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누는 사이

삶이 통째로 기억되는 순간

by아이오타 iota

믹스커피를 끊기 위해 쌍화차를 마신다. 2년 전 정읍에서의 고운 향을 기억하며 티백으로나마 그 순간을 잇는다. 향이 짙어지는 순간에는 그 향을 좋아하는 것들이 다가온다. 지금은 첫째 고양이가 다가온다.

녀석은 마따따비만큼이나 이 향이 좋은가보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을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살짝 넣어도 보고 후~ 불 듯이 얼굴을 들어 올린다. 그리곤 내 입술을 핥고 손등에 얼굴을 비빈다. 가끔 내가 마시고 있는 순간에도 비벼온다. 그럴 때면, 뜨거운 액체가 목구멍으로 직행한다.

하지만 이 고요를 지키기 위해 나는 참고 삼킨다. 고양이는 여전히 컵을 비비고 내 손을 비빈다. 지키지 못한 것은 내 목구멍뿐이다.


녀석은 이제, 다 마신 컵을 베개 삼아 끌어안고 잠든다. 믹스커피를 마실 때도 그랬다. 막내 고양이가 와서 같은 행동을 했다. 녀석들의 취향은 서로 다르다. 개성이 뚜렷한 만큼 특별한 자기 것을 가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유의 향기가 있다. 말로 꽃을 심고 행동에서 향기가 난다. 가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어떻게 하면 저런 모습일 수 있을까. 그 마음의 정돈상태가 궁금했다. 그런 다져짐이 생기는 동안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가지를 잘라 왔을까.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어떤 세계를 열어 보인다. 철학자들은 감각이 기억을 깨운다고 말했다. 하나의 향이 오래된 시간과 사람을 한꺼번에 불러내듯, 향기는 순간을 넘어 삶의 장면들을 묶어 두는 매개가 된다.


향기를 내는 순간이 오기까지는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런 내공은 하루 이틀에 생기지 않는다. 닮고 싶다고 흉내 낼 수 있는 건 껍데기뿐이다. 향기는 겉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향기 나는 사람을 알아본다는 건 큰 행운이다.

멍한 내 주위도 더불어 환기된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좋은 사람은 좋게 남아야 한다. 서로를 찌르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가지고 향기를 나눠야 한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예의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 말의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사람 사이의 미덕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균형, 곧 중용에 있다고 했다. 향기도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서 가장 오래 머무를 것이다.


믿음이 없는 관계는 불필요할 뿐이다. 상대의 향에 취해 나를 버려서도 안되며 나의 것만 고집해서도 안된다. 어울리는 향기란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 사람의 향기가 떠오른다. 그것은 색깔로도 비친다.

나와 다르지만 닮고 싶은. 나와 다르지만 응원하고 싶은. 그가 그 자신으로 있어서 믿음이 가는. 그런 향기가 있다.

향기는 순간이 아니라 삶을 전달하는 기억의 매개가 된다.

오래전 키웠던 허스키는 오리지널 커피 향을 좋아했다. 가끔 그 녀석을 기억할 때, 그의 전 생애가 왔다 간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새로운 향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데려올지 모른다.

그 사람과의 인연을 통째로 상기시킬지도 모른다.

나도 통째로 어떤 향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은 향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연이 통째로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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