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은 줄 알았지

돌아보니 나는 늘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by아이오타 iota


내 몸이 고장 나고서야, 나는 내가 힘들었다는 걸 알았다.

그전까지는 별로 생각을 안 해봤다. 솔직히 잘 몰랐다. 눈에 보이는 일들은 일단 해치워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 장, 제자리를 벗어난 바카라 한 권, 며칠째 같은 자리에 붙어 있는 메모지. 그런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더 이상 ‘누군가의 일’이 아니었다.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두고 보는 것이 힘들다. 잠깐의 육체적 고단함을 이기면 마음은 편해진다. 정리된 공간은 숨 쉬기 좋았고, 어수선함이 사라지면 불안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눈앞의 어지러움에 손이 간다. 공간이 안정되어야 나도 편했다.


그것은 공용 공간에서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하겠지 하고 미뤄 둔 일들. 바카라임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 것들. 대체로 그런 것들은 바카라임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룬다. 정리되지 않은 바카라들,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 언제부터 붙어있었는지도 모를 메모지 속의 할 일. 나는 그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나는 착하지 않다. 그렇다고 인정욕구가 강한 것도 아니다. 그냥 해결하는 것이 마음에 안정을 주니까, 그냥 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봉사를 했다. 그곳은 누군가를 도우면서 나의 일상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남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나름 취향 저격인 곳에서 내 쉼의 여유를 챙긴다고 생각했다. 일상의 업무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있는 시간 속으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브레이크를 걸고 게겨보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쉬지 못했다. 안정을 찾기 위해 우선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했다. 누가 미뤘는지도 모를 그 잔재가 마음을 어지럽히게 두지 않았다. 조용한 시간이 바쁘게 지나갔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몸이 멈췄다.

정확히는, 더는 버티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통증은 생각보다 깊었다. 어깨가 갈라지듯 아프고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충격파 치료를 권했다. 처음엔 무서워서 거부했다. 차라리 주사를 달라고. 의사 선생님은 내게 한 번에 10대 가까이 주사를 놨다. 팔목부터 목까지. 그렇게 세 번. 그냥 충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설마 죽겠어?’라는 목표치를 갖고 죽겠다는 아픔을 견뎠다. 신기했다. 내 근육들이 돌처럼 굳었단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석회는 왜 그곳에 박혔을까. 충격은 그 단단함을 뚫느라 내 몸을 부수고 있었다. 곡소리는 옵션이 되었다. 충격파는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치료를 받고 나오면 묘하게 시원하다. 나도 모르게 실실 웃는다. 공간이 정리된 것처럼 마음이 안정된다. 쌓여 있던 것이 한 지점에서 터지는 느낌. 잠깐의 고통과 안정된 쾌감. 닮았다. 어쩌면 정작 치워야 하는 것은, 눈앞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외면해 온 피로가, 그 자리에서 뒤늦게 존재를 주장하는 것 같았다.

몇 차례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내 몸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는, 바깥을 정리하는 데 익숙했다. 어지러운 공간을 가지런히 만들면, 내 마음도 정리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것은 따로 있었다. 말하지 않은 피로, 미루어 둔 휴식, 괜찮다고 넘겨버린 순간들. 그것들은 바닥이 아니라 내 몸 어딘가에 쌓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불안을 치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지러운 공간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미뤄진 일은 나를 조급하게 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없애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없애야 할 것은 바닥의 종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은 쉼이었는지도 모른다.


몸이 고장 나고 나서야 나는 멈췄다. 정확히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왜 나만 이렇게 멈춰 있어야 하는지 억울했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알게 된 것도 있다. 세상은 내가 치우지 않아도 굴러간다는 것. 공용 공간의 바카라은 조금 비뚤어져 있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 메모지는 며칠 더 붙어 있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나는 여전히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나는 결단한다. 쉼이 되지 못하고 나를 소비시키는 것들을 하나씩 지운다. 건강해야 일도 하고 쉴 수도 있다. 스스로에 대한 바카라임부터 바로 져야 한다. 이걸 실행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충격파는 강한 뒤통수 한방이다. 충격이 아픈 지점을 정확히 눌렀다. 내가 어디까지 참고 있었는지, 어디에서 이미 무너지고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무딘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나를 소홀히 다뤄왔는지 인정하는 중이다. 아무렇지 않게 해 오던 일들이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받아들이는 중이다.

내 몸이 고장 나고서야, 나는 바르게 서는 연습을 한다.
자신을 돌보고
내가 소모되는 것들을 지우고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고 인정하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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