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자라자, 너랑 나랑 여기 우리 집에서.
엄마가 된 지 만 3년,
나의 꼬마는 유아기의 사춘기인 3세를 지나고 제법 더 사람다워졌다. 어린이집에서는 일명 형님반이라 불리는
교실을 차지하고 아래 동생들을 얼떨떨하게 내려다봤다. 차로 3시간 거리만큼이나 떨어진 장거리 여행도 비교적 평화롭게 갈 수 있게 되었고, 즐거움을 느끼는 범위도 제법 넓어진 듯 보였다.
아이의 세계가 자라고 확장된 것이 눈으로 보이고 몸으로 느껴졌다.
타고난 기질과 성품도 더욱 또렷해졌다.
만 3년을 꼬박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 이 아이는 내외를 가리지 않고 나를 참 많이 닮았다.
그런 아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면 잠시 평화로울 틈도 없이 어른의 것들이 밀려온다.
너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너를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바카라임감,
물려준 것들이 왜인지 자꾸 마음 쓰이는 미안함. 내 낡은 것을 준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렇게나 반짝거리는 아이를 보며 덜 자란 나를 구석구석 살폈다.
나에게 지난 3년은 긴 겨울 같았다.
잘해보자는 의욕도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도 숨어버리고 그저 이 찬 공기 같은 괴로움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잔뜩 몸을 웅크리게 되는, 차갑고 깊은 겨울 가운데 홀로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이 그렇게 괴로웠는가 하면
엄마가 된 내가, 이전에 오직 나였던 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몰라서였던 것 같다.
긴 투쟁에도 결국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고, 언제 깨어날지 모를 긴 겨울잠을 재우는 것으로 일단락시켰다.
봄이 오면 깨어나겠지, 다시 틔울 날이 있을 것이라며 위로했다.
하지만 잃어버리고 있는 나로 인한 이별후유증은 꽤 심했고 모든 이별이 그러하듯 오롯이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기쁨은 누릴 줄을 몰랐고 어려움은 쉬이 넘길 줄을 모르는 상태로 살았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도움과 보살핌이 필요한 엄마였고 그런 면에서 나는 내 아이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부모로서 가장 우선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인내와 희생이 아닐까,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것을 갖춘 사람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것 역시 긴 시간 괴로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알던 나는 없고, 어디 내놓기 민망한 나 만이 가득했다.
유년시절 엄마에게 많이 들었던 말은 '너는 참을성이 없다'였는데, 그때마다 아니다- 라며
엄마가 잘 모르는 거라고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대들었다. 이제는 그게 정말로 아닌지, 엄마가 나를
쉽게 평가했던 것은 아닌지 마침내 확인하는 때가 된 것 같았다.
인내와 희생이라는 단어들에 담긴 의미는 안과 밖으로 나를 크게 소모시키는 것임을, 이제 막 엄마로 살기 시작한 나는 전혀 알지 못했고 내가 알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도 아이가 크고 작게 통제를 벗어날 때마다, 혹은 엄마와
세상을 이겨먹으려는 아이의 또렷해진 자아를 마주할 때마다 새로이 깨닫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엄마는 나를 아주 제대로 봤다. 나는 참을성이 참 없는 인간이었다.
잘난 줄 알던 내가 실은 이렇게나 모자란 사람인 것이 화가 나기도 했다. 이것을 내 아이를 통해확인받았다는 것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내가 이런저런 고뇌를 이어 붙이는 동안에도 아이는 지체 없이 자라났다.
자꾸만 예쁘게 피어나고 안정되어 가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진정 엄마가 되기를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아야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많이 부족했지만, 이미 그런 것을 어쩌겠나 하며 비로소 마음을 다잡고 나니
아이의 시간으로 새로이 자라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4살짜리 엄마였고,
제법 엄마 흉내를 내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가족이라는 길 앞에서 고작 100cm의 꼬마이지만 꽤나 든든한 동지를 얻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진정 쉽지 않겠지만 이제는 기꺼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같이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