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토착 신앙과 해원의 인문학
오늘날 한국의 도시 뒷골목을 걷다 보면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 그늘 아래, 대나무에 붉고 하얀 깃발을 내건 점집들을 쉽게 마주친다. 현대인들에게 무속(巫俗)과 토착 신앙은 대개 이중적인 시선의 대상이다. 한쪽에서는 불길하고 천박한 '미신'으로 경멸하며 손가락질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앞날이 불안할 때 은밀히 찾아가 복채를 쥐여주며 길흉화복을 묻는 기복의 도구로 소비한다.
그러나 이 왜곡된 시선은 역사적 폭력의 결과물이다. 조선 500년 동안 이어진 유교 사대부들의 탄압, 일제강점기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자행된 ‘미신 타파’ 정바카라, 그리고 해방 이후 서구 근대화의 광풍과 배타적인 기독교 근본주의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거대한 편견의 낙인이었다.
외래 종교들이 한반도에 들어오기 훨씬 전, 수천 년 동안 이 척박한 반도의 백성들을 살아가게 한 원초적인 숨결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복잡한 교리 바카라이나 거대한 석조 건물에 갇혀 있지 않았다. 이름 없는 민초들이 흘린 눈물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가슴앓이 속에서, 그리고 저 넓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토해내던 탄식 속에서 살아 숨 쉬던 ‘삶의 치유와 연대의 기술’이었다.
한국 토착 신앙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늘’이 있었다. 그러나 이 하늘은 중동의 광야에서 번개를 치며 인간을 복종시키던 질투와 분노의 유일신(야훼)과는 결이 전혀 달랐다.
한국인들이 불렀던 '하느님' 혹은 '한울님'은 보좌에 앉아 죄인을 감시하고 지옥불로 위협하는 인격적 형태의 독재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온 우주에 가득 차 생명을 낳고 기르는 거대한 생명의 근원이자,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순리를 가리키는 거대한 도덕적 품이었다.
이 독특한 신관은 단군 신화의 출발선에서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늘의 신 환웅은 지상의 인간들을 심판하거나 지배하기 위해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비와 바람, 구름을 다스리는 신들을 거느리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곰과 호랑이라는 짐승을 만나고, 그들의 고통과 인내를 곁에서 지켜보며 마침내 사람으로 빚어냈다. 그리고 그 건국의 이념으로 내세운 기치가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이었다.
서구의 신화에서 인간이 신의 노예로 창조되었거나, 신의 법을 어겨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저주받은 죄인으로 규정된 것과 비교해 보라.
한국의 신화에서 하늘은 인간을 향해 군림하지 않는다. 신의 뜻은 인간을 지배하는 데 있지 않고, 지상의 생명들을 이롭게 돕는 데 있었다. 인간은 신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결함투성이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기운을 온몸에 품고 지상에서 그 거룩함을 실현해 내는 당당한 주체였다. 신과 인간 사이에 가혹한 굴종과 부채의 관계가 들어설 자리는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삶이란 늘 불친절한 법이다.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 끼인 한반도의 역사는 외세의 침략과 내란, 가뭄과 기근, 그리고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로 얼룩진 피눈물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민초들이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칼에 베이고, 굶어 죽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
여기서 한국 문화의 가장 깊은 실존적 정서인 ‘한(恨)’이 싹텄다.
한은 단순한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부조리한 폭력에 짓밟혔으나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 없어 가슴속에 응어리진 채 굳어버린 피울음이다.
기독교의 교리는 비명횡사한 자를 향해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섭리"라며 입을 막았고, 베다의 카르마는 "전생의 죄악"이라며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한국의 무속은 그 매정한 교리적 폭력을 단호히 거부했다. 억울하게 죽은 자를 향해 "네 탓"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마당 한가운데 멍석을 깔고 거대한 치유의 굿판을 벌였다. 바로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진오귀굿’과 ‘씻김굿’이었다.
굿판의 본질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점괘가 아니라, 상처 입은 자들을 위한 ‘집단적 심리치료극’이었다.
무당은 신과 인간 사이의 특별한 중재자가 아니었다. 무당은 스스로 자신의 육체를 내어주며, 억울하게 죽어간 망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토해내는 그릇이 되었다. 무당의 입을 통해 죽은 자가 살아 돌아와 남은 가족을 부둥켜안고 통곡하기 시작한다.
"내가 왜 이렇게 차가운 흙탕물 속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는지, 어린 자식들을 두고 떠나는 어미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살아남은 자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땅을 치고 가슴을 쥐어뜯는다.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미안함,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바카라감이 피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다.
실컷 울고, 억울함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고, 마침내 서로를 얼싸안고 용서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엉킨 실타래를 푸는 ‘해원(解冤, 원통함을 풂)’이었다.
