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지 않은 날

by한울

그녀는 어머니의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통에 붙은 날짜를 확인하고, 먹다 남은 국을 버리고, 다음 날 먹을 반찬을 앞쪽으로 옮겼다. 냉장고 문에는 메모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아침 약, 점심 약, 가스레인지 확인. 글씨가 흐려질 때마다 새 종이에 다시 적어 붙였다.

처음에는 두세 장이면 충분했다. 요즘은 냉장고 문을 가득 채우고도 부족했다.

“오늘은 누가 온다고 했지?”

거실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냉장고 문을 닫으며 대답했다.

“딸이요. 제가 왔잖아요.”

어머니는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민망한 사람처럼 웃었다.

“아이고, 내가 또 깜빡했네.”

나도 웃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괜찮다는 말을 한 뒤였다. 어머니가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리면, 식탁에 놓인 수저를 괜히 가지런히 맞추곤 했다.

어머니는 어떤 날에는 문을 열자마자 이름을 불렀다.

“서윤아, 왔니?”

그런 날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어머니는 좋아하는 반찬을 기억해 냈고, 어릴 때 감기에 걸려 밤새 기침하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구와 다투고 울면서 집에 돌아온 날이 언제였는지도 이야기했다. 그런 날에는 나도 예전처럼 어머니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에는 어제 함께 웃었던 딸을 낯선 방문객처럼 바라보기도 했다.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마다 이름을 알려 주었다. 딸이라고 설명했고,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 주었다. 어머니가 미안해하면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면 내가 정말 딸인지 증명하는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들었다. 시험지를 채점하는 사람은 어머니였고, 나는 매번 답을 맞혀도 합격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날도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는 물었다.

“그런데 너는 이름이 뭐니?”

가방 끈을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서윤이요.”

“이름이 참 예쁘네.”

어머니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웃으며 현관문을 닫았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난 뒤에도 한동안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그날 밤, 오래된 사진첩을 꺼냈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부터 가족사진을 모아 둔 앨범이었다. 사진마다 날짜가 적혀 있었고, 몇몇 사진 뒤에는 어머니의 글씨로 짧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

사진첩 중간쯤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어린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였고, 사진 속 아이는 앞니 하나가 빠진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사진 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서윤이 처음 혼자서 끝까지 걸어간 날.’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동네 공원에 갔던 날이었다. 평소에는 조금만 걸어도 안아 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그날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까지 걸었다. 중간에 몇 번이나 쉬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서두르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가 다시 걸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

그날은 오래도록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도, 어딘가 멀리 여행을 간 것도 아니었다. 느리게 걸어도 괜찮았고, 몇 번을 쉬어도 괜찮았다. 어머니는 내가 다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을 잡아 주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다 문득 생각했다.

지금의 어머니는 그날을 기억할까.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사진을 보여 주면 웃을 수도 있겠지만, 사진 속 아이가 자신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까지 떠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사진을 내려놓았다. 내게 남아 있는 기억마저 언젠가 아무런 대답도 받지 못하는 기억이 될 것 같았다.

다음 날, 사진을 가방에 넣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옛날 사진 찾았어. 내가 어릴 때 공원에서 찍은 거.”

“그래? 무슨 사진인데?”

“내가 처음 혼자 집까지 걸어간 날이래. 엄마가 뒤에 써 놨어.”

전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찾는 모양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사진 뒷면의 글씨를 다시 읽었다.

“응. 엄마가 적어 놨잖아.”

“내가 썼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거짓말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기색도 없었다. 정말 기억나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진 보내 줄게. 한번 봐 봐.”

전화를 끊고 사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아이고, 애가 참 작았네. 너도 고생했겠다.’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어머니는 사진 속 아이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본 것 같았지만, 그날을 함께 보냈다는 기억은 없는 듯했다. 내가 몇 번이나 쉬었는지, 어머니가 어떻게 기다려 주었는지, 집에 도착했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사진 속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날 밤, 사진을 식탁 위에 놓아두었다.

