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 요구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말과 행동과 맥락에서 문제의 단서를 찾는 법

by장서우

왜 공감에서 시작하는가


디자인적 사고는 답이 정해지지 않은 백지 위에서도 문제와 해결의 가능성을 차례로 펼칠 수 있다.


그 첫 움직임이 문제에 대한 고민, 즉 문제의 가능성을 확산하는 일이다. 다만 무조건 가능성을 많이 떠올린다고 문제의 다이아몬드가 제대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과 추측의 범위 안에서만 생각을 넓히면, 확산은 여전히 내 사고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디자인 사고는 문제를 정의하기에 앞서 공감의 움직임을 둔다. 문제를 겪는 사람, 곧 사용자를 먼저 바라보고 관찰한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을 살펴야 내가 보지 못했던 문제의 가능성이 열린다. 디자인 사고가 공감에서 시작하는 이유다.


이 장에서 말하는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을 함께 느끼거나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해 주는 태도에 머물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느끼며, 어떤 상황에서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려는 과정이다. 생각과 감정과 상황이라는 맥락 전체를 파악하는 일에 가깝다.


이것이 왜 문제 해결에 필요한가. 사람의 행동은 그 맥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독형 뉴스 서비스에서 결제라는 행동은 정보가 필요한 상황과 필요의 강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겹칠 때 일어난다. 상황과 감정과 생각은 행동에 함께 영향을 준다. 그 맥락을 읽지 못하면 행동을 바꿀 적절한 해법도 설계하기 어렵다.



말한 요구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데이터 직군의 현장에서 공감의 필요를 절감한 이유는 따로 있다. 업무는 대개 누군가의 요구로 시작된다. 고객은 기능을 요청하고, 상사는 보고 자료 작성을 지시하며, 현업 부서는 분석을 의뢰한다. 반대로 데이터 조직이 할 일을 찾기 위해 설문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기도 한다. 이때, 어느 쪽이든 "이게 필요하다던데요?"라며 들은 요구를 그대로 문제 정의로 넘기는 경우를 항상 목격했다. 그러나 전달받은 요구만 충실히 수행해서는 실제 문제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구를 듣는 일 자체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환자가 "배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중요한 단서다. 그러나 그 증상만으로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다. "보고 자료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마찬가지다. 누가 그 자료를 보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알아야 무엇을 담고 무엇을 덜어낼지 정할 수 있다.


흔히 "눈치가 있다"거나 "센스가 좋다"는 말은 상대가 설명하지 않은 맥락과 필요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런 평가는 대개 직접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냈을 때 나온다. 누군가의 문제는 말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이해하려면 결국 그들의 관점으로 들어가 공감해야 한다.


나는 현장에서 이것을 반복해 확인했다. 실무자가 원하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분명하게 말하더라도, 처음 꺼낸 요청이 실제로 풀어야 할 문제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요청받은 정보를 충실히 담아 만든 대시보드가 석 달 만에 죽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나는 그들이 "말한 것"을 만들었지, 그들이 "겪는 것"을 관찰하지 않았다.


pexels-nesrin-ozturk-213162154-12743454.jpg듣는 것과 겪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묻는 데서 멈추지 않고 행동을 관찰한다. 말과 행동이 놓인 맥락도 함께 읽는다. 그것이 공감의 시작이다. 이러한 사고를 알게 된 뒤부터 나 역시 새로운 데이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요구 사항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요청 부서의 배경과 이 일이 시작되기 전의 회의록, 지금까지의 흐름을 먼저 살펴보려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들에게 이 데이터가 정말 필요한지 나 자신조차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내문은 카드를 긁으라고 했지만, 화면은 기다리게 했다


최근 한 대학병원 안의 식당을 이용하다가 키오스크 앞에서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일부 이용자들이 카드 결제를 시도했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용자들은 카드를 단말기에 꽂았다. IC칩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자 화면에는 카드를 빼서 긁으라는 안내가 나타났다. 그런데 화면의 다른 부분에서는 결제 시간이 남아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이용자들은 카드를 빼서 긁지 않고 화면 앞에서 기다렸다.


멀리서 결과만 보면 안내문을 읽지 못했거나 키오스크 사용에 익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니 화면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말을 하고 있었다. 문장은 "카드를 빼서 긁으라"고 했지만, 계속 움직이는 표시는 "아직 처리 중이니 기다리라"는 신호처럼 보였다. 시선이 움직임에 먼저 끌리면 안내문을 바로 읽지 못할 수도 있었다. 카드를 꽂은 뒤 화면이 움직이고 있으니 조금 더 기다리면 된다고 해석하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사용자의 행동을 직접 관찰했기에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맥락이 운영 데이터에도 남을까?


