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까지 와서 전시를?!

비를 피해 갔던 곳에서 만난 감성

by오션펌킨

궁여일바카라으로 뮤지엄을 선택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하루 종일 비와 바람이 실외 활동조차 어렵게 만드는 환경에서 여행을 강행할 수 없어 의기소침해져 있던 터에 지인의 권유로 간 "포도뮤지엄"이었다.

가는 길도 비와 바람에 험난했지만 도착해서도 긴가민가 했었다.

그런데 막상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전시실로 입장하는 순간부터 숙연해졌다.

멀티미디어를 통해 작품 해설을 들으며 작품과 공간을 함께 느끼다 보면 작가의 의도가 온전히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전시실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작품들에 처음부터 압도되었다.

[ 모나 하툼 ] <Remains to be Seen>, 2019, 콘크리트, 철근, 528 x 530 x 530 cm. 작가, 화이트 큐브 갤러리 제공
모나 하툼 <Cells (tower)>, 2023, 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166.8 x 60 x 32.8 cm. 작가, 화이트 큐브 갤러리 제공

시리아의 내전으로 인해 난민들이 국경에 격리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지경에 처해 있던 때에 잠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시리아 난민촌에 갔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난민촌에 있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었다. 약 6개월을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주말이면 이스라엘이나 그 주변 나라들을 여행하곤 했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검문이 삼엄했던 기억이 있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은 북한과 남한만큼 살벌하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 검문을 기다리면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과 현지인들 표정만 봐도 그 살벌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차라리 완전한 이방인인 나는 의심받을 것이 없었다. 관광객이라는 명분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적이 다른 사람들은 불법체류 같은 불순한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검문을 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팽배했다.

한 때 호기롭게 갔던 봉사활동이었기에 나만의 의미를 가지고 만족할 만큼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기억에서 잊혔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모나 하툼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보며 해설을 듣는데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팔레스타인 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작가의 이력을 듣자마자 그 먹먹한 마음이 순간 찌릿하게 느껴졌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찔함은 아마도 작가의 유년 시절에 무력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 아니었을까.

[ 제니 홀저 ]
<Cursed>, 2022, 각인된 납과 구리에 도금, 산화처리, 안료, 296개 금속판, 가변설치. 작가, 하우저 앤 워스 제공
<World War III>, 2022, 캡레인 골드, 문 골드 리프, 유화, 리넨, 260 x 201.3 x 3.8 cm. SK Inc. 소장
<Survival: You are so complex...>, 2019, 카라라 화이트 대리석 벤치, 43.2 x 106.7 x 50.8 cm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인 것처럼 보이는 금속판에는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정치적 언어들을 수집해서 새겨 넣은 것들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언어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용되던 저주판 형식으로 재현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원한이나 적대감을 납판에 새겨 땅에 묻었다고 한다. 샤머니즘같이 들렸지만 과학을 모르던 시기의 인간들에게는 그럴듯한 방식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 흩어져 있던 말들을 금속판에 새겨 바닥에 늘여놓은 의도는 무엇일까?

말의 무게를 알게 하려는 작가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YOU ARE SO COMPLEX THAT YOU DON`T RESPOND TO DANGER"

당신은 너무 복잡해서 위험에 반응하지 않는다.

과도한 정보와 복잡한 분석이 오히려 본능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폭력과 위험에 무감각해지면 인간은 오히려 행동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를 알지 못할 때 오히려 무모하지만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끝이 뻔한 것이라 생각할 때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감각을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민첩함이 사라지고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 여기며 나태해지고 고착화되는 인간을 경계한 것이리라.