내게는 분명히 남아 있는 기억이었다. 어머니가 손을 잡아 주었던 감촉도, 쉬었다 가자고 했던 목소리도 기억났다. 하지만 그 기억을 어머니에게 보여 줄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같은 장면을 떠올려 주기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기억해 낸다면, 내가 그때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에도 어머니의 집에 들렀다. 냉장고에 반찬을 채우고, 약을 먹었는지 확인하고, 싱크대에 쌓인 컵을 씻었다. 집을 나서려는데 어머니가 뒤에서 불렀다.

“저기요.”

돌아보았다.

“네?”

“다음에 오실 때 이름 좀 알려 주세요. 내가 자꾸 잊어버려서.”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이름을 말해 주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풀이했다.

“서윤이구나. 그래, 서윤이.”

그 순간만큼은 어머니가 내 이름을 기억했다. 나는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그 이름이 다음 방문까지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가방에서 꺼냈다. 사진 속 어머니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장면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언젠가 어머니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적어도 나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기억을 꺼내 어머니에게 보여 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기억할까.

그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사진을 보여 주어도, 이름을 알려 주어도, 어머니가 기억하는 날과 기억하지 못하는 날은 내가 정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 사진을 들고 어머니에게 같은 질문을 할 것 같았다. 어머니가 대답하지 못할 때마다 내가 사랑받았다는 사실까지 흔들릴 것 같았다.

사진을 가방에 넣었다.

그날 저녁, 바카라상 한쪽에 놓인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동네 골목에서 보았던 낡은 가게의 안내문을 옮겨 적은 종이였다.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맡기면, 다른 사람의 하루를 빌려드립니다.’

처음 그 문구를 읽었을 때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게 안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맡긴 하루가 놓여 있었다. 가게 주인은 하루를 맡기면 그날의 기억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대신 다른 사람이 맡긴 하루 하나를 빌릴 수 있다고 했다.

메모지를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날을 잃는다면, 어머니가 손을 잡아 주었던 순간도 더는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사진을 보아도 그날의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머니가 어떤 표정으로 기다려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두려웠다.

그 기억은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에도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의심할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았고, 나는 이름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도 지금의 어머니가 과거의 어머니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을 지키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었다.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잊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매번 과거를 꺼내 들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마다 내가 사랑받았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는 일도 그만하고 싶었다.

기억을 맡긴다고 해서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덜 아파질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오히려 가장 따뜻했던 순간을 잃은 뒤에는 지금보다 더 외로워질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날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만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방법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며칠 뒤, 다시 그 가게를 찾아갔다.

가게 주인은 내가 가져온 사진을 살펴보았다. 사진 속 어린아이와 젊은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날을 맡기시겠습니까?”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맡기면 정말 기억이 사라지나요?”

“그날의 기억은 사라집니다. 사진이나 기록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후회해도요?”

“후회하는 마음은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맡긴 하루가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의 가장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그럼 제가 그날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날이 있었던 건 변하지 않겠네요.”

가게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진 속 어린아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을 잃는다고 해서 사진 속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함께 보낸 시간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맡길게요.”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두려운 마음이 남아 있어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의 기억을 가게에 맡겼다.

가게 주인이 작은 카드를 건넸다. 카드에는 하루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평범한 화요일.’

카드의 글씨를 읽는 순간, 가게 안의 풍경이 바뀌었다.

낯선 주방에서 기름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앞치마를 두른 손이 도마 위에 계란을 풀어놓았다. 주문이 들어왔고,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식당이었다.

좁은 주방 한쪽에는 계란말이용 팬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오래된 시계가 걸려 있었다. 테이블 몇 개는 이미 손님들로 차 있었다. 누군가는 김치찌개를 주문했고, 누군가는 밥을 추가했다.

낯선 손으로 계란물을 저었다. 손은 망설이지 않았다. 팬을 기울이고, 익은 계란을 말아 올리고, 다시 계란물을 부었다. 오래 반복한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손님이 계산대 앞에서 말했다.

