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일리아스였을까

트로이의 성벽 아래에서 만난 사람들

by운조




예순이 넘어서 『일리아스』를 읽게 될 줄은 몰랐다.
학창 시절에도 읽지 않았던 바카라이다.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오래된 영웅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 속 전쟁 이야기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대 영문학과에 입학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과제로 주어진 바카라을 읽다 보니 어느새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트로이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낯선 이름들이 끝없이 등장했고, 누가 누구 편인지조차 헷갈렸다. 전쟁은 왜 그렇게 오래 계속되는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쉽게 분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순간 영웅들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는 안드로마케.
아들을 잃어 가는 헤카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헬레네.
전리품처럼 취급받았던 브리세이스.
칼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은 영웅이 되었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눈물로 전쟁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어쩌면 그 이유는 나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온 시간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족을 위해 일하고, 고향을 떠나 이민자로 살아오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기까지의 시간들이 그들의 기다림과 슬픔에 조금은 공감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고전은 오래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리아스』를 읽으며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은 수천 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걱정하는 마음도,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마음도.
모두 지금 우리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이 바카라은 『일리아스』를 해설하는 글이 아니다. 3번째 스무살에 들어선 한 독자가 고전 속 인물들을 만나며 삶을 다시 읽어 가는 기록이다.


특히 영웅들의 이름 뒤에 가려진 트로이의 여인들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일리아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온 인물, 안드로마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