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자산(RWA)과 권리의 토큰화
라이브 「카피바라가 토큰을 깨문 이유」, 오늘도 바로 시작합니다!
"집을 토큰으로 쪼개서, NFT로 만들어서 판다던데
저도 하나 사볼까요?"
잠시만요, 카피바라! 사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그 토큰으로 내가 사는 게 무엇인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집을 사는 게 아닙니다. 블록체인에 올라가는 건 집이 아니라 '집에 대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그 권리가 진짜가 되려면, 블록체인 밖에서 누군가 그 약속을 지켜 줘야 합니다. 오늘은 이 두 명제를 풀어 보겠습니다.
먼저 블록체인과 토큰, 그리고 NFT가 같은 개념인지 궁금해하는 카피바라가 있을 텐데요, 모두 다른 개념입니다. 블록체인은 노트고, 토큰은 그 노트에 적힌 한 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으로 치면 블록체인은 장부 전체이고, 토큰은 그 장부에 적힌 기록입니다. 하나의 블록체인 위에 수많은 토큰이 적힐 수 있고, 토큰이 꼭 누구나 보는 공개 블록체인에만 적히는 것도 아닙니다. 금융기관끼리만 쓰는 비공개 장부에 적힐 수도 있습니다.
토큰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100원짜리 동전처럼 서로 똑같은 토큰입니다. 내 100원과 네 100원을 바꿔도 아무 차이가 없죠. 다른 하나는 아파트의 "101동 1203호"처럼 하나하나에 고유한 번호가 붙어 있어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서로 다른 토큰입니다. 이게 NFT입니다. NFT의 N은 Non-fungible, 즉 "서로 바꿀 수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이 차이는 뒤에서 다시 쓰이니 기억해 둡시다!
다시 카피바라의 집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아파트는 땅 위에 있습니다. 콘크리트와 철근과 우리 집 냉장고는 디지털 세계로 이사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부동산 토큰화"라는 말에서 토큰이 되는 건 대체 무엇일까요? 카피바라가 블록체인 안에서 꺼내는 건 집일까요?
답은 집이 아니라, 집에 대한 권리입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하나의 자산을 세 겹으로 나눠 보면 쉽습니다.
이 중에서 세 번째 층, "기록"에 해당하는 부분이 토큰화 가능한 영역입니다. 지난 편에서 "토큰화는 자산이 아니라 장부를 바꾸는 기술"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여기 실제로 집을 토큰으로 나눠 판 미국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2019년부터 이 일을 시작해 6만 5천 명이 넘는 투자자를 모았다고 밝혔습니다. 대상은 대부분 단독주택이나 2세대 주택이었습니다. 2024년 이 회사는 디트로이트의 작은 회색 집 한 채를 1,320개 토큰으로 나눠 개당 약 50달러에 팔았습니다. 토큰을 가진 사람은 그 집에서 나오는 월세를 나눠 받습니다. 회사가 예상한 월세는 한 달 약 510달러였으니, 토큰 하나당 한 달에 39센트쯤 들어오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1,320개는 모두 서로 똑같은 토큰입니다. NFT가 아닌 것이죠. 집 한 채를 통째로 하나의 토큰에 담는다면 세상에 하나뿐인 NFT가 어울리지만, 이렇게 잘게 나눌 때는 조각끼리 똑같아야 사고팔기 편하니까요.
여기서 토큰을 산 사람이 무엇을 가졌을까요?
집을 가진 게 아닙니다. 그 집에 들어가 살 수도 없고, 등기부에 이름이 오르지도 않습니다. 가진 건 월세를 나눠 받을 권리입니다.
대신 쪼갤 수 있습니다. 한국에 사는 카피바라도 50달러로 디트로이트 집 월세의 1,320분의 1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양도할 수 있습니다. 토큰을 다른 사람에게 팔면, 월세를 받을 권리도 함께 넘어갑니다.
부동산에서 토큰화를 화두에 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억짜리 집을 통째로 살 수는 없어도, 그 집에서 나오는 권리의 조각은 살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블록체인 밖에 있는 진짜 세상의 자산을 실물자산(RWA, Real World Assets) 이라고 부르고, 그 권리를 담은 블록체인 안의 토큰을 RWA 토큰이라고 부릅니다. 뉴스에서 "RWA가 뜬다"고 할 때는 보통 이 RWA 토큰을 줄여 말하는 거예요.
토큰은 블록체인에 완벽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몇 개를 가졌는지, 언제 누구에게 넘겼는지 지울 수도 고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지켜 주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집에 정말 세입자가 살고 있는지
누군가 지붕이 새면 고치고 월세를 걷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집이 정말 그 회사의 것인지
전부 블록체인 밖의 일입니다. 토큰이 아무리 안전하게 기록되어 있어도, 블록체인 밖에서 누군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토큰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실물자산 토큰화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이것입니다.
이 토큰과 진짜 자산을 누가, 어떻게 연결(보장)해 주는가?
국내 부동산 조각투자 서비스들은 대체로 이런 구조를 씁니다. 건물을 신탁회사에 맡기고, 그 신탁에서 나오는 수익을 받을 권리를 증권으로 만든 뒤, 그 권리를 잘게 나눠 투자자에게 파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투자자가 사는 것은 건물의 소유권이 아니라 수익을 나눠 받을 권리입니다. 건물 등기부에 내 이름이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건물과 투자자 사이의 약속을 지켜 주는 것은 블록체인이 아니라 신탁회사와 법입니다.
그리고 쪼개 파는 대상은 우리 집 같은 아파트보다 상업용 빌딩이 대부분입니다.
디트로이트의 회사가 약속을 스스로 지키겠다고 했다면, 국내 구조는 그 약속을 신탁회사와 법에 맡긴 셈입니다.
토큰이 되는 건 집이 아니라 집에 대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그 권리는 블록체인 밖에서 누군가 지켜 줘야 진짜가 됩니다.
그러니 사기 전에 꼭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 토큰 뒤에서, 블록체인 밖의 약속을 누가 지켜 주는가?
그렇다면, 아까 그 디트로이트의 회색 집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 토큰의 구매자들은 이 부분을 확인하고 샀을까요? 이 이야기의 결말은 7편에서 공개하겠습니다. 살짝 스포하자면, 좀 무서운 이야기랄까요...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아까부터 저기 손 들고 계신 카피바라 질문 주시죠.
"비트코인, 코인, 토큰, 토큰증권... 다 같은 거 아니에요?"
비슷해 보이는 이 단어들이 왜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지, 다음 라이브에서 깨물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BridgeDetroit: https://www.bridgedetroit.com/the-real-estate-scheme-gobbling-up-detroit-one-digital-token-at-a-time/
Mortgage Professional America: https://www.mpamag.com/us/news/general/detroit-sues-accuses-blockchain-company-of-hundreds-of-housing-violations/54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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