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킬로에서 50킬로까지 , 나를 알아가기.

by몽접

재작년까지 내 몸무게는 인생 최고치 70킬로를 육박했다. 알 수 없었다. 안 먹어도 적금을 넣듯이 몸은 불어났고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갖은 운동을 하고 먹지 않기로 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너는 돼지다라고 말을 하면서 커피로 연명을 했지만 살은 불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4월까지 나는 핫팩을 끼고 살았다. 남들보다 추위를 많이 타고 살았다. 주위에서는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늘 그렇게 살았으니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옆 자리 동료가 "자기 혹시 갑상선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우리 시어머니 갑상선 문제 있으셨거든. 자기랑 증상이 비슷한데?"

그냥 들었는데 정말인가 싶어서 리서치를 해보니 그렇다. 나는 결국 집 근처 큰 병원을 찾아가 의뢰를 했고 결과는 갑상선 저하증 하시모토였다. 수치는 심각했고 의사는 너무 늦게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모르게 "저 그러면 제 몸무게는 약을 복용하면 내려갈까요?"

의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드시지 않았는데 올라간 거면 정상수치로 되면 내려갑니다"

라고 하셨고 모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난 약을 먹고 회사를 다녔다.


빈속에 갑상선 약을 복용하니 피곤함은 훨씬 덜했고 일을 하고 나면 기절하듯이 너무 피곤해서 송장처럼 잤는데 그것도 살짝 덜한 것 같고 일단 커피를 많이 줄였다. 그리고 약을 복용하고 한 달 뒤 다시 약을 복용하고 수치를 확인을 하고 그 수치에 따라서 약을 조절하기로 했다.


피검사를 하고 약을 조절하면서 그렇게 3달을 하고 나는 결국 20킬로가 감량이 되었다. 신기했다. 별다른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약을 먹은 건데 혹시나 갑상선 항진증으로 간 건 아닐까 싶어서 여쭤봤더니 정상수치로 돌아와서 된 거니 걱정 말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한시름을 놓고서 50킬로가 되면서 그동안 입었던 옷들을 다 버리고 다시 옷을 구매했다.


단순히 옷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를 너무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게 바쁘다고 먹고살아야 한다고 어떻게든 버틴다고 버텼는데 이렇게 내가 망가지다니.. 헛했다. 다달이 찍히는 월급을 보면서 울음이 났다. 자본주의 슬롯에서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하 일이지만 이렇게 망가지는 내 몸이 무엇을 위에서 살았던 건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 생각을 뒤로 돌려보자.


대학 때 나는 심각한 위경련을 겪은 적이 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이어트 후유증이었지만 미루고 미뤄서 집에서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서 이런저런 사진을 찍는 동안 정신이 없어서 엄마는 무척 우셨다고 그런 엄마를 뒤로 하고 아빠는 결심을 하셨는지 서울로 가서 진단을 받으시겠다고 서울 큰 병원을 알아보고 가려고 할 때 의사는 나에게 위경련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결국은 나를 방치한 결과였다. 그때부터 아빠는 절대로 다이어트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루 삼각김밥 하나 두유 한팩으로 살면서 내 몸무게를 유지하게 치열하게 살았는데 그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너 그러다 나이 들면 훅 간다"라는 말이었다.

학교 앞 가장 저렴한 헬스클럽을 다니면서 나는 날씬한 사람들이 헬스클럽을 더 많이 다니는 것 같아서 괜히 더 열심히 다녔고 그렇게 다니면서 감량을 하고 살았는데 갑상선 저하증 진단을 받고서는 내 인생 한쪽이 무너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는 많이 있지 않은가. 나 같은 경우는 꼭 뭔가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큰 이벤트. 그래서 이번 갑상선이라는 질병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나이 들면 병으로 온다고 하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싶어서 많이 허탈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살아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난 연민이 없다.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는 편이고 남들에 비해 나 자신에 주는 점수는 매우 짜다.

소금보다 짜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인데 이런 스타일에 할 말은 다 한 거지라는 생각에 그동안 난 내 몸뚱이를 들고서 무엇을 하고 살았던가 하고 깊은 생각을 했다.


그래 먹어도 너무 먹지 않았는데도 살은 불었고 체중계를 두 번이나 버렸다. 화가 나서.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상적으로 살고 있고 걸으며 식단을 하면서 잘 살고 있다. 한동안은 살이 너무 빠져서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걱정을 했지만 그건 내가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사람은 늘 그렇듯 자신에게 신경을 쓰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어렸을 때 엄마는 내 몸무게를 보고서 그날의 밥상이 달랐다. 예를 들면 좀 빠졌다 싶으면 닭을 삶아서 온 가족이 먹었다. 아빠는 "아니 무슨 날이야?" 하면 엄마는 "아니 몽접이가 2킬로나 빠졌어요" 하면 아빠는 "그럼..." 하시며 다 같이 닭을 먹었는데 그렇게 자식을 키우는 엄마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세심하셨을까 싶어서

가끔 어릴 때를 생각하면 그 숫자들이 단순한 숫자는 아니었구나 싶어서 눈물이 난다.


자식을 키워내는 일에도 숫자 빗금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던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몸무게에 예민하셨나 싶다. 난 올라가기 싫다고 하고 엄마는 올라가라고 하고, 그렇게 두어 번 이야기가 오르내리면 엄마는 "몽접아 엄마가 너 크는 게 좋아서 그래"라고 하셔서 살짝 웃으시며 내미신 바나나우유에 넘어가 올라가면 "엄마 살이 쪘어" 하고 울면 엄마는 "잘 살고 있는 거야"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는 싫었는데 지금은 그 잘살고 있는 거야,라는 말이 왜 이리 와닿는지 모르겠다.

엄마, 당신 말이 맞았어요.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맞았어요.

감사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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