓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겨 버렸다.
그날도 동네 언니가 끓여준 수제비 한 그릇의 1/3은 따로 덜어 놓고 밥을 먹던 중 언니의 말에 문득 나에게 살을 다 발라 주고 남은 생선 등뼈를 입으로 발라 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도 아니었고 할머니께서 특별히 생선 뼈를 좋아하셔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혹여 내 새끼가 더 먹고 싶어 하면 더러워지지 않은 음식을 바로 주고 싶은 그 마음.
엄마는 종종 할머니께 버릇없어진다며 나를 너무 오냐오냐하지 말라고 하셨다. 엄마가 그 말을 하시는 순간에도 티브이 앞에서 입만 "아~~~" 벌리고 있던 어린 내가 생각난다. 그러면 할머니는 언제나 내 엉덩이를 두드리시며 말씀하셨다.
"오냐오냐 안 해. 우리 소임이가 을매나 착한데. 할머니는 오냐오냐 안 하지~내 새끼 이뻐~ 최고루 이뻐~"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 밥을 먹일 때 종종 그때의 할머니가 떠오르곤 했다.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한없이 다정하고 인자하셨을까? 어떻게 매끼 그렇게 먹여주셨을까?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할머니의 참을성의 반의 반도 없는 나에게 알아서 잘 먹는 아이들이 태어난 게 참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엄마 말대로 내가 너무 오냐오냐 자라서 오히려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못 해 주는 건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못 해 주는 그리고 미국에서 먹기 힘든 수제비를 행여 내 아이가 더 먹고 싶어 할까 봐 떠서 따로 덜어 놓는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 내가 받은 그 오냐오냐들이 내 몸에 새겨져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있구나.'
나는 지금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식사 전 조금 덜어 놓는 습관이 있다. 할머니처럼 아이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지는 않지만 혹여 내 아이가 더 먹고 싶으면 언제나 깨끗한 음식을 더 주고 싶다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하곤 한다.
친한 언니들과 내 땡깡 많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던 중 한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소임아, 오은영 박사님이 들으면 안 될 이야기다 ㅎㅎ"
나도 만약 누군가 내가 큰 것처럼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저렇게 키워도 되는 거야?" "이기적인 어른으로 잘못 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할머니의 육아법은 요즘 시대의 기준에서 보면 잘못된 육아일 것이다.
육아의 달인도 육아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정답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의 그 깊은 사랑을 피부로, 가슴으로, 온몸으로 느끼고 흡수하였다. 방법이 어찌 되었든 내가 느꼈던 따스한 사랑은 나의 몸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고 나는 그 힘으로 오늘을 또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