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문동 봉주르 아파트 1부: 아파트 재건축 전
“어머, 명 대표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이 작가님. 아 참, 먼저 입주민들끼리 인사들 나누세요. 이쪽은 제가 좋아하는 이 북카페 사장님이신 ‘이미라’ 작가님. 이 청학서점이 밀양에서 60년이 넘은 거 아세요? 가업을 이어 운영하고 계신 대단한 분이랍니다. 게다가 꽤 유명한 작가이시기도 하고 우리 아파트 입주민이세요. 그리고 이쪽은 우리 아파트 회장님이신 공정한 회장님 그리고 부녀회장님과 총무님.”
“아, 이번에 당선되신 젊은 회장님! 안 그래도 어떤 분인지 궁금했는데 사진보다 훨씬 더 젊으시네요. 앞으로 우리 아파트 잘 부탁드려요. 부녀회장님, 총무님도 처음 뵙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미라 대표는 큰 눈망울에 서글서글한 미소로 모두를 반겨주었다.
“주문하시고 2층 카페로 올라가 계시면 제가 가져다드릴게요.”
청학 북카페는 1층은 서점, 2층은 카페로 분리가 되어 있어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서 진절희와 유별라, 명백화 그리고 정한은 마치 비상대바카라위원회가 결성된 것처럼 앉아 대바카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부녀회장님께서 배 소장님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저도 겪어봐야 한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오늘까지 겪어본 결과 거의 확신이 서네요.”
“그렇다니까요, 회장님, 제가 괜히 회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렸겠어요? 저랑 총무는 참말로 지긋지긋합니더.”
진절희는 정한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봤을 때, 이번에 공 회장님 같은 분이 나와주신 건 우리 아파트의 천운입니다. 공 회장님 같은 분 계실 때 확실히 정리해야 할 거 같네요. 이건 뭐 회의도 개판이고…… 무엇보다 아파트 커뮤니티 하나 만들자고 하는데 부결이 되는 것도 충분히 의심이 가고요. 저는 비록 부녀회도, 동대표도 아니지만 결심했습니다. 공 회장님 같은 리더가 있다면 뭐든 돕겠습니다. 부녀회장님, 저 아시죠? 공직에 오래 있었던 거. 제가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예요.”
명백화는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단단한 뼈대로 연결된 것처럼 견고함이 느껴졌다.
“좋네요. 이렇게 함께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저도 회장으로서 한번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우리 아파트에 오랫동안 썩어 있던 부분, 이번엔 확실히 도려내고 투명한 아파트 한번 만들어 봐야겠네요.”
월급을 받기 위해 얼떨결에 시작한 아파트 회장이 정한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 같았던 조직이라는 끈적끈적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회장님,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무엇보다 배임각이 그놈을 먼저 쳐내야 해요. 그놈만 쳐내면 다른 동대표들은 자연스럽게 나가떨어질 거거든요. 배 소장 그놈이 나이 많은 동대표들 비위 살살 맞춰가며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다니까요!”
유별라는 팔을 걷어붙여가며 정한에게 역설하기 시작했다.
“저도 소장 교체에 이제 동의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사람을 내보내는 게 쉽지 않은 문제예요. 혹시 부녀회장님이나 총무님 그동안 모아둔 증거 같은 거 있으신가요?”
“의혹은 넘치는데 뚜렷한 증거가 없긴 해요.”
“흠, 그럼 일단 어떤 의혹이 있는지 말씀해주실래요?”
“너무 오래된 사건은 넘어가고 최근에 있었던 거 하나 말씀드릴게요. 아파트에 보면 방치된 자전거가 많잖아요? 우리 아파트도 작년에 자전거 정리를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또 폐자전거 수거업체를 알아봤죠. 그랬더니 한 대당 3천 원이나 주고 가져간다는 업체가 있는 거예요. 그때 폐자전거가 육십 대 정
도 됐는데 그럼 돈이 얼마예요? 18만 원이나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배 소장한테 이런 업체가 있으니까 이 업체랑 얘기해보라고 했더니,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 있죠? 그러더니 어느 날 자전거가 싹 처분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배 소장한테 따졌죠. 자전거 다 어쨌냐고. 뭐라는 줄 알아요? 돈 준다고 해도 가져간다는 업체가 없어서 그나마 자기가 무상으로 가져가겠다는 업체 찾아서 처분했다는 거예요. 제가 분명 한 대당 3천 원을 준다는 업체 연락처가 적힌 전단지까지 줬는데도 말이죠!”
