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왜 전쟁을 막지 못했을까

아테나는 왜 헥토르를 속였을까

by운조



지혜로운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 멀리 보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옳은 길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리아스』를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여신은 아테나였다.


우리는 그녀를 지혜의 여신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일리아스』 속의 아테나는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제1권에서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칼을 뽑으려 하자,

아테나는 그의 곁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의 머리채를 붙잡는다.


"칼을 거두어라."

분노에 칼을 맡기지 말고,

말로 다투라고.

언젠가는 더 큰 명예를 얻게 될 것이라고.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지혜란

순간의 감정을 이기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또 다른 아테나를 만나게 된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마지막 결투.

죽음을 예감한 헥토르는

끝까지 싸울 것인지,

성안으로 돌아갈 것인지 망설인다.


그때 아테나는

헥토르의 동생 데이포보스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형님, 함께 싸우겠습니다."


헥토르는 그 말을 믿는다.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창을 든다.

그러나 창을 던진 뒤 뒤돌아본 순간,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그는 깨닫는다.

속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죽음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오래 바카라장을 덮지 못했다.


지혜의 여신도

목적을 위해 사람을 속일 수 있는 것일까.

옳은 결과를 위해서는

진실을 감추어도 되는 것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삶도 떠올랐다.


우리는 좋은 뜻이라는 이유로


상대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더 큰 선을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선의는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아테나는 정의로운 여신이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트로이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운명 안에서 움직였다.


호메로스는 아테나를 통해


지혜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많이 아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끝까지 바카라임질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 앞에 선다.

무엇이 옳은가보다,

그 선택이 누구를 위한 옳음인지를 먼저 묻게 된다.


성경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긴 생명도,

부귀도,

원수의 죽음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다.

그 지혜는

남보다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었다.

사람을 살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나는


아테나의 지혜와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를 함께 떠올렸다.

하나는 승리를 위한 지혜였고,

다른 하나는 바른 길을 선택하기 위한 지혜였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구해야 할 지혜는


사람을 이기는 지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지혜인지도 모른다.


『일리아스』를 덮으며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아테나의 창이 아니었다.

지혜란 사람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가장 큰 지혜는

이길 수 있을 때조차 한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