운영 데이터에는 IC칩 인식 실패와 결제 중단, 일정 시간이 지난 뒤의 취소 정도가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설령 특정 고객층의 결제 실패율을 비교할 수 있더라도, 화면에 안내문을 표시했는데 왜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실패가 일어난 순간을 옆에서 보아야 문장과 움직임이 사용자의 주의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끄는 충돌이 보인다.


관찰이 달라지면 해결의 방향을 묻는 질문도 달라진다. 안내 문구를 한 줄 더 추가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IC칩을 읽지 못한 순간에는 움직이는 표시를 멈추거나 가리고 카드를 빼서 긁는 행동만 별도의 화면으로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물론 한 번의 관찰만으로 원인과 해법을 확정할 수는 없다. 같은 어려움이 더 많은 이용자에게도 반복되는지 관찰하고, 바꾼 화면에서 실제로 다음 행동이 빨라지는지 시험해야 한다. 다만 무엇을 시험해야 하는지는 현장에서 비로소 보였다.


병원 키오스크의 결제 실패는 데이터 안에서 하나의 결과로 남는다. 관찰은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장면으로 들어가, 사용자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문제의 재료로 가져온다. 하나는 신호이고, 하나는 맥락이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철학자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의 예를 빌려 두꺼운 기술(Thick Description)을 설명했다. 같은 눈 깜빡임도 단순한 경련이거나 누군가에게 보내는 윙크일 수 있다. 겉으로 같은 행동의 의미를 알려면 그 행동이 놓인 맥락까지 읽어야 한다. 민족지 연구자 트리시아 왕(Tricia Wang)은 2013년 이런 슬롯적 맥락과 의미를 담은 질적 자료를 두꺼운 데이터(Thick Data)라 부르며, 빅데이터(Big Data)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데이터가 행동의 규모와 패턴을 보여준다면, 두꺼운 데이터는 그 패턴을 해석할 맥락을 보탠다. 공감은 숫자와 관찰을 오가며 이 맥락을 읽는 사고다.



사용자 조사는 공감을 자료로 바꾸는 일


디자인에서 공감은 좋은 마음을 갖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용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디에서 막히는지, 그때 어떤 환경에 놓였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해석해야 한다.


스탠퍼드 디스쿨(Stanford d.school)은 디자인 사고의 공감을 관찰하기(Observe), 교류하기(Engage), 직접 경험하기(Immerse)라는 세 가지 움직임으로 설명한다. 사용자의 행동을 그 사람이 놓인 환경에서 보고, 대화를 통해 생각과 감정을 들으며, 가능하다면 그 조건 안으로 들어가 경험해 보는 것이다. 사용자의 입장을 상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맥락을 발견하는 방법들이다.


공감이 사람의 관점으로 들어가려는 태도라면, 사용자 조사(User Research)는 그 이해를 검토 가능한 자료로 남기는 실천이다. 디자인 실무에서는 사람의 필요와 행동을 맥락 안에서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해석한다. 여기서 자료는 숫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용자의 말과 행동, 표정, 작업 순서, 사용하는 문서와 도구, 반복되는 우회 행동도 모두 자료가 된다.


구체적인 조사 방법은 다양하다. 인터뷰로 경험을 듣고, 실제 환경에서 행동을 관찰하며, 제품이나 시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디에 막히는지 살필 수 있다. 설문과 일기 조사로 경험을 모으고, 이용 기록과 검색 기록, 문의 내역과 기존 보고서를 함께 살필 수도 있다. 지금 풀려는 질문에 따라 필요한 자료와 방법은 달라진다. 내가 대학원에서 활용한 시선 추적도 사용자의 실제 시선 움직임을 기록해 말로만 설명되지 않는 경험을 살피는 한 방법이었다.


pexels-tima-miroshnichenko-5439447.jpg사용자의 맥락을 수집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방법은 달라도 목적은 같다. 사용자의 필요와 행동을 그 맥락 안에서 이해하는 일이다. 설문으로 의견을 묻든, 인터뷰로 비언어적인 맥락까지 수집하든, 시선 추적으로 행동을 기록하든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것은 "사용자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이다. 그렇다고 "왜 그렇게 행동하시나요?"라고 묻고 답을 받아 적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 이유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고, 때로는 상황에 맞춰 빠르게 답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도 보상을 받기 위해, 혹은 가입 절차를 마치기 위해 설문이나 인터뷰를 대충 넘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에서 얻은 응답은 결론이 아니라 이해를 넓히는 단서다. "그들이 그렇게 답했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그 말이 나온 상황과 실제 행동을 함께 보며 이유를 따라가야 한다. 그들의 자리에 최대한 가까이 가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판단했는지 이해하려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에 공감보다 더 적합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기법을 더 나열하기보다 디스쿨이 이야기하는 세 가지 움직임을 온라인 게임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교류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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