유별라는 다시 부아가 치미는지 아이스커피를 들이켰고, 진절희가 말을 받아 이어갔다.
“그래서 제가 그걸 막 따지고 들었죠. 당신이 뭔데 마음대로 처분하냐꼬. 팔아묵고 그 돈 당신 주머니로 들어간 거 아니냐꼬. 수거해 간 업체 어디고? 이름 대라. 내가 직접 그 업체에 확인할 끼다. 이렇게 계속 파고드니까 배 소장이 뭐라는 줄 아세요? 지가 자전거 싣는다고 고생한 직원들 밥이라도 사주게 사정사정해가 5만 원을 받았고, 그 돈으로 직원들 점심을 샀다는 겁니다!”
“완전 독단전행이네? 그러면 자전거 판 돈 지가 먹은 거나 다름없잖아? 이건 횡령이자 배임이지! 이 인간 진짜 안 되겠네! 자전거 도둑놈이 따로 없구만!”
아까까지 차분한 태도였던 명백화는 자전거 사건에 관한 얘기를 듣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배 소장님이 확실히 5만 원을 받았고, 그렇게 썼다고 얘기했다는 거죠?”
“네, 게다가 제가 이거 미친 거 아니냐고 전 회장이랑 동대표들한테 얘기하면서 횡령죄로 고발해야 칸다고 그래 얘길 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데예.”
“이건 좀 심각한 문제네요. 제가 배 소장님에게 직접 물어볼게요. 얼마가 됐든 이건 아파트 수입이죠. 게다가 무상으로 처리를 했든 아니든 입대의 의결을 거쳐서 동대표들이 결정해야 하는 거지 소장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죠. 회의 기록도 추궁하겠습니다.”
정한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일성전자에서 자주 보였던 그 표정을.
“소장님,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아, 커피는 됐습니다. 그냥 앉으세요.”
다음 날, 정한은 아침 일찍부터 배 소장을 찾았다.
“소장님, 작년에 폐자전거 육십 대 처분하신 거 기억하시죠?”
“아이고마, 또 그 얘깁니까? 부녀회장님이 또 그랍디까? 제가 진짜 자전거 때문에 속이 디비집니데이. 돈을 준다 캐도 가져간다는 업체가 없어가, 제가 예전 아파트에서 알던 업체에 사정사정해가 그나마 돈도 안 받고 수거해 갔는데, 그걸로 지를 고마 쥐잡듯이 잡데예. 그카면 자기가 알아보고 처분하지! 아무도 안 가 갈라 카는 거 처분해줬으면 고맙다 캐도 시원찮을 판에…….”
“아, 지금부터 녹음 좀 할게요. 동의하시죠? 이 업체, 부녀회장님이 찾아서 알려주신 거 아니에요?”
정한은 핸드폰 녹음 기능 킨 것을 배 소장에게 보여준 뒤, 그 당시 부녀회장이 배 소장에게 보여줬다는 폐자전거 수거업체 전단지 사진을 들이밀었다.
“아이고야……. 내 미치뿌겠데이. 회장님, 이 업체 지도 다 알아봤심더. 직접 와가 자전거 상태 보디만 안 가져간다 해뿌는 거라예. 지가 와 연락 안 해봤겠심꺼.”
“그러셨구나……. 고생하셨겠네요. 그럼 소장님이 아는 업체 통해서 처리하면서 5만 원 받으셨다던데 맞아요?”
“그거는예. 자전거를 팔아가 나온 수입이 아니고, 제가 직원들 밥이라도 사주게 달라고 사정해가 받은 겁니더. 업체 사장이랑 지가 그래도 아는 사이라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고 더운데 고생한다카면서 직원들이랑 시원한 냉면이라도 한 그릇씩 하라고 준 거라예.”
“그러니까요, 업체에서 받은 돈이 맞냐고요.”
배 소장의 변명을 듣던 정한은 안경을 벗으며, 목에 들이댄 칼날 같은 눈빛으로 배 소장에게 물었다.
“맞긴 맞는데…… 자전거를 판 돈은 아니…….”
“저기요. 배 소장님. 제 질문에 ‘예’ ‘아니요’로만 답하세요. 뒤에 구질구질하게 뭐 갖다 붙이지 마시고. 다시 물을게요. 자전거를 수거해 간 업체로부터 5만 원 받으셨죠?”
“네…….”
“그리고 그 돈으로 직원들이랑 식사를 하신 거고요?”
“네…….”
“자전거 수거업체를 그 업체로 정한 경위는 뭡니까? 입대의 의결에서 정했어요?”
