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와 볶음밥은 국룰이지요.
한동안 닭도리탕의 어원이 일본어에서 온 것이라며 '닭볶음탕'이라 부르라는 말이 많았다.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발음해야 했던 시절처럼, 닭볶음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인류라도 되는 냥, TV를 틀면 그 이름에 대한 설왕설래가 흔하게 나왔었더랬다.
메뉴 이름이 무엇이건 당근과 감자, 그리고 닭고기가 붉고 기름진 고추장 양념 국물 속에 잠겨 있는 것은 똑같은데.. 도리탕이면 어떻고, 볶음탕이면 어떻랴 싶다.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았던 한국에서의 온라인 게임생활은, 식사 메뉴를 고르는 것이 큰 일이었다.
더러는 사다리를 탔고, 더러는 팀장 마음대로 정했으며, 대부분의 경우 입김 센 사수들의 의향대로 먹곤 했었다.
용케도 저녁 메뉴로 떡볶이를 피해 간 날은, 오모가리 김치찌개와 닭도리탕 사이의 갈림길에서 대기해야 했고, 많은 경우 닭도리탕이 지글대는 식당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이런저런 메뉴들의 자국이 남은 소주 회사의 앞치마를 목에 걸치고, 관심도 없던 그 국물을 휘적휘적.
감자와 살코기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기라도 할까 봐, 사수들 잔소리를 들어가며 수도 없이 저었더랬다.
지들이 좀 하지..
버블링하는 용암 국물을 앞에 두고도 밑반찬으로만 배를 채우던 나는 문득 궁금했었다.
도대체 산업단지마다 닭도리탕집은 왜 그리도 많을까?
절대 쉬운 음식이 아닌데...?
감자, 당근, 대파와 당면들..
다듬고 깎고 전분을 없애고, 데쳐내야 하는 손 많이 가는 재료들이 가득한 음식인데, 어쩌면 식당들이 이 메뉴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닐까도 싶었다.
너무 달거나, 너무 짜거나, 더러는 양념과 고기와 야채가 겉돌기 일쑤.
흔한 메뉴라는 것에 비해, 닭고기 속까지 구석구석 간이 베어 맛을 즐길 수 있는 집은 몇 안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묵을 쑤듯 주걱질을 하던 그 가게도, 닭도리탕 맛집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던 기억이 난다.)
냄비가 달궈질수록 늘어진 닭껍질이 닭다리에 겨우 붙어 부들댔다.
야들야들한 닭다리가 용암 국물 위로 살을 보이면, 밥 먹듯 하던 야근으로 '동태의 현신'같던 사람들의 눈빛이 돌변했었다.
여기 사이다 한 병 주시고요,
아! 그냥 소주도 딱 한 병만 할까, 우리?
어차피 시킬거면서 왜 물어보는지..
혼잣말이었겠지?
씹고 뜯고 땀 닦고, 입 닦는 연속동작의 향연이 치러지기를 한참.
일행의 공깃밥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리며 맨밥에 김치와 된장찌개로 식사를 마친 내 귀에 여지없이 들리던 멘트가 있었다.
이모, 여기 볶음밥 2인분 추가랑,
소주 한 병 더요!
일행의 오더가 식당 이모 귀에 들어가기 무섭게, 다진 채소와 김가루가 올려진 볶음밥 재료가 냉면 그릇에 소복이 담겨 테이블에 도착했다.
이미 끝을 본 닭도리탕 냄비에 2차전이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Dear Diary로 시작하는 일기를 쓰고 싶어지는 지경이었다.
아니 이럴 거면 야근은 왜 하는 거야?
이 시간에 일 끝내고 집에 가겠다..
속절없이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갔다.
30분..
1시간..
1시간 반..
소주 기운에 발그레한 볼을 가진 그녀들이 제시간에 업무를 마무리할 리 만무했고, 당연히 퇴근 시간은 밤 10시가 넘는 것이 기본이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밤 11시를 앞두고도 먼저 가서 미안해야했던 날들을 살았더랬다.
이후로도 나는 섬유 회사에서의 경력을 이어갔고, 결혼과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최애 음식이 닭도리탕이라는 동글동글한 남편을 만나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가는 동안, 손가락에 꼽기도 민망한 횟수로 닭도리탕에 도전을 했었다.
온라인 게임 생활하며 익히 봐왔던 가락과, 전라도 여자의 요리 부심을 더해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기름기와 잡내를 없앨 요량으로 한번 데쳐낸 닭고기를 고추장 국물에 참수시켜 끓여내면 될 줄 알았던 그 녀석은, 난공불락의 철벽을 쳐댔다.
역시나 만만히 볼 음식이 아니었다.
몇 번을 이상한 맛으로 완성된 그. 것. 을 맛본 남편은 이제는 닭도리탕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 쏴리.
당신의 Soul Food를 망쳐서 미안하지만, 다른 메뉴로 바꾸면 안 될까?
내가 진짜 못 하겠어서 그래..
#닭도리탕 #용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