“사장님, 오늘도 계란말이 잘 먹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또 오세요.”

손님이 나가고 빈 그릇이 남았다. 계란말이는 한 조각도 남지 않았다.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주방 선반에는 남자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았지만, 그날의 주인은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손님이 부르자 곧바로 돌아섰고, 주문이 밀리자 계란을 더 꺼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식당이 한산해졌다.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쓸고, 내일 쓸 식재료를 정리했다. 창밖으로 햇빛이 기울었다. 남자의 사진은 선반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날의 주인은 남편을 떠올리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는 그 하루 동안에는 그랬다.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을 치워 버린 것도 아니었다. 남편을 잊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도 않았다.

그저 배가 고픈 손님에게 음식을 내어 주고, 설거지할 그릇을 씻고, 내일 쓸 재료를 준비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고, 하루는 그 일들로 채워졌다.

처음에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을 사랑했다면 매일 그리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식당 주인의 하루에는 아무렇지 않음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슬픔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슬픔이 없는 순간에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녁 무렵, 한 손님이 계란말이를 남김없이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 주인은 빈 그릇을 치웠다. 특별히 기뻐하지도, 무언가를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릇을 씻고 물기를 닦아 선반에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하려 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이 하루를 맡긴 사람은 남편을 잊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남편을 잃은 뒤에도 밥을 하고 손님을 맞으며 살았던 하루가, 오랜만에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매 순간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과 같은 뜻이 아닐 수 있었다.

하루가 끝났다.

나는 다시 가게 안에 서 있었다. 손에는 빌린 하루의 카드가 들려 있었다. 카드의 글씨가 천천히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방금 경험한 하루가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하루가 내 삶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가게를 나서자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고 싶어졌다.

그날도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를 찾아왔니?”

평소처럼 이름을 알려 주려다가 잠시 멈췄다. 어머니의 눈에는 낯선 방문객을 대하는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그 눈빛은 익숙했다.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더 서러웠다.

“저녁 드셨어요?”

“아직 안 먹었는데.”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남은 국을 냄비에 붓고 불을 켰다. 반찬통을 꺼내 식탁에 놓고, 수저 두 벌을 나란히 놓았다.

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국을 한 숟갈 먹었다.

“이거 참 맛있다. 누가 끓였니?”

국자를 내려놓았다.

“제가요.”

“그래? 음식 솜씨가 좋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숟갈 더 먹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밥을 먹었다.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도 서운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날은 내가 누구인지 다시 설명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틀렸다고 바로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국이 식기 전에 먹는 편이 나았다.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하고 집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카라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사진첩에서 꺼내 온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 어린아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젊은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사진을 꺼내 들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무언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공원의 냄새나 어머니의 목소리, 집으로 돌아오던 길의 풍경 같은 것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진 속 두 사람이 나와 어머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그날의 기억은 없었다.

사진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버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꺼내 놓고 계속 바라보지도 않았다. 서랍을 닫은 뒤에는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메모했다. 어머니의 약을 확인하고, 떨어진 반찬을 사고, 퇴근 후 들를 시간을 정했다.

며칠 뒤 다시 어머니의 집을 찾았다.

어머니는 현관문을 열어 주고는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오셨어요?”

잠시 숨을 골랐다.

“저녁 같이 먹으려고 왔어요.”

“그래요? 잘됐네. 혼자 먹으려니 심심했는데.”

어머니는 먼저 부엌으로 들어갔다.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밥을 데웠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반찬을 조금씩 먹다가 김치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너도 먹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김치 접시는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젓가락을 들었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날은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에는 문을 열자마자 “서윤아, 왔니?” 하고 반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더 오래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다음에 어머니가 내 이름을 기억하는 날이 오면, 그날은 이름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먼저 식사를 마쳤고, 나는 남은 밥을 천천히 먹었다. 식탁 위에는 빈 그릇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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