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마, 아니 돌아봐.
나는 종종, 어린 내 아이의 좀 더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일이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미처 다 주지 못한 사랑이 남아있었는지, 줬다고 주었어도 모자란 것인지.
그때의 커다란 사랑스러움을 마주하는 그 순간이 무척이나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벅찬 감정을
느낄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 혹독한 점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를 키워내는 과정 중 최선을 다했는지, 임하는 마음가짐은 나무랄 것이 없었는지.
엄마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 엄마이면서 이 정도도 못해?
두 가지 마음의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머리를 싸매던 치열하던 순간들이 많았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는 아주 별개로 못다 채운 내 인생의 여백이 자주 아쉽고 자유롭지 못한 기분이
종종 서글펐다.
부모가 되기에 준비기간이 있기나 한 걸까,
내 인생에서 나는 대부분 학생이었고 어느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채 다 알기도 전에 우선 엄마가 되었다. 결혼을 했으니 나보다는 가족으로서의 선택을 우위에 둘 수밖에 없었고,
내가 스스로 선택했지만 아쉽고 서글픈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서 비로소 무언가가 되고 싶고 하고 싶어 지는 나는
자꾸만 저 멀리 멀어지는 미완성의 내 자신을, 이제는 영영 알지 못하게 된 또 다른 모양의 행복을
계속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저 아이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행복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질타와 죄바카라감이 가득했던 그 시절을
떳떳하게 마주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만큼 아이가 빨리 자랐고, 돌아 들여다볼 어린 시절이 쌓여갔다.
여물어진 아이의 시간을 용기 내 더듬어보다가 나는 긴 숨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부족한 어른이 한 아이를 키워내도 되는 걸까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엄마의 무거운 마음이 무색하게도 아이의 세상은 무사히 커져있었다.
어눌한 발음으로 입을 떼던 아기가 이제는 스스로 납득이 될 때까지 질문을 해 대고, 잔뜩 휘청거리며 기어코
한 발짝 떼어보는 것이 하루의 과제였던 아기가 이제는 줄넘기를 할 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고,
누구든 자기 말을 따라주겠거니 왕 노릇을 하려고도 한다. 알고 싶은 세상이 너무 많아 하루가 모자라 보인다.
나는 많이 부족한 엄마이지만 대단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말 그대로 정말 대단한, 성장이라는 그 과정 전체에
그 가장 앞에 부모로서 내가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가 켜켜이 쌓아온 이 성장 앞에 나는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이 엄마 덕분이라고,
썩 괜찮은 엄마인 것 같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는 이 작은 새가 둥지를 떠나 홀로 여행할 날이 빨리 올까 두렵다.
그저 따뜻하게 품어주기만 해도 모자란 이 어린 시절의 날들이 하루씩 저물 때마다 아쉽다.
나는 여전히, 살아보지 못한 다른 모양의 내 인생을 종종 상상한다.
한국이 아닌 곳, 엄마가 아닌 삶, 혼자 사는 삶, 새로운 친구, 다른 직업, 전혀 다른 나.
하지만 그 인생이 지금보다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게 된
까닭이지 않을까. 귀하던 내 인생보다 더 소중한 너와의 삶이 있어서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