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태생이 아빠인 사람인 것 같다.

by온가

내 남편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아빠로서는 비범하다.


그는 어디서 특별히 대단한 아빠교육을 받은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전문가 같다-는 의미라기보다 아이에 대한 아빠로서의 허용치가 굉장히 넓은 사람이다.

아이가 100번을 불러도 온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

새벽 내내 우는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

아주 작은 사소한 요구도 다 웃으며 수용해 주는 사람,

이 모든 것이 매일 반복된다고 해도 매일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


이 집의 잡다한 모든 일을 총괄하는 나로서는 이런 남편에게도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하는 입장이지만

어찌 됐든 고마운 줄 알아야 하는 쪽이 나인 것은 맞다.


내 첫째 아들은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찾으며 여전히 아빠를 종일 수행시킨다.

5살까지 같이 잠을 자는 것도 아빠였고, 이른 아침이든 저녁이든 함께 산바카라해 주는 사람도 아빠였고,

엄마는 안된다 하는 요구들을 모두 들어주는 사람은 오직 아빠였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둘이서 함께 쌓은 추억은 아이의 나이만큼이나 꽉 찼을 것이고

그만큼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에 둘은 거의 다 함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에 비해 육아휴직 기간은 내가 훨씬 길었는데 오히려 이 기간이 길었던 탓에

나는 아이랑 거리 두기를 했던 것 같다.

나와 남편 가운데에 놓여있던 아이는 점점 남편 쪽으로 기울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잠이 없는 편에 속하는 아이이다.

유치원에 가면 낮잠을 자지 않는다 하니 빨리 유치원을 가고 싶다고도 했다.

반면 우리 부부는 잠으로 사는 어른들이었는데,

새벽마다 강성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매일같이 달래줘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새벽을 그렇게 보내고서도 이 아이는 6시면 기상을 하고 낮잠은 40분 정도만 주무셨다.

부모로서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무엇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이도 그때가 힘들었을 텐데 우리가 적절한 방법을 찾아주지는 못하고 미련하게 저절로 괜찮아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당시 남편은 나와 육아휴직을 교대하고 주양육자가 되었다.

때문에 아이를 달래는 것도, 이른 아침을 함께 맞이하는 것도 그였다.


오전 일찍 문을 여는 카페에 남편은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었고, 나는 매일 밤 잠드는 순간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 시절은 우리 부부에게 큰 고비였고 몇 달 사이에 둘 다 흰머리가 곱절로 늘었다.


간사하고 이기적이었던 나는 남편의 체력이 나보다 좋으니 잠을 줄이는 것이 내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조그마한 아이 하나가 어른 둘의 체력을 한계로 밀어붙였고, 요령 없던 초보 부부는 그 잠 때문에 서로를

미워했던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그때를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쩌다 얘기가 나오면 서로 고개를 내저으며 '어휴' 소리를 절로 뱉는다.


무엇이 그를 버티게 했을까.

건강히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언감생심, 감히 힘들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다는 듯

결연히 다짐한 사람처럼 보일 때도 많았다.


그는 인내와 희생을 겸비한 아빠이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배워 온 것인지, 태어나길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그렇다면 애초에 아빠가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던 것인지,

그런 그의 눈에 이렇게나 불안정한 엄마라는 나는 어떻게 보였을지.

몇 번의 지원 요청에도 내가 썩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으니 어쩔 도리 없이 스스로 내 몫을 가져가

짊어진 듯 보였다.


남편은 종종 말한다.

힘들수록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한다고, 별생각 없는 것이 자기의 비결이라고.

단순하고 때로는 건성인 모양이 나에게는 영 눈에 거슬리는 때가 종종 있지만 이 힘을 뺀 자세가

넉넉한 아빠이자 남편의 비결인 것 같긴 하다.


그런 그를 보면서, 아빠와 아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던 나는 정신을 잘 차려보기로

이 가정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노력하게 된 것 같다. 남편이 나를 완전히 이해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항상 자신보다는 정말로 아내인 나를 위한 선택들을 했다.

그 배려와 인내가 귀하고 고마웠다.


우리 아이들은 아빠와의 어린 날을 어떻게 새길까.

이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인 나에게는 우리 가족의 이 시절이 어떻게 남겨질까.

그가 이 가정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세워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안에서 안전하고 오롯이 편안할 수 있는 것 같다.


남편이 두 번째 코로나로 앓아누운 날들이 있었고 이틀을 혼자 고군분투하고 나니 남편의 역할이 얼마나

컸던지 제대로 실감이 났다. 그의 공로를 쉬이 인정해주지 않는 심술을 부리며 괜히 칭찬에 인색했던 나는

이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을 수시로 해준다.

"고마워, 고생했어."라고.

이전 02화결국 이렇게 될 거였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