라이자 루 <Security Fence>, 2005, 유리 비즈, 스틸, 가시철사, 335.3 x 396.2 x 396.2 cm. 이브라힘과 티나 멜라메드 소장 (멜라메드 패밀리 컬렉션)

철조망을 보자마자 시리아 난민촌이 떠올랐다. 산이나 강으로 국경을 구분할 수 없는 지형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은 알겠지만, 죄인들처럼 구분된 영역에서 빠듯하게 정해진 동선만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비참해진 적이 있었다. 이 철조망에 큐빅을 하나씩 붙이는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애나벨 다우 <WHEN IN THE COURSE OF HUMAN EVENTS>, 2019-2020, 마이크로파이버, 수정액, 잉크, 596.9 x 99 cm. 작가, 탄야 와그너 갤러리 제공

기록에 대한 인간의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잘못 쓴 글씨를 수정하는 수정펜을 가지고 꾹꾹 눌러쓴 글에 의미, 그 행위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수미 카나자와 <신문지 위의 드로잉>, 2025, 신문지, 연필, 가변 설치. 작가 제공

현재를 살지만 과거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때도 있어야 한다. 코 앞의 현실에만 급급하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 군상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처참하게 살고 있는 삶을 구조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내가 태어난 이유가 거창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살아내야 할 삶이라면 내 곁에 있는 사람 한 명 정도는 구해낼 수 있는 삶으로 살다 가면 좋지 않겠는가?

사라 제 <Sleepers>, 2024, 혼합 매체, 종이, 끈, 비디오 프로젝션, 알루미늄, 사운드, 가변 설치. 작가, 가고시안 제공
이완 <고유시>, 2025, 시계 560개, 가변 설치. 작가 제공
테마공간 <우리는 별의 먼지다>, 2025, 혼합 매체, 2분 40초, 가변설치.

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섰을 때 사실 섬뜩했다. 변화하는 화면을 쫓아갈 수가 없었고 사방이 거울이라 하나의 사물도 천 개 만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출구를 찾지 못해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있었다. 사진을 찍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는데 등 뒤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환호성이 들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면이 변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작품의 의미가 눈에 들어왔다. 멋쩍게 한발 앞으로 내디뎌 보았다. 그리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사방을 다시 둘러보니 어디가 거울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구분되었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공포스러웠던 순간이 민망할 정도였다.

나는 무엇 때문에 무서웠던 것인가?

부지현 〈Solid Sea〉, 2025, 버려진 집어등, 워셔액, 소금, LED, 가변 설치. 작가 제공

계단 아래에서부터 보이는 작품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바다를 좋아하는 내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파란 바다가 아니라 소금을 이용해서 하얗게 표현한 바다였지만 한눈에 바다라는 것을 알았고 작가의 정서를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멍, 물멍이라고 말들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한참동안 물멍을 한 기분이었다. 평화롭고 따뜻했다.

송동 〈Window Door Screen – Four Screens No. 2〉, 2018-2019, 오래된 창문과 문, 유리, 거울, 아크릴 거울, 철물, 200 ×285 ×90cm. 작가, 페이스 갤러리 제공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인 듯하다. 작품의 의미를 읽기도 전에 나는 이미 열려 있는 문 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작품을 만들어놓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 추측해서 열어놓은 문 안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작가는 그런 인간의 본능을 꼬집었다. 들어다 보는 문 안에 거울이 있었고 그렇게 빼꼼하게 문 안을 들여다보는 내가 보였다.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쇼 시부야
〈SUNRISE FROM A SMALL WINDOW〉 연작, 2020-현재, 아크릴 물감, 55.9 ×30.5cm. 작가 제공
〈EVENT〉 연작, 2020-현재, 아크릴 물감, 55.9 ×30.5cm. 작가 제공

그림을 하나하나 열어서 뒷면에 있는 신문 기사들을 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영문으로 된 기사들을 다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발행된 시기와 헤드라인, 사진을 통해 과거의 사건들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워낙 유명했던 사건이라 들어서 알고 있던 내용들도 있었고, 내가 살고 있는 시기에 발생한 사건들도 몇몇 있었다.

작가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일어났던 수없이 많은 일들 중에 인류의 방향을 바꾸거나 세상을 바꿨던 사건들을 추려서 사실을 추상적으로 표현해 냈다. 그 사건을 보고 느껴지는 감정을 색깔과 구도, 붓터치의 방법 등으로 표현해 냈다. 예술에도 현실을 인식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로버트 몽고메리 <Love is the Revolutionary Energy>, 2025, 알루미늄에 분채 도장, 카본, LED 전구, 295 x590 cm SK Inc. 소장

“사랑은 어두움을 소멸하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혁명적 에너지다.”