“입대의는 회의 때 얘기한 건 아니고……. 지 대표님이랑 안 대표님이랑 같이 결정한 겁니더.”
“전 회장은요?”
“회장님은 별 관여 안 하셨고예.”
“장난해요? 소장님, 공동주택관리법 몰라요? 우리 아파트에서 그거 제일 잘 아시는 분이 소장님인데? 그런 법규도 모르시면서 여기 앉아 계시면 안 되죠.”
“원래 이 정도는 간소하게 이래 결정해왔심더. 그 당시에 지 대표님이 이사이기도 했고…….”
“나 참, 소장님! 지 대표가 여기 왕이에요? 말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갑시다. 아파트 커뮤니티 앱 부결된 거도 소장님이랑 지 대표가 그렇게 밀어붙인 거예요?”
“아닙니더! 무슨 말씀을 그래 하십니까?”
배 소장은 얼굴이 달아오르며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제가 분명 정중히 부탁드렸었죠? 아직 제가 동대표님들과 익숙하지 않으니 중간에서 역할 잘 부탁드린다고. 소장님, 제가 우스워요?”
“아, 아입니더. 회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정한은 줄곧 나지막한 목소리로 배 소장을 추궁했다. 그 목소리가 더 심장을 더 덜컥거리게 했다. 게다가 중간중간 보이는 정한의 얼음 같은 웃음은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 인간 같아 소름이 끼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앞으로 중간에서 처신 똑바로 하세요, 제 이빨 드러내기 전에. 자꾸 이런 식이면 앞으로 나이도 뭐도 없이 진짜 회사처럼 직급으로 대할 겁니다. 여기 조직도 보시면 소장님 제 아랫사람 맞죠?”
소장실 벽에 걸려 있는 조직도를 가리키자, 배 소장은 고개를 숙였다.
“소장님, 나이도 한참 어린 저한테 그런 대우 받고 싶지는 않으시죠? 저도 존중해드리고 싶으니까 존중받을 수 있게 행동하세요. 자, 그럼 정리해보면, 어쨌든 자전거 수거 비용을 받으셨고, 그 돈을 마음대로 쓰셨고, 횡령이자 배임 인정하시죠?
“아이고, 회장님 뭘 또 거까지 갑니꺼? 꼴랑 5만 원이라예. 그것도 직원들 밥 사줬심더!”
“꼴랑 5만 원? 이봐요, 배 소장님! 단돈 50원도 횡령이고 배임입니다. 다음 회의 때 봅시다.”
정한은 배 소장의 목에 대고 있던 칼날과 녹음 중이었던 핸드폰을 거두며 얼음장 같은 미소를 보이고는 소장실을 나갔다.
얼마 전 결성된 아파트 어벤저스 ‘정한, 명백화, 진절희, 유별라’는 수시로 연락하고 모이는 사이가 되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며, 앞으로 보안을 철저히 강화해야 한다는 명백화의 말에 따라 어벤저스의 아지트는 아파트 근처 카페에서 청학 북카페로 바뀌었다. 아지트에 들어서자, 정한은 그녀들에게 배 소장과 나눴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그녀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배 소장이 ‘꼴랑 5만 원’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가장 분노하고 있었다.
“제가 생각했을 땐 의외로 많은 것들이 엮여 있을 거 같습니다. 배임각, 지건만, 안일해 이 삼각형과 그 중심에 있는 유어홈. 그들끼리 뭔가 있어요.”
“제 말이 맞잖아예, 회장님. 아이고마……. 제가 그 인간들 뭔가 있다는 걸 몇 년 전부터 캐치해가 그래 따져댔는데 씨알도 안 먹혔어요. 그러니 내가 미치죠!”
진절희는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표정으로 눈에 힘을 주어 말했다.
“회장님, 배임각이가 돈을 먹었다는 걸 인정한 녹음 파일까지 있고, 자기가 녹음에도 동의했으니 이걸로 확 보내버릴까요?”
“맞아요, 그렇게 해야 해! 게다가 근무 태만이지. 어디 근무 시간에 고스톱 게임질이야? 그 자식은 진짜 우리 아파트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따박따박 월급만 받아 가는 날강도예요!”
명백화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자, 진절희와 유별라가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세 분 다 저 믿으시죠? 저한테 좋은 작전이 있는데, 이렇게 한번 해봐요.”
어벤저스는 정한의 작전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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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비리를 소재로 한 JTBC 드라마 <아파트>와 소설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가 대한민국 절반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더 투명하고 살기좋은 아파트로 만드는 데 힘이 될 수 있길. 오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