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 관점 - 삶의 기록 채집 중
오래전부터 나는 내 고양이들의 수염을 모으고 있다. 왜 하필 수염이냐고 물으면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어느 날 바닥에 떨어진 작은 수염 하나를 집어 들었고, 그 순간부터 그건 버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내 고양이들은 각자 다른 수염을 가지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도 길이도 조금씩 다르다. 수염은 곧 그들의 능력치거나 성격에 비례하는지도 모른다. 용감하고 덩치 큰 첫째를 키울 때는 모든 고양이가 다 그런 줄 알았다. 둘째가 왔을 때 알았다. 녀석의 소심한 성격만큼 수염이 더 길게 뻗어 나와 있다는 것을. 용감한 첫째는 더 길어야 될 이유가 없음을 그때 알았다. 둘째의 수염은 겁이 많은 만큼 길게 나있었고 꺾여 있었다. 새로 나도 마찬가지였다.
셋째가 왔을 때는 더 분명해졌다. 셋째는 몸도 작고 수염도 짧았다. 카오스무늬였다. 한쪽 앞발만 누런 시루떡처럼 생겼다. 수염도 모두 까맣게 나왔고, 딱 하나만 하얗게 나 있었다. 마치 발을 닮은 것처럼 수염도 그랬다. 첫째의 수염이 두 가지 색이 섞인 투톤이었다면 둘째와 셋째는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셋째의 그 짧고 흰 수염 하나가 유난히 귀여웠다.
넷째는 사람 손을 거의 타지 않는 아이다. 대신 성격은 꽤 용감하다. 그 아이의 수염 길이는 성격과 꼭 맞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딱 그 아이에게 어울리는 길이였다. 이때부터 애매하게 헛갈리는 수염들이 생겼다.
다섯째는 장모인 자신의 털 길이를 훌쩍 넘을 만큼 긴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몸보다 수염이 앞서 나갔다. 유일하게 둘째와 헷갈리는 길이다. 트럭에서 건진 막내들은 구별할 수 없게 다 흰털이 가지런히 났다. 눈 뜨자마자 업어 키운 덕에, 무서운 것 없이 씩씩하게 컸다. 그러나 성격은 다 달랐고, 마르고 까칠한 녀석의 수염이 조금 길게 자랐다.
난 무엇을 잘 모으는 사람은 아이다. 정성스레 챙긴 순간, 그것은 이사 갈 때나 나오는 마법에 걸린다. 4차원 구멍이 그때마다 생긴다. 잘 정리된 보관이란 내겐 부질없는 짓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들을 오히려 아무렇게나 둔다.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은 더 그렇다. 특별하지 않은 곳에. 희한하게도, 그래서 안 잃어버린다.
눈앞에 있으니까 계속 보이고, 계속 기억된다.
옮기는 순간 나는 그 물건을 찾지 못한다. 잘 보관해 두었다는 사실만 남고, 위치를 잊어버린다. 소중하게 만졌던 온기만 기억으로 묻힌다.
고양이를 돌보는 일도 비슷했다.
잘해 주고 싶었다. 이것저것 좋은 걸 먹이고 싶었다. 건강에 좋다는 것도 찾아보고, 영양제도 챙겼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알레르기가 생기기도 했다. 좋은 병원을 찾아주겠다고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오진을 겪은 적도 있다.
그냥 경험이면 좋을 텐데 아프게 한 거 같아서 미안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눈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한다. 서로가 편하게.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대신 방향을 알려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지침표가 된다.
언젠가는 먼저 간 아이를 말할 수 있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산바카라하듯 지나가고 있다. 기억을 붙잡아 두기보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간다. 눈으로 더듬고, 마음으로 산바카라한다.
화장을 했었다. 고운 뼛가루 속에 사리 같은 작은 알갱이들이 나왔다. 그것을 모아서 수염통에 같이 넣었다. 나는 아이들의 유치를 모으지 못했다. 그런 것을 자랑하는 집사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아무나 발견하는 건 아니었다. 어린 그들이 길 위에서 사경을 헤매고. 쉼터를 전전할 때 우리는 만났다. 서로를 치료했고 웃음을 얻었다.
수염은 그들이 살아온 삶의 기록이다.
나에겐 수염이 있다. 그들이 세상을 더듬으며 살아온 흔적. 나는 바닥에서 그들의 인생을 줍는다. 그 조각을 모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작은 통 안에는 여덟 마리 고양이의 수염이 들어 있다. 그리고 셋째의 작은 알갱이도 함께 들어 있다.
가끔 통을 열어 본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즐거운 기분이 든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단한 추억을 꺼내 보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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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런 하루가 있다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