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우도를 걷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개새끼가 될 수 있다.

by오션펌킨

관광호털이지만 기대보다 쾌적했던 숙소에 대해 좋은 기억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서귀포를 출발했다. 어젯밤 탔던 택시기사님 정보로 줄 서서 먹는다는 김밥집을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돌아섰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들러서 줄 서는 집의 김밥을 맛보기 위해 사진으로 남겼다. 그 옆에 오래된 건물의 목욕탕을 보면서 한번 더 감탄했다. 개발되지 않아 반가운 풍경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는 제주도다.

우도 입도를 할 수 있는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일찍 나왔다. 배 운행 간격이 좁아서 선착장에 도착하는 대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빨리 도착할수록 우리의 일정에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더욱 서두르게 되었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무거운 짐을 맡길 수 있어서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오늘 일정을 마치고 새로운 숙소로 가야 하는 과정에서 짐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여행자를 위한 서비스로 잠시 짐을 보관할 수 있게 사물함을 쓸 수 있게 하는 서비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놀라웠다. 큰 배에 남는 자리 없이 빼곡하게 들어앉은 사람들을 보면서 반가웠다.

25분 정도 달려 우도에 도착했다는 방송을 듣고도 배에서 내리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만 5분이 넘었다. 안전하게 한 명씩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배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타고 온 배 옆에 해파리 한 마리가 마치 우리를 환영이라도 해 주는 것처럼 둥둥 떠 있었다. 죽은 건가 싶었는데,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으로 반갑게 인사하고 배에서 내렸다.

우도를 한 바퀴 돌면서 관광객들의 이동을 도와주는 순환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찾아 걸었다. 그 길에 고운 백사장을 만나 잠시나마 동심 놀이를 했다.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제주 바다를 느꼈다. 아침이었지만 볕이 무척 뜨거웠다. 혼자였다면 바라만 보다가 지나쳤을 곳이었다. 둘이어서 용기 낼 수 있었다. 해변 주위에서는 이미 많인 여행자들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발을 담그고 파도를 느끼는 작은 행동에도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게 느껴졌다.

함께 여행하는 메이트가 나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것이라면 아무리 좋은 여행도 마음이 불편할 수 있는데 다행히 죽이 척척 맞았다. 내 발길이 멈추는 곳에 도착하면 그도 이미 멈춰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기도 했다. 둘이 왔지만 각자 감상하면서 서로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다시 발길을 이동할 때 감상을 이야기하며 함께 걸었다. 상대의 배려를 느끼면 나 또한 한번 더 배려하기 위해 살피게 되지만 힘들지 않았다. 둘이 여행을 하는 동안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 관계에 감사했다.

의지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면 나의 선의가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는 착각을 할 때가 많다.

나의 선택이 틀린 적이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사람은 기고만장해질 수 있다. 겉으로는 겸손한 모습을 유지하지만 자아는 자신감에 부풀어 올라 있을 수 있다. 가끔씩 자신을 돌아보며 객관화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다. 그런 과오를 범한 적이 많았다는 것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고 그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사람이 좋다고 인정하는 것도 개인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강요하듯 권하는 태도에 상대는 충분히 불쾌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상황이 변화하면서 내가 원치 않는 강요나 권유를 받는 입장이 되어 보니 그 불쾌함을 알 수 있었다.

오랜 방황을 끝내려고 하는 시점에서 지금, 자칫 나는 타인들 눈에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외적인 모든 것을 차단했다.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관계망도 없어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간관계가 정리되었다. 자연스럽게 신변잡기적인 많은 것이 정리가 되었다.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그 목표에만 몰두하면서 나머지는 미뤄뒀었다. 그리고 3년 만에 합격을 했고 내가 방치했던 그 3년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방치했던 것들을 당장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을 두고 공을 들여야 할 것들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소멸해 버린 슬롯 관계망과 지인들과의 사적 모임들을 부활해 내려면 나를 가다듬는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슬롯적 나이를 인식해서 빠르게 슬롯로 복귀하고 싶어졌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지진하게 보낸 시간에 보상이라도 받고자 자격증 관련하여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관련 업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았고 그 안에서 무엇이든 시작하려고 했다. 적성에 맞는지 어떤지 검증할 필요도 있고 앞으로 제2의 인생을 펼치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 취득한 자격증이니 하루라도 빠르게 그 안으로 스며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리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공동체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던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평가해 왔기 때문에 시험에만 붙으면 그 후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 자신을 단단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현장에 뛰어들어 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그 자격증만의 특성이 있었다. 대체로 노후 대비를 위해 하는 공부라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갖기 위해 자격증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전업주부로 살다가 아이들도 성장을 해서 엄마의 손을 떠날 시기가 되면 무료함과 경제적 보조를 위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약하자면 적당히 자신의 삶에 노하우를 가지고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취득해서 개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리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일반 온라인 게임생활이나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한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있어 봤던 사람, 자식을 낳고 키워 슬롯인으로 성장을 시켜본 사람들은 그들만의 자신감이 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후 공부라는 것을 수십 년 만에 다시 시작해서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런 그들은 모임에 앉아서 할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들어만 준다면 밤을 새울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런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느껴지는 것들은 있다.

불쑥불쑥 애정 어린 눈빛과 말투로 조언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많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들의 경험을 빗대어 나에게 좋은 것들을 주고자 하는 의도인 것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간과하는 것이 있다. 자신과 다른 이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이다.

슬롯적 약자에게 도움을 줄 때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피고 도움을 주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 들이밀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방에게 의사를 물어야 한다. 가난하니까 남이 주는 것은 다 받을 것이라는 착각은 위험하다. 그 또한 오만함에서 오는 것이다. 내 안에 오만함이 있는지 검열해야 한다. 왜 그들을 도우려고 하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정말 철저하게 검증해야만 한다.

자신의 기준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 기준대로 타인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너무 쉽게 충고를 하려고 한다. 50년을 넘게 살아온 인생에서 큰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나름 잘 살아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평가도 자신의 기준으로만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성공했던 방식을 믿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권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 말을 고맙게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또한 상대방을 무례하다고 탓한다. 좋은 것을 주지만 좋지가 않다. 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한다. 살얼음판 걷듯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무관심이나 모른 척해주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내 안의 오만함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 스스로 깨어있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는 나에게 세상에 한치의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을 한다. 모임 참석도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곳에만 나타났다가 뒤풀이에는 참석도 하지 않는 나에 대해 인색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들리기도 한다. 감당할 수 없는 관계는 처음부터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지적 행동이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또한 감수할 각오를 하고 나의 태도를 결정한 것이었다.

제주도로 홀로 걷기 여행을 떠난다는 나의 계획을 듣고 여행의 끝자락에 3박 4일을 함께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 온 지인에게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수락했다. 오랜 시간 긴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았던 나는 타인에게 나의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지인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홀로서기를 하던 긴 시간을 돌아보며 타인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관계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돈된 관계를 형성해 가고자 하는 바람이 깃든 간절함이 담긴 태도였다. 그 마음에 확신이 들면서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개새끼였던 때가 있었다.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만하게 살았던 시기를 철저하게 반성하면서 관계에 대한 나만의 방향을 잡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를 지키면서 타인에게도 이로운 관계가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