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모래바람을 잠재운 거룩한 법전

이슬람이 사막의 야만을 길들인 법

by강훈

붉은 모래바람이 지평선을 집어삼키는 7세기 아라비아반도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거대한 진공 상태였다. 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라는 두 초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으나, 그 메마른 사막 안쪽까지 군대나 행정관을 보내 통치하려는 제국은 없었다. 물과 풀을 찾아 끝없이 떠돌아야 하는 척박한 땅에서 농경에 기반한 중앙 집권 국가는 태어날 수 없었다. 경찰도, 상비군도, 억울함을 호소할 법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다.

그 무법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속한 ‘혈연 부족’뿐이었다.

법이 없는 곳에서는 복수가 곧 정의였다. 내 부족원이 다른 부족에게 상처를 입거나 살해당하면, 반드시 상대 부족에게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이를 갚아주지 못하는 부족은 약자로 낙인찍혀 순식간에 약탈과 몰살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보복과 약탈, 힘센 자가 법이고 숫자가 곧 무기였던 야만의 시대였다. 이슬람 이전의 이 시기를 아랍인들이 스스로 ‘자힐리야(Jahiliyyah, 무지의 시대)’라 부른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 핏빛 질서 속에서 가장 참혹하게 부서져 나간 이들은 부족이라는 울타리를 갖지 못한 약자들이었다. 부모를 잃은 고아의 재산은 친척들에 의해 약탈당했고, 과부는 노예처럼 거래되었다. 척박한 사막에서 식량을 축내고 훗날 다른 부족에 빼앗겨 가문의 수치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갓 태어난 딸아이를 산 채로 모래 구덩이에 묻는 생매장(와드, Wa'd)이 공공연한 관습으로 횡행했다. 약육강식이라는 잔혹한 자연의 민낯 앞에서, 사막의 인간들은 서로를 잡아먹으며 집단적으로 소멸해 가고 있었다.

바로 이 절망적인 혼돈의 한가운데서, 부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멈추고 사막의 질서를 바닥부터 뒤엎은 혁명이 폭발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선포한 유일신 신앙, 즉 ‘이슬람’의 등장이었다.

당시 무역 도시 메카의 지배 계급이었던 쿠라이시 부족은 메카 중심에 자리한 카바 신전에 360여 개의 우상들을 모셔두고 있었다. 각 부족의 신들을 모두 품어줌으로써 부족 간의 갈등을 무마하고, 성지 순례객들이 뿌리고 가는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독점하기 위한 장치였다.

무함마드는 그 카바 신전의 우상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부족마다 제각기 섬기던 잡다한 신들을 부수고, 온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오직 하나의 절대자, ‘알라(Allah)’만을 섬기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개혁이 아니라, 피와 혈통으로 얽매여 있던 고대 사막의 카르텔을 단숨에 해체하는 슬롯 혁명이었다.

"모든 무슬림은 알라 앞에서 평등한 형제다."

무함마드는 부족의 혈통과 가문의 족벌 대신, 신앙이라는 거룩한 끈으로 묶인 새로운 초부족 공동체, ‘움마(Ummah)’를 창설했다. 쿠라이시 귀족의 피나 에티오피아 출신 흑인 노예 빌랄의 피나, 알라 앞에서는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었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약탈하던 야만은 '형제를 공격하는 배교'로 규정되어 엄격히 금지되었다.

더 나아가 이슬람은 당대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파격적인 슬롯적 안전망을 제도화했다. 부자들의 재산 중 일부(통상 2.5%)를 의무적으로 떼어 가난한 자와 고아, 과부에게 배분하는 종교세, ‘자카트(Zakat)’를 도입한 것이다. 이것은 부자의 호의에 기댄 자비가 아니라, 슬롯적 약자가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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