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나를 짓는 일 #08
어떤 시간, 어떤 장소에서 글을 쓰시나요?
아침 6시에 글감을 올려주시니, 출근 준비를 하기 전 질문만을 읽고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 동안 주어진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내용은 어떤 것일지 추측해 본다. 집을 나서고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주어진 내용을 마저 읽는다. 생각이 잘 나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출근길에 거의 마치거나 회사에서 담배 피우거나 할 때 마저 써서 업로드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단이 될 만한 문장 혹은 단어들을 줄을 띄워 적어두었다가 퇴근길에 문단을 채워 나간다.
예전에 시를 쓸 때는(그것들을 시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슬픔에 절어 있는 채로 썼기 때문에 바카라상에 앉아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썼다. 방에 틀어박혀서 계절 변하는 것을 창문을 통해서만 바라보면서 썼으니 지금은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나의 시는 우울감이 그릇에서 넘쳐흐른 수동적인 것이었고 요즘의 글쓰기의 동기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거나 물건의 위치를 정리 정돈하는 것처럼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함이다. 따라서 써서 올리기 전에 한두 번은 다시 읽어보고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고친다. 블로그에도 다시 읽어보고 고쳐서 올린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게 아니고 나를 파악하는 주제들이 나오기 때문에 꼭 고쳐야 할 필요는 없지만, 글을 쓰는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한다.
목요일이 마감이라 내일부터 마감 시즌이 시작된다. 글이 대충이 될 것 같아 걱정이긴 하지만 이번 달로 준비해 주신 세 달의 주제를 다 채우게 된다. 그 이후로는 한 달을 쉬신다고 하니 내가 직접 정한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인데 혼자 하면 잘 될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정말 세 달이 습관이 되어 계속 출퇴근 시간을 잘 활용하는 나를 만나고 싶다.
질문을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한때는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혹은 회사 앞 흡연실에서 쫓기듯 스마트폰을 쥐고 글을 썼다. 누군가 아침 6시마다 성실하게 던져주던 질문을 곱씹으며 샤워를 하고, 덜 깬 머리로 문장을 조각조각 기워 붙였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나 자신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한 일종의 '정리 정돈'이었다. 이때의 글쓰기 자체가 '회고'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지금 회고라는 시스템을 코앞에 맞이했을 때 비교적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쓰는 글쓰기 습관을 선물해 준 진행자에게는 여전히 고마운 마음이 크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짓는다. 매일 쫓기듯 자투리 시간을 그러모으는 대신, 주말의 어느 느슨한 시간을 통째로 비워둔다. 미리 재료를 준비해 작동시켜놓은 제빵기에서 고소하게 익어가는 빵 냄새로 하루를 준비한다. 원두를 곱게 갈아 모카포트에 올리고 불을 켜면서 맥북을 연다. 커피가 끓어오르는 짙은 향이 방 안을 채울 때, 커피를 내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종이에 펜으로 사각거리며 쓰면 더 좋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속도가 손보다 빨라 깜빡 까먹는 걸 방지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게 됐다.
쓰는 방식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하고 싶은 말과 날것의 문장들을 일단 두서없이 나열해 두고, 그 생각들의 조합에 대한 내 의견을 덧붙여 AI에게 초안을 부탁하곤 한다. AI가 내 의도를 엉뚱하게 짚어 다른 방향으로 글을 끌고 갈 때도 종종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그 어긋난 문장들을 보며 "아니, 내가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었지" 하고 직접 고쳐 쓰는 동안 내 생각이 한층 더 뾰족하고 선명해진다. 예전의 글쓰기가 어떻게든 쥐어짜 내거나 나를 겨우 수습하는 정도의 일이었다면, 지금의 글쓰기는 한 주 동안, 아니 여지껏 내내 부지런히 굴려온 생각들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일에 가깝다. 머릿속의 사고와 매일의 행동이 어긋나지 않도록, 내 생각이 무의식의 영역까지 자연스럽게 배어들도록 벼리는 반복 연습.
이제 출퇴근길은 글을 뱉어내는 시간이 아니라 주로 채워 넣는 시간이 되었다. 타인과의 원치 않는 접촉이 이어지는 빽빽한 지하철 안에서, 카타르시스 같은 것은 눈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영상 자극에 빠지는 대신 손목에 부담 없는 300쪽 이하의 가벼운 바카라 한 권을 펼쳐 든다. 꼭 그렇진 않지만 대개는 바카라의 분량이 텍스트의 밀도와 부합하는데, 지하철의 산만한 환경에 적절한 바카라을 읽으며 머릿속 생각들을 다시 한 번 정돈한다. 그러면 그 생각들은 조용히 발효되었다가 주말 맥북 앞 테이블 위에서 맛있게 꺼내 먹을 수 있다.
돌아보면 방에 틀어박혀 창문으로만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우울을 시로 쏟아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걷고, 요가로 몸을 늘리고, 많진 않지만 부지런히 근육을 쓰며 산다. 몸을 움직여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워밍업 하다보니, 굳이 처연한 시를 쓰며 웅크리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창문 밖으로 직접 걸어 나와 두 발로 딛는 삶을 살다 보니, 내 글 역시 자연스레 밝고 단단한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남이 던져주는 질문에 겨우 답을 적어내던 수동적인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내가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건네는 삶을 산다.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몸과 마음에 단단히 채워 넣고, 주말의 고요한 자리에서 그 생각들을 제자리에 맞추어 정돈하면 그뿐이다. 그렇게 내가 읽고 쓰는 시공간의 변화는, 결국 내가 내 삶의 주권을 되찾아온 발자취와 궤도를 맞춰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