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끔 고맙다는 말보다, 아무 말 없이 비워진 그릇으로 더 오래 기억된다.
여자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가게 문을 열었다. 셔터를 올리고 바닥을 쓸었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국을 끓이고, 어제 남은 반찬을 확인했다. 십 년째 반복하는 일이었지만 밥 짓는 시간만은 대충 넘길 수 없었다.
작은 식당이었다. 점심에는 근처 회사원들이 찾아왔고, 저녁에는 퇴근하는 사람들과 야간 운행을 나가는 택시 기사들이 들렀다.
손님이 맛있다고 하면 여자는 손을 내저었다.
“별것도 아닌데요.”
그러고는 돌아서서 행주를 짰다. 칭찬을 받으면 어디를 봐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릇을 비우고 나가는 손님이 편했다. 그릇은 말이 없어서, 받아도 되는지 따져 물을 필요가 없었다.
칭찬이 불편해진 건 남편이 떠난 뒤부터였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건넨 칭찬에 핀잔으로 답한 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식당은 남편이 아프기 전부터 하던 것이었다. 남편이 병원에 누워 지내던 마지막 해에도 여자는 가게 문을 닫지 못했다. 새벽에 반찬을 싸서 병원에 들렀다가 돌아와 점심 장사를 했다. 남편은 입맛이 없다면서도 여자가 싸 간 반찬만은 조금씩 먹었다.
어느 날 도시락을 비우고 남편이 말했다.
“당신 음식은 안 질리네. 맨날 먹어도 맛있어.”
여자는 보온통 뚜껑을 닫으며 대꾸했다.
“맨날 먹으니까 그렇지.”
남편은 웃었다.
그것이 음식에 대해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여자는 그 대꾸를 몇 번이고 되감았다. 먹어 줘서 고맙다고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 핀잔을 놓고 말았다는 사실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다.
그날은 평범한 화요일이었다.
오후에는 손님이 뜸했다. 여자는 구석 탁자에 앉아 밀린 계산서를 정리했다. 전기세와 쌀값, 두부 가게 외상값을 맞추다 보니 창으로 들어온 볕이 계산서 위에서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저녁 일곱 시가 지나자 단골이 왔다. 야간 택시를 모는 노인이었다. 그는 늘 같은 구석 자리에 앉았다.
“순댓국.”
“또 순댓국이에요? 다른 것도 좀 드셔 보지.”
노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여자는 투덜거리며 뚝배기를 올렸다. 그러다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말이 접시를 꺼냈다.
“남은 거예요. 버리긴 아까워서.”
남은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부러 부쳐 둔 것이었다.
노인은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천천히 먹었다. 국물까지 마시고 밥알 하나 남기지 않았다. 계산대에 돈을 올려놓고 모자를 고쳐 쓴 뒤 문을 열고 나갔다.
한마디도 없었다.
여자는 빈 그릇을 치웠다. 바닥이 하얗게 닦여 있었다.
밤에 설거지를 마치고 불을 끄다가 여자는 손을 멈췄다.
오늘 하루 종일 남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산서를 맞추면서도, 노인에게 투덜거리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것 같기까지 했다. 어깨에 늘 얹혀 있던 것이 하루 종일 내려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남편이 없는 날에, 웃었다.
벽에 걸린 사진 속 남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여자는 어둠 속에서 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무엇이 미안한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남편을 잊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잠시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잠깐이 미안했다.
사흘 동안 그 화요일이 자꾸 떠올랐다. 별일 없던 날이 이상하게 선명했다.
쉬는 일요일, 쌀을 사러 가던 길이었다. 늘 다니던 길이 공사 중이라 골목으로 돌아갔다. 골목 끝에 처음 보는 가게가 있었다. 낡은 나무문 위에 작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맡기면, 다른 사람의 하루를 빌려드립니다.’
여자는 간판을 한참 읽었다.
가장 행복했던 하루.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결혼식 날, 이 식당의 문을 연 날이 차례로 떠올랐다. 모두 좋았다. 그런데 하나하나에 걱정이 붙어 있었다. 결혼식 날에는 갚아야 할 빚이 있었고, 가게 문을 연 날에는 첫 손님이 오지 않을까 봐 새벽부터 속이 탔다.
좋은 날에도 늘 무언가가 함께 있었다.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던 날은 지난 십 년을 통틀어 그 화요일 하나뿐이었다.
그것이 무서웠다.
가장 행복했던 하루가 남편이 없는 날이라니.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반마다 작은 상자들이 빼곡했다. 상자마다 이름과 하루의 제목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의 결혼식 날도 있었고, 첫 출근 날도 있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지나간 날들이 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주인이 물었다.
“어떤 하루를 맡기시겠습니까?”
“지난주 화요일이요.”
“맡기시는 하루는 가장 행복했던 하루여야 합니다.”
“압니다. 제일 그랬어요.”
“그런데 왜 맡기십니까?”
여자는 두 손을 맞잡았다.