한을 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망자는 한 줌의 미련도 없이 저승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고(상생, 相生), 살아남은 자들은 비로소 자바카라의 늪에서 빠져나와 쟁기를 잡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한국의 무속은 인간의 고통을 도덕적으로 단죄하지 않았다. 짓밟힌 자의 눈물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공동체의 춤과 노래로 그 상처를 함께 씻어내는 가장 따뜻하고 공감이 있는 실존적 연대의 장치였다.
이러한 포용의 힘은 한국 고유의 사유 체계인 ‘풍류(風流)’로 수렴되었다.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신세계를 다음과 같이 압축했다.
"나라에 깊고 오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이는 유교, 불교, 도교 삼교를 이미 품고 있으며, 모든 생명과 접촉하여 감화시키는 것이다."
풍류의 본질은 ‘배척하지 않고 품어 안는 유연함’에 있었다. 한국의 토착 영성은 교리적 순혈주의에 집착하여 피를 흘린 적이 없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바다를 건너 들어왔을 때, 토착 신앙은 칼을 빼 들고 종교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오히려 절 마당 한구석에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모신 '산신각'과 '칠성각'을 슬그머니 지어주며 불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불교 역시 토착 신앙의 하늘과 산천을 품어 안았다.
훗날 조선의 유교 제례 속에도, 심지어 20세기 서구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교회의 독특한 풍경인 새벽기도와 통성기도, 가슴을 쥐어뜯으며 부르짖는 눈물의 통곡은 서구의 정통 신학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빌던 어머니들의 지극정성과, 굿판에서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내던 해원의 에너지가 기독교의 외피를 입고 분출된 것이었다.
한국의 토착 신앙은 절대적 도그마의 잣대로 타인을 정죄하지 않았다. 이질적인 외래 사상이 밀려올 때마다 그것을 거부하기보다 자신의 거대한 품 안에서 삭히고 버무려, 결국 인간의 삶을 위로하는 신명과 화해의 노래로 승화시켜 냈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답고 질긴 생명력을 지녔던 대지의 영성 역시, 현대 문명의 거센 파도 앞에서 비정상적 변질과 쇠락을 피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온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었고,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거대한 도시의 콘크리트 정글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울어주던 마을 대동굿의 마당은 사라졌다. 상처를 치유하던 공동체의 끈이 끊어지자, 무속은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개인들의 불안을 사고파는 사적인 '점집'으로 쪼그라들었다.
상업화된 자본주의의 논리가 침투하자 해원의 드라마는 사라지고,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자극해 돈을 뜯어내는 조악한 복채 비즈니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부적을 쓰지 않으면 자식이 다친다", "굿을 하지 않으면 남편 사업이 망한다"는 식의 영적 협박은, 과거 무속이 그토록 따뜻하게 품어 안았던 인간에 대한 존중을 스스로 짓밟는 자해 행위였다. 한을 풀어주던 신성한 사제는 불안을 파는 장사치로 전락했고, 대중의 뇌리 속에 무속은 마침내 천박한 미신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뒤집어쓰게 되었다.
한국의 토착 신앙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경전이나 논리적인 교리 체계를 갖추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가 발명한 그 어떤 종교보다도 인간의 비극을 진심으로 바라봤고,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서 함께 눈물 흘렸던 대지의 숨결이었다.
하늘을 섬기되 맹목적으로 무릎 꿇지 않았고, 고통을 마주하되 죄의식으로 도망치지 않았으며, 오직 춤과 노래로 삶의 부조리를 풀어내려 했던 위대한 인문학적 유산이었다.
우리는 이제 1부의 긴 여정을 매듭짓는 자리에 섰다.
자연의 야만을 운명으로 포장했던 그리스 신화, 행위의 인과율로 우주적 감옥을 축조했던 베다, 직선의 시간 속에서 죄의식과 번영의 엔진을 돌렸던 기독교, 사막의 혼돈을 엄격한 법전으로 통제했던 이슬람교, 고통의 뿌리를 뽑기 위해 신마저 지워버렸던 불교, 그리고 짓밟힌 인간의 한을 품어 안았던 한국의 토착 신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불안이라는 맹수를 피하기 위해 저마다 나름대로 정교하고 거대한 영적 지도들을 그려왔다. 그 지도들은 수천 년 동안 문명을 지탱했고 수십억 인류의 정신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찬란했던 종교의 역사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때 하늘을 뒤흔들며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수많은 절대신들은, 대체 왜 오늘날 지나간 역사의 흙먼지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가?"
이제 1부의 마지막 장, 모든 종교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거역할 수 없는 문명사적 철칙, “잊혀진 신들의 무덤 : 종교의 자연사”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