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말은 어디까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이리스는 왜 전쟁터를 오갔을까

by운조


살다 보면

내가 했던 말보다,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이 더 오래 남는다.

"괜찮아."

"수고했어."

"넌 할 수 있어."

짧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나는 전쟁을 움직인 영웅들보다,

전쟁터를 오가며 말을 전하던 한 여신에게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그녀의 이름은 이리스.

무지개의 여신.

그리고 신들의 전령이었다.

『일리아스』 제3권에서

이리스는 트로이 왕녀 라오디케의 모습을 하고 헬레네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를 성벽 위로 이끈다.

헬레네는 그곳에서

그리스와 트로이의 군대를 바라본다.

한때 자신의 남편이었던 메넬라오스도,

지금의 남편 파리스도,

같은 전쟁터에 서 있다.

그 순간,

헬레네는 전쟁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이리스는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마디 말이

한 사람의 발걸음을 움직였고,

그 발걸음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장면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칼만이 아니었다.

말이었다.

격려의 말 한마디는

넘어지려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반대로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도 매일

누군가에게 말을 전하며 살아간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온라인 게임 동료에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작은 이리스가 되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느냐가 아니다.

어떤 마음을 담아 전하느냐다.

희망을 전할 것인가.

두려움을 전할 것인가.

용서를 전할 것인가.

분노를 전할 것인가.

말은 입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

생각이 되고,

용기가 되고,

삶이 된다.

그래서 말에는 바카라임이 따른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성경에서 야고보는 말의 힘을 이렇게 전한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야고보서 3:5)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숲을 태우듯,

말 한마디도 한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말이 절망하던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포기하려던 사람에게

다시 걸어갈 용기를 주기도 한다.


『일리아스』 속 이리스는

신들의 뜻을 전하는 전령이었다.

그리고 야고보는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라고 가르친다.


한쪽은 그리스의 고전이고,

다른 한쪽은 성경이다.

시대도,

문화도 다르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같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움직인 마음은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


『일리아스』를 덮으며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무지개를 타고 하늘과 땅을 오가던 여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말 한마디였다.


어쩌면 우리도 오늘,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는

작은 이리스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