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오지 않는 날

by한울

사람은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지면, 기다리지 않는 척하는 법부터 배운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휴대전화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화면이 잘 보이는 쪽으로 놓고, 충전기가 닿는 자리까지 의자를 조금 옮겼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앞치마를 둘렀다.

벨소리는 가장 큰 소리로 설정해 두었다.

아들은 바쁜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고, 아이를 키웠고, 집 대출금을 갚았다. 할머니는 그 사실을 이해했다. 다만 이해하는 일과 서운하지 않은 일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집에 왔던 날, 할머니는 갈비찜을 했다. 아들은 밥을 한 공기 더 먹었다. 설거지를 하겠다는 것을 할머니가 말렸다.

“너는 가서 쉬어. 피곤할 텐데.”

아들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할머니는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릴 때처럼 이마에 손을 얹고 싶었지만, 손은 올라가다 말고 무릎 위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현관에서 아들이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좀 오래 있다 갈게요.”

“그래. 바쁜데 뭘.”

그날 저녁, 할머니는 남은 갈비찜을 작은 통에 나누어 담았다. 냉동실 한쪽에 통이 세 개 놓였다. 날짜를 적어 두었지만, 다음이 언제인지는 적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먼저 전화를 걸지 않게 된 것은 작년 겨울부터였다.

그날 할머니는 별일 없이 아들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한참 가다가 아들이 받았다. 목소리가 낮았다.

“엄마, 나 지금 회의 중이야. 이따 내가 할게.”

‘이따’는 오지 않았다. 아니, 사흘 뒤에 왔다. 아들은 미안하다고 했고 할머니는 괜찮다고 했다. 그 뒤로 할머니는 먼저 걸지 않았다. 먼저 걸면 방해가 되었고, 기다리면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수요일 밤,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내일 점심때쯤 전화할게요.’

할머니는 그 문장을 열 번쯤 읽었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는 휴대전화를 식탁 위, 손이 닿는 곳에 놓았다. 청소기를 돌리다가 한 번 돌아보았고, 빨래를 널다가 한 번 돌아보았다. 전화가 오면 받는 데 몇 초가 걸릴지 어림해 보았다.

점심에는 국을 끓였다. 양을 줄이려고 했는데 손이 먼저 움직여, 둘이 먹을 만큼의 물을 잡고 말았다. 전화 끝에 아들이 “엄마, 이번 주말에 갈까?” 하고 덧붙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해 줄 사람이라는 근거는 없었다. 근거 없이도 손은 그렇게 움직였다.

열두 시가 지났다. 한 시가 지났다.

두 시쯤 할머니는 화면을 켜 보았다. 아무것도 와 있지 않았다. 최근 통화 목록을 열자 맨 위에 아들의 이름이 있었다. 엄지손가락이 그 위에서 멈췄다.

점심때쯤이라고 했으니 아직 점심때일 수도 있었다. 회의가 길어졌을 수도 있었다. 지금 걸면 회의 중인 사람의 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울릴 것이다. 할머니는 손가락을 거두었다.

설정 화면을 열어 벨소리 크기를 확인했다. 최대였다. 화면을 닫았다.

저녁이 되도록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혼자서 그 국을 이틀 치쯤 퍼 담았다. 잠들기 전에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꽂고, 불이 꺼진 방에서 혼잣말을 했다.

“바쁜가 보지.”

다음 날 오후, 할머니는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버스를 잘못 내려 골목을 하나 돌아갔다.

골목 끝에 처음 보는 가게가 있었다. 낡은 나무문 위에 작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하루를 맡기면, 다른 사람의 하루를 빌려드립니다.’

할머니는 그 문장을 한참 읽었다.

가장 행복했던 하루라면 떠오르는 날이 있었다. 아들이 다섯 살이던 겨울, 남편이 야간 근무를 나간 밤이었다. 아들이 밥알이 묻은 손으로 할머니의 손등을 잡고 말했다.

“그럼 내가 엄마랑 계속 살아줄게.”

그날은 맡기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가 없애고 싶은 것은 그날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작은 상자들이 빼곡했고, 상자마다 이름과 하루의 제목이 붙어 있었다. 주인이 물었다.

“어떤 하루를 맡기시겠습니까?”

“어제요.”

주인은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장 행복했던 하루여야 합니다.”

“어제 점심 전까지는 그랬어요.”

할머니는 잠시 손을 맞잡았다.

“아들이 전화한다고 했거든요. 아침부터 집 안이 환했어요. 그렇게 설렌 날이 요즘은 없었어요. 그런데 저녁이 되니까…”

말끝이 흐려졌다. 주인은 재촉하지 않았다.

“설렘이 컸던 날은 저녁이 길지요.”

주인은 규칙을 한 번만 말했다.

