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로 떠난 여행이 행복할리가 7 完
이십 대 때에는 꼭 여행을 가 봐야 한다고, 젊은 시절의 여행은 인생을 바꾼다고 누군가가 말했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말을 잔뜩 들은 나는 이 여행에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 여행이 날 바꿔줄 거라고.
퐁듀와 립톤 홍차에 초라해지지 않는, 돈 때문에 친구를 질투하지 않는, 나약한 날 미워하지 않고, 어떤 고난도 불행도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강하고 멋진 나로……. 한순간에 전부 바뀔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겠지만 그 뒤로 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3주의 시간과 200만 원의 돈을 태운 여행은 그저 여행이었다. 나는 여전히 초라했고, 보잘것없었고, 친구를 조금 질투했고, 내가 미웠다. 이 여행으로 남은 것은 재밌었던 추억, 초라해지고 불행했던 기억과 조금 그을린 얼굴뿐이었다.
‘역시 질투심으로 시작한 여행 따위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
나는 종종 그 여행에 대해 회상했다. 여행에서 있었던 우여곡절을 친구들에게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워낙 고생이 많은 여행이었으니 반응은 항상 좋았는데, 특히 히치하이킹이나 세 명이서 오토바이 타기 같은 얘기를 할 때의 기겁하는 반응을 내심 즐기고는 했다. 짜뚜짝 시장에서 사온 300바트짜리 찻잔은 여전히 장식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나는 종종 어울리는 차를 우려 찻잔에 담아 티타임을 즐기고는 했다.
추억은 윤색된다. 상처 위에 딱지가 덮이고, 이내 그 딱지마저 사라지면 당시의 고생은 ‘그땐 그랬지’라는 포장지로 덮인다. 기억이 풍화되어 부정확해진 걸 수도 있다. ‘다 어려서 그랬지 뭐’라고 단정 짓기에는 그때의 고생과 고민은 진짜였다. 지금 겪어도 괴롭고 막막해질 만큼 큰일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흘러 풍화된 기억이 있듯, 멀리 왔기에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때에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기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는 보인다. 가까이서는 나무 한 그루만 보였는데, 먼 곳에서 숲 전체가 보이듯이.
태국 여행 이후 글을 써서 아르바이트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액수를 벌게 된 지금도 나는 종종 여행을 간다. 짧으면 5일, 길면 한 달씩.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누군가를 질투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태국 여행을 선택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 날 증명할 방법의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는데도, 나는 항상 제 발로 떠나곤 했다. 혼자서. 어딘가로.
가만,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태국 여행을 선택’했다는 말은 조금 우스운 구석이 있다. 계급적 박탈감을 채울 방법은 좀 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 하필 여행을? 과거의 나는 어째서, 친구의 2달 유럽 여행에는 충격을 받았으면서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에는 질투하지 않았을까? 과거의 나는 어째서, 질투로 시작한 여행 치고는 빠이부터 무꼬 쑤린까지 그렇게 태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을 열심히 다녔을까? 나는 어째서 불행했던 사건의 기념품을 이렇게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까.
계급을 향한 질투심이 방아쇠를 당겼을 수는 있지만, 오래전부터 장전되어 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이 정말 가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비싸고 고생스러울지라도. 그 여행도 좋아할 수밖에는 없었다. 공항 노숙은 불편했지만, 초등학생 때 운동장에서 야영했던 일이 떠올라 두근거렸다. 나이트 버스에서 자는 일은 허리가 배겼지만, TV에서 틀어준 태국 영화가 재미있었다. 푸켓 땡볕 아래서 걸어서 발이 물집투성이가 되었던 건……. 역시 즐겁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날 시장에서 사 먹은 망고는 맛있었다. 내 손으로 얻어낸 첫 여행, 나만의 여행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여행으로 불행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불행했지만, 그보다 조금 더 많이 행복했다.
야구방망이에 봇짐을 매달고 거실을 모험하던 아이는 결국 진짜 여행을 떠났다. 아빠가 끝내 오르지 못한 비행기에, 나는 혼자서 몇 번이고 올랐다.
다마스 뒷좌석에서 상상만 하던 그 흔들림을, 이제는 안다.
다음 편부터는 여자 혼자 여행 갔다가 고생하는 에세이 '혼자 온 여자'가 연재됩니다.
여자 혼자 여행은 확실히 위험하다. 그건 내가 직접 체험했다. 그렇다면 여자가 혼자 여행 가는 행동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