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신을 지운 자리에 피어난 환상

붓다의 실존적 해체와 기복의 역사

by강훈

올림포스의 신들이 번덕스러운 운명을 휘두르고, 야훼가 모세에게 서슬 퍼런 율법의 돌판을 내리치며, 브라만 사제들이 제단의 불길 앞에서 비밀스러운 주문을 외울 때, 종교의 시선은 언제나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인간의 고통은 언제나 하늘에 계신 신의 뜻이거나, 신의 분노이거나, 혹은 인간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거룩한 섭리의 결과물이어야 했다. 신이라는 거대한 주인이 무대 위에 서 있는 한, 인간은 고통의 원인을 하늘에 묻고 그 자비를 구걸하는 수동적인 관객에 머물러야 했다.

바로 그 오랜 신화의 문법을 단칼에 베어내며, 하늘을 쳐다보기를 단호하게 거부한 기이한 사상가가 등장했다. 기원전 6세기경, 인도 북부 카필라바투의 왕자였던 싯다르타 고타마, 훗날 우리가 붓다(Buddha, 깨달은 자)라 부르게 될 인물이었다.

온갖 영광과 안락이 보장된 궁궐 안에서 살아가던 청년 싯다르타는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삶의 적나라한 실체와 마주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허리를 굽히고 떨고 있는 노인을 보았고, 열병에 걸려 신음하며 오물을 흘리는 환자를 보았으며, 짚더미에 실려 화장터로 향하는 싸늘한 시신을 보았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절대적인 비극 앞에서 왕궁 안에서의 화려함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 비극을 마주한 싯다르타의 반응이다. 그는 인드라 신에게 가축을 태워 바치며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브라만 사제를 찾아가 비싼 돈을 주고 액막이 주문을 사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왕관을 벗어던지고 궁궐을 빠져나와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붓다는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예언자나 사제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진단하는 임상의사와 같은 태도를 취했다.

어느 날 한 수행자가 찾아와 우주는 영원한가 덧없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영혼은 육체와 하나인가 다른가 같은 거창한 형이상학적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붓다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후대 불교에서 말하는 ‘무기(無記, 답하지 않고 침묵함)’였다. 수행자가 화를 내자 붓다는 조용히 ‘독화살의 비유’를 들려주었다.

독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화살을 쏜 자가 키가 큰지 작은지, 어떤 가문의 출신인지, 활의 재질이 뿔인지 나무인지, 화살촉의 독이 어떤 식물에서 추출된 것인지를 캐묻는 동안 환자는 독이 온몸에 퍼져 숨을 거두고 만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쓸데없는 사변을 멈추고 환자의 살에 박힌 독화살을 뽑아내는 일뿐이다.

붓다에게 있어 세상의 기원이나 신의 존재 유무는 한가한 지적 유희에 불과했다. 그에게 유일하게 중요했던 것은 지금 살갗을 찢고 박혀있는 인간의 구체적인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라는 절박한 실존의 문제였다.

고통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붓다가 들이댄 메스는 종교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해체의 혁명을 낳았다. 바로 ‘연기법(緣起法, Pratītyasamutpāda)’과 ‘무아(無我, Anātman)’의 발견이었다.

당대 인도의 베다 철학은 끝없는 윤회의 고통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영원불멸의 참된 자아, 즉 '아트만'이 내면에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겉껍데기인 육신은 썩어 문드러질지언정, 그 안의 순수한 알맹이는 영원히 지속된다는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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