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녀를 전쟁이라 불렀다

아름다움은 죄가 될 수 있을까

by운조



헬레네는 정말 모든 죄의 시작이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전쟁의 원인을 한 사람에게서 찾으려 한다. 누군가를 악인으로 만들면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바카라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면 마음도 편해진다.


트로이 전쟁도 그랬다.


세상은 오랫동안 헬레네를 '천 척의 배를 출항시킨 여자'라고 불렀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전쟁을 불러왔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기억한다.


나 역시 『일리아스』를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카라 속에서 만난 헬레네는 내가 상상했던 여인과 달랐다.


그녀는 화려하거나 당당한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일리아스』 제3권. 트로이 성벽 위에서 노왕 프리아모스는 헬레네와 함께 그리스 진영을 내려다본다. 그는 그녀에게 저 멀리 서 있는 장수들이 누구인지 묻는다. 헬레네는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 아이아스를 차례로 가리키며 설명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한숨과 함께 말한다.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한마디에는 죄바카라감과 후회, 그리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담겨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프리아모스 왕의 반응이었다.


그는 아들을 잃고 나라가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도 헬레네를 탓하지 않는다.


"이 전쟁은 네 탓이 아니다. 신들이 우리에게 이런 운명을 내렸을 뿐이다."


나는 그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왕이 가장 먼저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쉽게 단죄하지만, 가장 큰 슬픔을 겪은 사람이 오히려 가장 깊은 이해를 보여 줄 때가 있다.


헬레네 역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상처 입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트로이로 데려온 파리스를 존경하지도 않았다. 메넬라오스와의 결투에서 도망친 파리스를 향해 냉소를 보냈고, 아프로디테의 명령에도 저항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일리아스』 마지막 장면에서도 헬레네는 내 마음을 붙잡았다.


헥토르의 장례식에서 그녀는 통곡하며 말한다.


"이곳에 온 지 스무 해가 되었지만, 당신만은 단 한 번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원망할 때도 헥토르만은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는 고백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헬레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쟁은 한 사람 때문에 시작되지 않는다.


욕망과 권력, 오만과 침묵이 겹겹이 쌓일 때 비극은 시작된다.


한 사람을 비난한다고 해서 전쟁의 원인이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나는 헬레네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어야 할 여인이 아니라, 평생 죄바카라감과 세상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보다, 타인이 씌운 이름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일이 더 고통스러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헬레네를 통해 한 가지를 배웠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일리아스』는 영웅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속에는 세상의 오해를 견디며 살아야 했던 한 여인의 침묵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3천 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쉽게 전쟁의 원인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헬레네는 조용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