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마음이 머무는 곳들 #08
참여하고 있는 팬덤이 있으신가요?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두는 일은 번잡스럽고 피곤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에 오랫동안 몰입하지 못하는 체질일 수도 있다. 바로 내가 그렇다. 몰입 자체를 못하는 편은 아니다. 초심자의 행운에 힘입어 초반에 뭔가 잘 되면 신나서 잔뜩 몰입했다가 조금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거기서부터 금세 흥이 식어버리는 타입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럭저럭 알고 있다고 할 만한 것들은 많은 편이지만 덕질이라고 부를 만큼 오랜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예술이나 상품 같은 대상도 역시 일차 창작물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감동하더라도 그 사람의 역사나 배경을 찾거나 사진과 이미지를 멋있어하고 굿즈를 구매하기보다는 음악을 듣고 앨범을 사고 공연을 보는 데에 그친다. 그렇다 보니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도 '뭐야, 생각보다 잘 모르면서 좋아하네.' 내지는 내 쪽에서 '우와, 그건 뭐야?'하게 된다. 팬'덤’은 누군가와 소통하는 수단으로써 팬이라는 사실이 이용되기 때문에 내 얕고 넓은 관심으로는 심도 있는 대화를 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것으로 인한 인연인 팬덤 또한 형성되거나 참여한 적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이 번잡스럽고 피곤함에도 역시나 좋은 점은 있다. 그게 뭐냐고 얕은 지식과 짧고 굵은 호기심으로 질문하면 대부분의 덕후들은 친절하게도 자신의 모든 관심을 기꺼이 전달해 준다. 무언가를 깊게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을 만나는 것은 항상 재밌고, 또 그런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관심사가 유사한 사람들을 보면 그중 어떤 사람이 더 오랫동안 깊이 덕질을 해왔는지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관심사의 좋은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것은 분명 한 가지 분야에만 덕질을 해온 사람과는 또 다른, 꽤 괜찮은 방식이다.
두 번째로, 현대인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들은 일견 다양해 보이지만 분명 한정된 카테고리 안에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에게 관심을 갖다 보면 카테고리와 카테고리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고 어떤 것들은 이어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바로크 양식은 건축에도 미술에도 음악에도 있다. 다소 심오해 보일 예를 들자면 건축의 기둥은 미술에서는 점이나 선이고 음악에서는 타악기 소리와 같다. 아예 이상한 예를 들면 밴드를 할 때 몸에 익었던 16마디 구성은 음악에는 적용이 되지만 기본 스텝이 12마디 구성인 자이브에는 맞지 않아 춤은 음악과 별개로 자유로운 것임을 알게 되고, 자이브를 배우며 터득한 몸의 리듬을 여행지에서 수영하다 써먹으니 예전보다 잘 움직이게 되고, 스노클링을 하며 물에 떠있다가 학교 다닐 때 난간에 어깨를 끼고 매달려 있던 장면을 떠올리고, 사람들은 엎드리는 걸 좋아하는 데 왜 엎드리는 공간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이차 창작물을 덜 소비하는 대신에 일차 창작물을 더 집중해서 소비한다. 어떤 것은 '와 이런 배경 속에서 이런 걸 만들게 되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으니 이런 걸 만들 수밖에 없었겠네' 하고 평가절하하게 되기도 한다. 좋고 나쁜 것은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다시 일차 창작물을 접했을 때 전과 같은 기분은 느끼지 못하게 된다. 미술관에서 작품의 제목이나 설명을 읽기 전에 먼저 작품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거나 읽어내려고 해 보는 것처럼, 오랫동안 나에게 맞는 것을 그저 즐기다 나중에 알게 되는 정보가 주는 희열도 있다.
이렇듯 내게는 덕질이라 부를 만큼 최선을 다한 분야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을 살아왔으니 이 방식을 잘 써먹는 수밖에는 없다. 번잡스럽고 피곤해도 결국 이게 내 체질이다. 나는 다방면에다 덕질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사방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 된다.
팬덤은 없지만 음악은 좋아합니다
한 가지에 깊게 빠져들지 못하는 나를 '번잡이 체질'이라며 번지르르한 표현으로 둘러댔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전히 나는 그 어떤 팬덤에도 속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쿨한 체질 문제라기보단 가난한 마음 탓이었다. 다른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돈,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은 내게 늘 감당 못 할 사치처럼 느껴졌다. 온 힘을 다해 한 가지 대상을 흠모하기엔 매일이 초조했고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지금은 별 쓸모없어 보이지만 실은 세상에 있어서 너무 소중한 것'을 발굴해 알리고 그것으로 성공해보고 싶다는 모순된 욕심을 품었으니, 일이 수월하게 풀릴 리 없었다. 나조차 무언가에 아낌없이 마음을 내어주지 못하면서 대체 무슨 수로 남의 마음을 흔들겠는가.
이상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결핍과 불안을 버텨내어 무언가를 이룬 뒤에야 비로소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대신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들 안에서 충분히 기쁨을 누리는 쪽에 시선을 둔다. 그러자 그동안 '번잡스럽다'는 핑계 뒤에 숨겨두었던, 실은 내가 진작부터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대상들의 윤곽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내 취향을, 덕질할 대상을 하나로 좁히지 못한다. 누군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재즈나 록 같은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 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질문의 결이 조금만 더 좁혀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떤 재즈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유럽 특유의 서늘하고 짙은 서정성이 배어있는 엔리코 피에라눈치의 피아노나, 남미의 리듬과 멜로디를 지적으로 녹여내는 팻 메시니의 퓨전 재즈를 좋아한다고 좁혀서 말할 수 있다. 이 장르 저 장르를 기웃거리느라 내겐 뚜렷한 취향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저 '음악'이라는 세계 전체를 통째로 애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 가장 또렷한 취향이었던 셈이다.
서사가 있는 매체를 이야기하자면, 내가 진짜로 전율하는 대상은 심플하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과 몰입을 다룬 이야기들. <소울>이나 <슬램덩크>, <모자무싸>, <룩 백> 같은 작품을 볼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맺힌다. 그 지독한 몰입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낸 작가의 시간과, 작중 인물들의 우직한 노력 모두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만다. 어쩌면 나는 어떤 특정한 스타나 브랜드의 팬이 아니라, '무언가에 진심을 다해 몰입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덕질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시절 음치에 가깝던 친구가 쉼 없이 노래를 연습하고 학원을 다니며 기어코 가수 뺨치는 실력을 갖추어 가던 그 경이로운 과정을 나는 곁에서 지켜보았다. 지금 내가 꾸리는 커뮤니티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무언가에 이미 도가 튼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조심스럽게 새로운 세계에 첫 발을 디뎌보려는 이들이다. 진심인지, 재능이 있는지, 혹시 너무 재미가 있어 취미가 될지, 한 번도 온몸으로 부딪쳐보지 않고선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주저하며 발을 내딛는 그 서툰 진심들이 쉽게 꺾이지 않도록 힘껏 깔아주고 싶다.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솔직하게 알아가고, 타인의 뜨거운 노력에는 온 힘을 다해 응원하는 일. 그것이 팬덤 없는 내가 삶에 진심을 바치는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