“하루를 맡기면 그날의 기억은 사라집니다. 맡긴 하루 하나당 남의 하루를 하나 빌려 가실 수 있고요. 다시 돌려받으시려면 그동안 빌린 하루를 모두 반납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 중 가장 소중한 하루를 값으로 내놓으셔야 합니다. 값으로 낸 하루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돌려받을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알고 계셔야 합니다.”

주인은 장부를 펴고 물었다.

“상자에 제목을 붙입니다. 뭐라고 쓸까요?”

할머니는 한참 생각했다.

“그냥 ‘어제’라고 해 주세요.”

주인은 ‘어제’라고 적었다.

할머니는 선반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제목들을 읽었다. 결혼식 날, 첫 출근 날, 바다에 갔던 날. 그러다 한 상자 앞에서 멈췄다. ‘시험 기간의 새벽.’ 주인의 이름은 낯설었다.

아들이 그 나이였을 때, 할머니는 그 아이가 밤에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몰랐다. 어머니들이 기다리는 시간에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문득 궁금했다.

“이걸로 할게요.”

주인이 카드를 꺼내 건넸다. 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서는 순간, 할머니는 걸음을 멈췄다. 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떠올리려는데, 그 자리만 조용히 비어 있었다.

그날 밤, 할머니는 어느 새벽의 편의점에 앉아 있었다.

스물한 살의 몸은 가벼웠고, 눈은 뻑뻑했다. 형광등이 낮게 웅웅거렸다. 탁자에는 친구 둘과 컵라면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밤새 공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 친구가 시험이 끝나면 뭘 할 거냐고 물었고 세 사람은 같은 대답을 했다. 자는 거. 그 말에 모두 웃었다.

할머니는 그 웃음 속에 있었다. 누구도 누구를 기다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그 가벼움을 오래 앉아 느꼈다.

계산을 마치고 온 청년이 영수증을 접어 지갑에 넣었다. 이미 두툼한 지갑에 한 장이 더 들어갔다.

“그걸 왜 모아?”

“그냥.”

그때 탁자 위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화면이 켜졌다.

‘엄마.’

새벽 다섯 시 십이 분이었다.

청년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진동이 한 번, 두 번 탁자를 울렸다.

“받아.”

친구가 말했다.

“이 시간에 왜 거셔.”

청년은 입가에 웃음을 남긴 채 말했다.

“일 나가시면서 거시는 거야. 시험 끝나고 내가 걸어야지.”

할머니는 그의 손이 휴대전화 위에 얹히는 것을 느꼈다. 뒤집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손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 새벽, 어느 집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 말고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용건은 없을 것이다. 용건이 없어서 걸었을 것이다.

걸어. 지금 걸어.

할머니는 소리를 내려했다. 목구멍이 열리지 않았다.

진동이 멈추고 화면이 꺼졌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고 젓가락을 들었다.

“라면 불었다.”

컵라면의 국물 위로 기름이 엉겨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뜬 할머니는 한참 천장을 보았다.

식탁 위에는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어제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는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어젯밤의 편의점은 선명했다. 형광등 소리까지, 접히던 영수증까지.

그 청년은 못된 아이가 아니었다. 라면이 불고 있었고, 시험이 끝나면 걸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느 현관에서는 누군가 그 ‘나중’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끝내 기다린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최근 통화 목록 맨 위에 아들의 이름이 있었다.

손가락이 멈췄다. 이번에는 오래 멈추지 않았다.

신호가 갔다. 여섯 번을 울렸다. 연결음이 끊기고 안내 음성이 나왔다.

삐 소리가 났다.

“응, 엄마야.”

할머니는 잠깐 숨을 골랐다.

“별일은 없고, 그냥 걸었다. 바쁘면 안 받아도 돼.”

전화를 끊었다. 대답은 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식탁 위가 아닌 안방 서랍장 위, 충전기 옆에 올려놓았다.

오후에는 시장에 가서 무를 샀다.

돌아와 국을 끓였다. 냄비에 물을 잡을 때는 국자로 재어 한 사람 몫만 담았다. 손이 먼저 움직이지 않도록 천천히 했다.

냉동실에서 갈비찜 통을 하나 꺼냈다. 날짜가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고, 작은 냄비에 옮겨 데웠다.

혼자 저녁을 먹었다.

반찬은 조금 짰다.

아들이 좋아하던 맛이었다.

설거지를 마치자 창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맞은편 아파트에서는 누군가 빨래를 걷고 있었다. 할머니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저녁 바람이 들어왔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장 위에서 휴대전화 화면이 잠깐 켜졌다가 꺼졌다. 알림은 없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잠들기 전,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내일은 날이 좋았으면 좋겠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오랜만에, 내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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