“그날 하루 종일 그이 생각을 안 했어요. 그이가 없는데, 웃었어요. 그렇게 가벼웠던 날이 없었어요.”
여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이한테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보냈는데.”
주인은 재촉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주인이 말했다.
“하루를 맡기면 그날의 기억은 사라집니다. 맡긴 하루 하나당 다른 사람의 하루를 하나 빌릴 수 있습니다. 다시 돌려받으시려면 빌린 하루를 모두 반납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 중 가장 소중한 하루를 값으로 내놓으셔야 합니다. 값을 치른 하루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찾을 생각은 없어요. 빌릴 것도 없고요. 제 하루도 버거운데.”
“그럼 상자는 선반에 올려 두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빌려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별것 없는 날을요?”
“그건 빌려 가는 분이 정하실 일입니다.”
주인이 장부를 펼쳤다.
“제목은 뭐라고 쓸까요?”
여자는 한참 생각했다.
“별일 없던 날이요.”
주인은 그대로 적었다.
여자가 카드를 건네자 주인은 작은 상자에 그것을 넣었다.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가게를 나서는 순간, 여자는 걸음을 멈췄다.
지난주 화요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녁에 누구에게 무엇을 내주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날이 있었다는 사실만 남고, 그날을 이루던 것들은 조용히 사라졌다.
여자는 잠시 골목에 서 있었다.
무언가를 잃었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골목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이튿날 저녁, 노인은 늘 오던 시간에 왔다.
“순댓국.”
“또요?”
입이 먼저 말했다. 투덜거리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다. 손은 이미 냉장고로 가서 계란말이를 꺼내고 있었다.
접시를 내려놓고서야 여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걸 꺼냈는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었는지, 자신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노인은 말없이 비우고 나갔다.
여자는 장부를 펼쳤다.
지난주 화요일에 해당하는 칸에는 자신이 쓴 글씨가 남아 있었다.
‘별일 없던 날.’
그 아래에는 작은 기록이 적혀 있었다.
‘순댓국 1. 계란말이.’
여자는 그 글씨를 한참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의 글씨인데도 남이 적어 놓은 것 같았다.
여자는 벽에 걸린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미안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하루를 비웠는데도 어디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 미안한지를 모르게 되어서, 미안함만 남았다.
남편이 없는 날에도 웃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왜 그랬는지는 이제 알 수 없었다.
계절이 한 번 바뀌었다.
비가 오는 저녁에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서른 안팎이었다. 옷차림이 단정했고, 입구에서 우산을 털어 접어 세웠다. 가게를 둘러보다가 잠깐 멈췄다.
“여기, 처음인데요.”
“그런데요?”
“이상하게 낯익어서요.”
여자는 대꾸 없이 물컵을 내려놓았다.
남자는 머쓱하게 웃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제육볶음 하나 주세요.”
여자는 밥과 국을 내고 제육볶음을 볶았다. 접시를 놓고 돌아서다가 손이 냉장고로 갔다. 계란말이를 꺼냈다.
“시키지 않았는데요.”
“그냥 드세요.”
남자가 젓가락을 들었을 때 탁자 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소리가 켜져 있었다. 남자는 화면을 보고 곧바로 받았다.
“응, 엄마. 밥 먹고 있어.”
잠시 듣다가 대답했다.
“제육볶음. 엄마 거만큼은 아니고, 그래도 맛있어.”
남자는 계란말이를 한 점 집어 먹었다.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게 입에 맞네요. 처음 먹는 건데.”
여자는 행주를 쥔 채 몸을 반쯤 돌렸다.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는 법이죠.”
남자가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엄마, 사장님도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대.”
여자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누르지 못했다.
남자는 전화를 끊고 조용히 먹었다. 휴대전화는 더 들여다보지 않았다. 계란말이까지 남김없이 먹고 그릇을 한쪽으로 모아 놓았다.
계산할 때는 지갑이 두꺼워 한 번에 닫히지 않았다. 영수증이 삐져나왔다. 그는 그것을 손으로 눌러 넣었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별것도 아닌데요, 하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다.
그때 남편의 목소리가 먼저 지나갔다.
맨날 먹어도 맛있어.
여자는 말을 바꾸었다.
“고마워요. 또 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우산을 들고 나갔다.
여자는 한참 서 있다가 빈 그릇을 치웠다. 바닥이 하얗게 닦여 있었다. 밥알 하나 남지 않았다.
그릇을 싱크대에 담그고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맨날 먹어 줘서 고마웠어.”
사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수도를 틀자 물소리가 조용한 가게 안을 채웠다. 창밖의 비는 어느새 가늘어져 있었다.
내일도 여섯 시에 문을 열어야 했다. 쌀을 씻고 국을 끓이고, 아침에는 계란을 조금 더 부칠 생각이었다.
누군가 그 그릇을 비우고 갈 것이었다.
여자는 그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다만 언젠가, 자신도 그 말을 조금 더 일찍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이제 누구에게도 돌려줄 수 없는 하루 속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