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뮤지엄에서 감성 돋는 전시를 보고
장마 기간을 피하기 위해 잡은 여행 일정이었는데 여행 기간 15일 중 4일 동안 비 예보가 있다. 그중 이틀은 이미 비와 함께 했다.
여행의 피로보다 비로 인해 발이 묶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제주의 비는 바람을 동반하는데 그 거칠기가 사람을 쓸어갈 정도였다. 우산도 무용지물이었고 우비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정도였다. 오늘도 비와 바람이 예보된 상태라 미리 걱정하던 터에 어제 만난 지인의 조언으로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미술관?! 제주까지 와서 미술관을 간다는 게 생소하게 느껴졌다. 육지에도 많은 미술관, 박물관을 제주까지 와서 가야 할까 싶었지만 대안이 없던 터라 무작정 출발했다. 기대가 크지 않았다. 실내에서 조용히 음악 들으며 그림 보며 시간 보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목적지인 "포도뮤지엄"은 가는 길조차 녹록지 않았다. 자차가 아니면 접근이 어려운 곳에 있었다. 비까지 와주니 걸어서 가는 길은 스산하기까지 했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내리기 전 버스기사님께 확인을 했기에 한편으론 안심을 하고 일단 걸었다. 걷다 보면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체감으로는 15분 이상을 걸은 것 같았는데, 사실 9분 정도 걸어서 미술관 입구에 도착했다. 아득하게만 보이던 표지판의 텍스트를 가까이 와서야 명확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을 빗겨 나서 우측으로 돌아 들어가니 조용한 미술관의 전신이 나타났다. 건물 외관에서는 "미술관 맞아??"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비를 맞으며 험한 길을 걷던 나에게는 반가울 따름이었다.
한 때 스스로 얼리어댑터, 문화인임을 자처했던 시절이 있었다. 겸손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던 시절이었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지만 내면에서 나는 충분히 타인과 구별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얄팍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 시절은 나를 객관화하지 못했던 듯하다.
사실, 자신을 깊게 들여다본다는 것은 아픈 일이다.
나의 못난 모습을 모두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못난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자기 계발을 했고 그 결과 타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면 못나고 허접한 모습은 가려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듯이 최선을 다해 빛나는 사람이 되려 하다 보니 그 허상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타인의 평가를 무시하지 못했던 나는 시나브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결국 유리천장의 존재를 뛰어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우울감이 쌓이고 삶의 의미조차 잃어가며 아주 서서히 그 끈을 놓으려 했다.
대단한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함께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모여서 좋은 일들 같이 도모하며 유한한 나의 삶을 의미 있게 살아보고자 했던 것뿐이었다.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기왕 태어났다면 그 삶에는 이유가 있으려니 여겼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그 이유가 좀 그럴듯한 것이기를 바랐다. 나라를 구하는 위인?! 아니 아니.
내 주변의 사람들과 선한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며 하루하루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한 세상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시절만큼은.
그러나 스스로도 구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삶을 구하겠다는 생각은 망상과도 같은 것이었다(사실 자신도 스스로를 구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함께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그래서 각기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보듬고 맞춰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치를 모르고 나만 정직하면 되겠지, 나 하나 열심히 살면 세상이 알아주겠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한 마디로 지쳤다. 모든 원인은 내 못난 탓으로 돌리고 세상을 등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서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고 터득해 나갔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보면서 내가 간과한 것들이 무엇인지 곱씹고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방법을 찾고 있었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태도는 바뀌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방법을 몰랐거나 방향을 잘못 잡았을 뿐이었다. 착하게 살려고 한 것조차 잘못된 방향을 잡은 것이었다. 인간은 본래 착하지 않다. 나 역시도 그렇다. 착하게 살아야지, 생각은 하지만 쉽게 착해지지 않는다. 외부 시선이 두려워 내 기질을 모두 드러내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 온갖 성질을 다 부리곤 했다. 욕심을 내봐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하는 것이지 착해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금씩 나에 대해 알게 되고 나를 비추어 인간의 본성을 깨닫게 되면서 그동안 무리하게 했던 나의 "최선"은 발악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몸에 힘을 빼기 시작했다.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가난하게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살고, 부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욕망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 보고 타인을 해치지 않고 슬롯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나를 위한 선택을 하고 노력을 했어야 했다. 어쭙잖은 공명심으로 양심을 앞세우며 정직과 성실을 무기 삼아 나를 포장하려 했지만 나도 역시 게으른 사람이고 욕심 많고 결핍덩어리일 뿐이었다.
앞으로 내 삶에서 타인을 의식하는 모든 행위는 걷어내리라 마음먹었다. 완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할 부분이 반드시 있다. 그 부분도 우선은 나 먼저다. 내 양심이 잘 다듬어진 상태라면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억지로 노력해서 상대를 배려하고 나의 피해를 묵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잘 다듬어진 양심에 의해 적정 선을 지키며 줄타기를 잘할 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즉,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과거 최애 드라마였던 "나의 아저씨" 안에 있는 인물들처럼 성숙한 어른말이다. 긴 시간이 흘렀고 팬데믹 시기에 나의 자존감은 극적으로 회복이 되었다.
마스크 덕분에 타인의 표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고 내 표정도 노출되지 않고 무난하게 관계를 이끌어갈 수가 있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약속을 잡았다가도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코로나 증상을 핑계로 당일 취소도 할 수 있었다. 거절이 두렵지 않게 되었을 때, 타인의 거절도 상처가 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 하며 넘어가는 게 수월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살만해졌다.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다. 각자 자신의 타고난 기질대로 조화롭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나의 만족감을 충족시키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큰 의미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결론을 얻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주체적으로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실패를 해도 어쩔 수 없고 성공을 해도 온전히 나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면 무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