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닭발은 왜 접시 위에 있나?
나는 동물의 발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족이든 족발이든 닭발이든 매 한 가지로 즐겨 먹지 않는데, 시골 생활의 경험이 만든 기피라고 할 수 있겠다.
나처럼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식재료들의 원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자란다.
채소나 과일들은 물론 소나 돼지 닭 같은 가축이나 가금류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어떻게 걷고 뛰고 먹고살았는지 봐 왔던 것들이 요리의 주재료가 될 때는, 그것의 세척 상태와 모양이 퍽이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어릴 적 시골집 마당에는 성질 고약한 닭 패거리들이 살았었다.
복날을 용케 살아남은 녀석들은 외갓집 식구들의 챙김을 받으며 주에 몇 번은 미꾸라지며 드렁허리 같은 보양식까지 먹는 애완닭 짓을 하고 있었다.
요염하게 마당을 거니는 닭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곤 했는데, 날카로운 발톱이 성성한 발을 쭈욱 펴며 우아하게 거니는 꼴이 어이가 없어서였다.
마치 자기 집 마당을 거니는 대감마님이라도 된듯한 그 날렵하고 유연한 몸동작에 비해, 촘촘히 갈라진 닭비늘 가득한 녀석의 발이 이질적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이야 공룡이 닭처럼 생겼을 것이라는 연구가 있지만, 그 발표가 있기 훨씬 전부터 내심 닭이라는 종족의 징그러운 발 생김새를 볼 때마다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있긴 했었다.
뭔가 있어, 저거..
그렇게 쉽게 튀김이 될 성질머리가 아닌데..
분명 과거에 한가닥 했을 것 같은데..
퍼덕대는 날갯짓과 리트리버 뒷발차기 저리 가라는 힘으로 흙을 뒤집는 발길질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성인이 된 후 알고 지내던 지인의 새 여자친구가 닭발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만든 저녁 식사 자리는 그녀가 원하는 닭발 맛집으로 정해졌었는데, 그날이 내가 처음 닭발을 입에 넣어 본 날이었다.
맛집이라는 말에 걸맞게 가게 근처에도 못 가고, 한 시간은 족히 길바닥에 서 있었던 것 같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가게 간판이 가까이 보일 즈음, 닭발집 건너편으로 보이는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기로 했었다.
소시지며 젤리 같은 주전부리를 집어올 요량이었는데, 어째 가게 입구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아무리 바쁜 금요일 저녁이라지만 편의점 주변이 이상하리만큼 지저분했던 것.
가게 앞을 너저분하게 만든 것은 먹고 버린 '쥬시콜' 빈통들이었다.
문전성시를 이룬 닭발집의 영향으로 매운맛을 달래줄 음료가 편의점의 주력 상품이 된 모양이었는데, 정작 찾아 들어간 편의점 음료 코너에는 그나마 몇 개 남지도 않은 쥬시콜과 흰 우유만 즐비했다.
뭐가 얼마나 매운 거야?
드디어 기다리던 차례가 되어 자리에 착석하니 단출한 메뉴판에서 고를 수 있는 메뉴가 한정적이었다.
매운 닭발
오돌뼈
무뼈닭발
계란찜
주먹밥
덜 매운 음식도 몇 개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찰나, 속전속결로 주문을 마치자마자 분식집 우동그릇에 담긴 계란찜을 먼저 받아 들었다.
정성이라고는 하나도 안 느껴지는 전자레인지표 계란찜의 맛이 미심쩍었는데, 용기 내서 한입 먹은 닭발 조각이 목구멍으로 넘어간 뒤로는 계란찜 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지 못할 만큼 고마운 존재가 되어있었다.
길이로 썬 청양고추가 몇 개나 있었을까..?
족히 사십여 개는 될 법한 초록빛 성성한 채 썬 청양고추가 붉은 닭발 양념에도 변색 없이 청아한 빛을 발하며 누워있었고, 뼈가 발라진 닭발, 뼈가 있는 닭발이 각각 한 접시씩, 처음 주문한 양에서 거의 줄어들지도 않은 채 그득했다.
그나마도 테이블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연신 발골쇼를 이어가고 있던 지인의 여자친구와 넋을 놓고 있던 나뿐이었는데, 나머지 일행들은 짤막한 육두문자와 함께 누구는 화장실로, 또 누군가는 길 건너 편의점으로 달려가고 없었다.
스테인네스 원형 테이블 위.
붉디붉은 양념장 사이로 흔들거리는 닭비늘이 보였다.
뼈가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발톱이 있던 자리, 불규칙한 듯 규칙적인 닭비늘이 흔들거렸다.
시골집 마당에서 발레리나처럼 걸어 다니던 닭의 발이 거기 누워있었다.
살아생전 곁에 가지도 않았을 청양고추들과 함께 그 발들이 누워있었다.
닭장에 갇혀서 살았던 녀석이었겠지?
마당을 활개치고 다녔다면 통뼈로 자라서 더 굵은 발가락을 가졌을 거야..
어쩌다 발 따로, 알 따로 상 위에 올라오게 되었니?
먹지도 못 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먼저 간 닭의 인생을 가늠해 봤다.
여름이었다.
어느새 자리에 돌아온 지인들의 욕지거리는 끝없이 이어졌다.
아니 이걸 사람 먹으라고 만든 거야?
만든 사람 불러와, 같이 먹게!
누가 봐도 매운 음식 못 드시게 생기신 식당 이모님들은, 함께 간 지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어쩐지 모를 표정으로 시퍼런 청양고추를 무심하게 섞고 계셨다.
저 접시는 어느 테이블로 가서
누구의 위장을 훑어버리려나..?
두 시간 정도 지났으려나?
대부분의 시간은 '쓰~읍, ㅎ ㅏ!!! 매워! 너무 매워!'라는 독백과 편의점으로의 탈출로 잡아 먹었으니, 정작 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던 시간은 30여분이 안될 듯 싶다.
결국 그 식당을 나올 때까지 내가 먹은 것이라고는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닭발과 매운 양념장을 콕 찍은 주먹밥, 그리고 무정성 계란찜 뿐. (매워서 그렇지, 닭발 양념은 정말 훌륭했다.)
그날 이후로 단 한번도 그 닭발을 먹기 위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 후 20여 년.
내 술잔이 놓인 테이블 위로 여러개의 닭발 그릇이 나의 젓가락질 한번 닿지 않은 채 지나갔다.
닭발을 좋아하는 몇몇의 지인이 시킨 메뉴였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렀다 한들 닭비늘 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닭발을 젓가락으로 집을 용기도, 목으로 넘길 이유도 생기지 않았다.
변한 것이라면 내가 더 나이 들었다는 것과, 한식의 양념이 더 자극적으로 변했다는 것 정도?
설탕 사용의 비율이 높아지고, 캡사이신 성분이 더 추가된 요즘의 한식 트렌드에 맞춘 것이리라..
전통적인 닭발 양념으로도 먹기 힘든 것을 단맛과 매운맛이 더 진해졌으니, 더욱 범접하기 어려워진 듯하다.
얼마나 더 나이를 먹으면 이 음식을 좋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살아 움직이는 닭을 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날, 혹은 마당을 뛰어다니는 닭이 예쁘게 보이는 날이 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무서워요 #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