미술관 입구에서 제일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전시물이다. 안개가 자욱한 공간에서 밝게 빛나는 무드가 그 내용과 함께 더 가슴 뭉클하게 했다.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연대해야 한다는 말로 느껴졌다. 이성 간의 사랑이든,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든, 이웃 사랑이든, 지하철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에서의 사랑이든 모든 관계는 사랑이 기본이라는 말로 읽혔다. 지하철에서 부딪히지 않게 서로 불쾌해지지 않게 조심하는 마음과 행동조차도 이웃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없다면 어깨를 부딪히든 발을 밟든 무심하게 행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예의 또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제주 올레길 걷기 여행 중에 비를 피해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며 스스로 마음 다독이며 왔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복이 되어서 나왔다. 미술관 안을 세 바퀴를 돌아 관람을 마친 후에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온 듯했다.

지적 허영을 부리며 살던 때가 있었다.

영화는 개봉날 반드시 보아야 했다. 시즌마다 베스트셀러 열 권 정도는 읽고 작가를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수도권 내에 있는 미술관은 한 번쯤은 다녀왔다.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경험한 것들을 쏟아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뿌듯해했다. 나의 삶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여겼었는데 왜 정작 나 자신은 행복하지 않을까?

좋은 사람의 정의는 무엇인가?

내가 정의한 좋은 사람의 정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돌이켜 보면 풋풋했던 시절에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 모습이 애처롭지만 그 당시에 나는 정말 진지했다.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고 발이 묶인 느낌이었으니까.

청소년 시절 사춘기를 겪지 않은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 자아를 찾아 나서기 시작하면 더 거칠어질 수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부모님 눈치도 보아야 했고 당장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주변이나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거침이 없어진다.

그동안 살아온 시간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들면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우울에 빠져들 수도 있다. 내가 그러했다.

인간에게는 도약할 수 있는 시기가 꼭 한 번은 온다. 그 시기가 왔을 때 준비되어 있는 자만이 도약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성실하게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늪에 빠져서 묶인 발은 옴짝달싹 못하고 양 팔만 죽어라 휘저어가며 살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일상을 살아내는 힘을 깨닫기 전까지 평범해 보이는 내 삶이 지루했다. 그러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인들의 발이 묶이는 시기가 왔고 나만 비참한 것이 아니라는 비겁한 위로가 도움이 되었다.

모두가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정신을 붙잡고 내 방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고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엄습해 왔다. 앞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루해 보이는 일상이라도 성실하게 살아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나를 일으키기 위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힘겹게 첫 발을 내딛어 보았지만, 인생 뜻대로 되는 것 없다더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라도 통제해 보려고 규칙을 정하고 실천하고 자신을 관리하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쎴다. 모두가 힘든 상태에서 이악물고 버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조금씩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의미를 찾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알아내는 시간이 되었다.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절대적인 행복의 조건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찾고 나서는 앞으로의 방향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기준이 명확해 지고 나면 행동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어두운 터널에서 한 쪽 방향으로 걷기만 하다가 아주 희미하게 터널 밖 불빛을 발견한 때처럼, 그 불빛만 따라 걸어 나가면 또 무언가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두려움에 힘이 생겨났다. 기대감은 희망을 주었고 두려움은 내가 강해져야 한다는 동기를 주었다.

기대없이 들어간 미술관에서 과거 풍요로웠던 나를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고 밖으로 나와 보니 현실감이 몰려왔다. 안개 자욱한 길을 걸어 나가야 버스를 탈 수 있다는 현실에 부딪히고 나니 꿈이 깬 듯한 각성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며 내딛는 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 무섭기도 했지만 터널은 언젠가 끝이 난다는 말을 곱씹으며 걸었다.

버스를 내렸던 곳에 도착은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우비를 입고 우산도 쓰고 있었지만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이길 장사가 없었다. 잠시라도 비를 피할 곳을 찾아 두리번 거리다가 만난 마을 표지석, "광평리"였다.

이 곳에서의 신비로운 경험은 또 하나의 꿈으로 기억되고 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