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굴사, 산방산보문사를 가다.
내 존재의 이유를 찾기 시작한 때부터 멘토, 절대자, 부모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존재를 인정받는 것에 대한 갈망이 컸던 때가 있었다. 종교를 가져 보라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한 때는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 아니 신을 믿어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인간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도 한참 방황을 했던 것 같다. 분노가 차오르기도 했지만 분출할 방법을 몰랐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그 시간들을 모두 지내놓고 나니 그때 그랬던 것 같다.
산을 좋아했던 나를 돌아보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다시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산 중에 있는 암자나 절에 갔을 때 느끼는 편안함의 이유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즈넉한 풍경과 분위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런 곳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곳이 오히려 내 몸과 마음을 온화하게 만들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해가 갔다. 그리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종교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면 과연 절대자가 있는 것이 맞는 걸까? 인간의 근본이 신에게 있다면 신만 보여야 하는 것 아닐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반백살을 살아온 인간에게 신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조용히 죽음을 대비하고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니 내가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남길 흔적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고 해야 할까?
제주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지인이 말한 곳 중 하나가 산방산이었다. 차를 타고 오며 가며 눈에 익었던 곳이긴 하지만 생김새만 보고도 산을 올라갈 방법은 없어 보였는데 놀라웠다. 산을 올라가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도 생겼다. 그래서 조금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오전 일정을 마치고 부리나케 산방산으로 달려왔다. 입장 시간이 있어 늦어지면 들어가 볼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산방산에 있는 관음사보다 산방굴사를 꼭 봐야겠다 마음먹으니 더욱 그러했다. 새해가 되면 제주도민의 대부분이 기도를 하러 기도를 하러 간다고 하는 산방굴사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막상 와서 보고는 처음엔 실망스러웠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암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급하게 올라올 때보다 헐떡이던 숨을 고르고 나서 산방굴사를 내려오면서 깨달았다. 제주도민들이 기도를 위해 이곳에 오르는 이유를.
내려오는 길 내내 보이는 제주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수평선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작은 존재인지를 확인하면서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을 것 같다. 지금보다 더욱 나약했을 인간이 의지하기에는 충분한 곳이 아닐까 싶었다.
산방굴사와 그 전망에 감탄하면서 내려오다 보면 산방산보문사가 산 중턱에 웅장하게 자리를 하고 있다. 육지의 여느 절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절이었지만 편안하고 포근했다. 볕이 좋아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리쬐는 햇살이 정면으로 절을 비춰주는 구도가 절에 대한 호감을 높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보여주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았던 것일지 모른다. 본질에 충실하고 내면을 수양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려고 애를 썼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만큼 내 삶의 방향은 확고했고 꽤나 오랜 시간을 내면의 나와 소통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의지와 상관없는 본능을 깨닫지 못하고 깊이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타인을 의식하며 살았다. 가까이는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 휘둘려 눈치를 봤다. 그래야 하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근본이 가족이니 그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나를 근사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가족을 벗어난 관계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망은 생각보다 컸다. 작은 실수에도 나를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이 생길까 전전긍긍하고 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철저하게 지켰다. 자기 검열이 너무 심각할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이라 단단히 믿고 있었다.
보답을 원해서 나를 희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차라리 나를 조금 내어주자는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본전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왜 나는 내가 배려한 만큼 아니 그 십 분의 일도 돌려받지 못하는가?
아주 강력한 질문이 머릿속에 박히고 나서 그 답을 찾기 위해 또 다른 방황을 했다.
농담 섞인 말로 내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여서 현생이 괴로운 것인가라고 물을 정도로 모든 관계가 회의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배려를 권리로 아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이 올라오면서 내가 속한 모든 관계망이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관계망을 벗어나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나약한 내 모습도 꼴 보기 싫어졌었다.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지 시작하니 답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가혹해지기 시작하니 그만큼 불쌍한 영혼이 없었다. 나를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하지 않는 잔인한 나를 발견했을 때 서울역 노숙자보다 못해 보이는 내 처지에 한없이 눈물이 흘렀었다.
