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공개 수업은, 학부모를 위한 수업이었다

by언어프로듀서

학부모 공개 수업

<사전적 정의>
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수업을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일
<언어프로듀서의 재정의>
아이를 통해 어른이 되는 날


1년에 한 번,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면 학교에 간다.


“엄마, 공개수업 올 거지? 꼭 와야 해. 알겠지?”

수업 열흘 전부터 확인하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됐는데 싶었다.


어릴 적 내가 떠올랐다. 잘하는 것도, 눈에 띄는 것도 없던 나는 부모가 학교에 오는 날이 부담스러웠다.

딸도 비슷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는 아니었고 발표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이해되지 않았다.


온전히 딸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학교에 갔고

그때마다 생각이 바뀌었다.



작년 공개수업의 주제는 ‘부모님의 사랑’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편지를 쓰고 직접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는 그 시간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다. 아이 목소리를 따라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알았다. 아이가 이미 나와 다른 속도로, 다른 생각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여전히 어린아이로만 보고 있던 시선이 깨졌다.


또 다른 해에는 아이가 모둠장이었다.

모둠장이 불릴 때마다 아이의 얼굴에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이 있었다.

“엄마, 나 모둠장이야.”

모둠장의 역할은 프린트를 나눠주는 일이었다. 아주 작은 역할이다. 그런데 그 작은 역할이 아이에게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 알았다. 아이의 자신감은 거창한 성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는 작은 경험에서 자란다는 것을.



아이의 초등학교 마지막 공개수업.

아이의 요청으로 갔지만 더 많이 배우고 온 건 나였다.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늘 내가 더 배운다.


그래서 학부모 공개수업은 아이를 보러 가는 날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내가 어른이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