죽을 용기조차 없던 나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부터 멈추기로 했다. 미워할 기운으로 살아갈 힘을 키우자고 마음을 먹었다. 한없이 부족해 보이는 나를 직면할 때마다 "그럴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기 합리화로 달아날 구멍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나약하고 의지 박약한 인간들도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 왜 나는 그 작은 실수로 부끄러워서 햇볕조차 당당하게 보지 못하는가. 그럴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실수이다. 그 실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누구나 하는 실수 때문에 나를 죽이는 일을 하지는 말자. 매번 같은 다짐을 하면서 의지적으로 나를 믿었다.
살아오는 동안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애썼고 누가 보지 않아도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고집했던 나를 비춰봤을 때 나는 선을 쫓는 성질이 강한 사람이니 나를 믿어도 된다고 나를 다독였다.
처음엔 그럼에도 많이 흔들렸다. 과연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의문까지 들었으니까. 하지만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내 영혼이 가엾어서 무조건 믿기로 결심했다. 버려진 나를 거둘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나를 믿는 건 타인을 믿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차피 죽음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한 번쯤 무모한 베팅을 해 보자는 생각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살았다. 입을 닫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내며 살아가던 나에게 하나씩 보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믿었던 나에게 믿음에 대한 보답이 돌아왔다. 나를 믿고 했던 작은 선택들이 응답을 주었고 선한 결과를 가져왔다.
실패냐 성공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믿고 했던 수많은 작은 선택들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었다. 내가 건강해지고 나니 관계망이 좋아졌고 그 안에서 나는 편안했다. 그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나를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다.
안하무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를 보는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사라졌고 그로 인해 내 행동에 확신이 생겼다. 주저함 없이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타인에 대한 감정 소비에도 적절한 기준이 생겼다. 감정 낭비도 하지 않았다.
돈도 써야 할 곳에 잘 써야 하는 것처럼 감정도 마찬가지다. 쏟아내야 할 때 써야 하고 거두어야 할 때는 칼같이 접어야 한다. 그 조절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스스로가 놀라웠다.
이유 없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에 경계를 하지 않지만 무턱대로 그 감정을 받아들여 스스럼없이 나를 보여주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 나에게 잘해줘도 내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죄바카라감 따위 없다. 상대방이 다가오는 것에 일일이 의도를 파악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타인에게 무례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지금은 이런 내가 좋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의식하지 않는다. 가끔 무례하게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함부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자신과 다른 나를 미숙아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잘 모르고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듯하다. 그러니 가르쳐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어서 말해주는 것이라는 순수한 의도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조차 오만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들을 보며 이제는 웃는다.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경청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내 겉모습이 완벽하지 않으니까.
내게는 그들을 평가하고 판단할 시간이 없다. 나를 돌보고 나를 보듬는 것이 더 중요해서 타인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부모가 먼저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부모도 자식에게 무조건적이지만은 않다. 물에 빠진 자식을 살려내고 끝내 지쳐 죽는 부모가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부모들에게 죄바카라감을 씌우지는 말자.
버리지 않고 키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된다.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매사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회복이 되고 나서 내가 얻은 작은 지혜다. 불변하지 않는 것, 쉴 공간이 있다는 것, 만날 지인이 있다는 것, 갈 곳이 있다는 것에 매번 감사를 하다 보면 우울한 생각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삶의 의미는 깊은 곳에 있지 않다. 매일을 꾸준하게 살아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 매일 안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그 경험에 감사하면 그만이다. 그 외의 것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다.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궁금해하고 그 선을 넘어서 불행해지기도 한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비겁하거나 나약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한 객관화가 잘 되어 있으면 빠른 포기도 가능하다. 매사에 잊지 말고 되새겨보자.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혼자 조용히 여행을 하기 위해 긴 여정을 계획하고 왔던 제주 여행의 마지막 피날레는 지인과의 3박 4일로 마무리했다. 가족 외 타인과 여행은 처음이라는 지인과 함께 모든 순간이 감동이고 기쁨이었다. 제주 토박이 지인으로부터 들은 산방산의 모양이 백록담의 모양과 일치한다는 전설을 이야기해 주면서 산방산을 뒤로하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숙소 근처 올레시장에서 맛난 것들을 잔뜩 사들고 들어와 늦은 밤까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신변잡기였지만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행복했고 뒤늦게 나와 궁합이 맞는 여행 메이트를 찾았다는 것에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