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자꾸 미루던 30대 온라인 게임인의 첫 프리다이빙 여행_9편
- 4부 -
다시, 나의 월요일
<입수 후>
여행은 바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젖은 슈트를 빨고 캐리어를 닫아 돌아오면 다시 내 생활이 기다린다. 바닷물 냄새가 빠진 슈트에서는 깨끗한 빨래 냄새가 나고, 월요일이면 바다 대신 모니터를 마주한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그 일을 해내면서도 가끔은 하루 종일 밖을 향해 있던 관심을 내 쪽으로 돌려보려고 한다. 오늘은 얼마나 피곤한지, 쉬고 싶은지, 아니면 정말 어딘가 가고 싶은지. 잘 놀고 돌아온 나는 그런 것들도 챙기며 다시 월요일을 살아가려 한다.
잘 놀았다. 이제 또 일하자.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오키나와에서 돌아온 그날 밤에는 다음 날 업무를 확인하려고 노트북을 켰다. 다행히 걱정했던 비상 상황은 없었다. 그만하면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다. 내일 할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일찍 누웠다.
다음 날은 마침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침대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내 바카라상이 회사가 됐다. 며칠 전까지 눈앞에 있던 에메랄드빛 바다 대신 회색 노트북과 모니터, 키보드가 놓여 있었다. 그렇다고 그 풍경이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민트색도 좋아하지만 회색도 좋아한다.
회색에는 차분하고 진중한 구석이 있다. 혼자 눈에 띄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곁에 놓인 색을 잘 받아주는 것 같다. 민트는 시원해서 좋으며, 노랑은 보고 있으면 괜히 기운이 난다. 좋아하는 색이 많은 것은 그때그때 필요한 기분도 달라서인지 모른다. 늘 노란색처럼 들떠 있을 수는 없으니, 잘 놀고 돌아온 날에는 회색의 차분함도 반가웠다.
물론 비상 상황이 없었다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요청 메일은 밀려 있었고 협업 중인 프로젝트마다 확인할 일이 기다렸다. 팀장인 나는 내 업무만 보면 끝나는 사람도 아니었다. 여러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왔는지, 놓친 것은 없는지, 누가 무슨 일을 맡는지 살펴야 했다. 내가 며칠 바다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회사는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그 사이에 끼어 내 몫을 하면 됐다.
바다에 다녀왔다고 월요일까지 갑자기 아름다워진 것은 아니다. 고객사에서는 급한 요청이 왔고 오래 걸리는 회의도 있었다. 나도 그대로라서 일을 할 거면 이왕이면 잘하고 싶었다. 문제는 그 마음으로 여러사람들의 마음까지 너무 열심히 들여다보려 한다는 데 있었다.
나는 나를 HSP 성향이 높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사람의 반응을 꽤 많이 살피는 편이다. 평소 “네! ^^”라고 하던 사람이 어느 날 “네” 하고 한 음절만 띡 보내면 짧아진 대답이 도리어 커 보였다. 기분이 안 좋은가,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인가 싶었다. 대부분은 아무 일도 없다는 걸 나도 안다. 안다고 신경이 안 쓰이는 것은 또 아니었다.
예전의 나는 사람의 표정과 말투 사이에 생긴 빈칸을 자주 내 바카라임으로 채웠다. 샤워를 하다가도 회의 때 했던 말을 생각했고, 침대에 누워서는 메신저 내용을 복기했다. 내가 퇴근해도 안테나는 퇴근하지 않았다. 몸은 퇴근했는데 내 머리는 야근 중이었다.
그렇다고 이 성격이 나를 피곤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에서는 작은 것을 잘 보는 성격이 꽤 쓸모 있다. 빵집 할머니들의 깨끗한 제빵복이 눈에 들어오고 신호등의 피요피요 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mic21 직원들이나, 노란 핀 주변을 맴돌던 적극적인 물고기도 그렇다. 바닥에 넓게 퍼진 버섯 같은 산호까지. 별것 아닌 걸 오래 보는 사람은 여행에서도 꽤 바쁘다. 볼 것이 많으니까.
생각해 보면 나를 지치게 하는 성격으로 좋은 것도 많이 보고 다녔다. 그러니 안테나를 아예 없애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회사에서도 너무 성실하게 근무하는 게 문제라, 이제는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두는 연습을 한다. 그 사람이 피곤한 건지 점심을 잘못 먹은 건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면 확인하면 될 일이다. 혼자 오래 붙들고 있는 생각을 알아차리면 나에게 말해본다.
내려놔. 그리고 천천히 다시 올라와.
예전에는 퇴근 후에도 알림을 들으려고 노트북을 켜뒀지만 요즘은 전원을 끄고 닫는다. 물론 머릿속까지 같이 꺼지지는 않는다. 저녁을 먹다가 ‘아, 그거 확인했나?’ 싶고, 샤워 중에도 ‘아까 그것도 물어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OFF로 해뒀는데 혼자 슬그머니 ON이 된다. 내일 생각하자고 말하며 다시 OFF. 훌륭한 스위치는 아니다. 접촉 불량이 조금 있지만, 그래도 다시 끄는 속도는 예전보다 빨라졌다. 몸만 퇴근시키지 않고 마음도 집으로 데리고 오는 데 그만큼은 익숙해졌나 보다.
어떤 날에는 그래도 안 된다. 회사도 사람도 싫고, 다 꺼지고 나만 있었으면 좋겠는 날이 있다. 그러다가 또 이래서 일하는구나, 일하는 보람이 이런 거구나 싶어진다. 전날 밤에는 마음이 그렇게 어지러웠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세상이 그만큼 망해 있지 않기도 하다. 내 기분 하나를 두고 그날 안에 모든 결론을 낼 필요는 없는 모양이다.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열던 재판도 요즘은 늦게 연다. 예전에는 피고인도 나, 검사도 나, 판사도 나인 재판을 곧장 시작했다. 판결은 대체로 ‘네가 너무 예민함’이었다. 이제는 짜증이 나면 아, 짜증 났구나 하고, 서운하면 이건 서운했구나 하고 잠시 둔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까지만 알아두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미뤄본다.
남의 반응을 살피느라 지쳤으면 집에서라도 나를 편하게 두면 좋으련만, 나는 쉬는 데도 까다로웠다. 여전히 침대에 눕는 걸 좋아하고 월급날에는 마음 먹고 아로마 마사지를 받으며, 주말에는 밀린 OTT를 남편과 함께 보며 맛있는 걸 먹는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쉬는 일에까지 계획을 세웠다. 오전에는 스트레칭하고 오후에는 나가서 바카라을 읽고, 운동도 하고 저녁에는 반신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회사에서 퇴근한 뒤 ‘나 관리 회사’에 다시 출근하게 된다. 그 회사의 상사는 나인데 심지어 꽤 까다롭다. 쉬는 날에도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 따지니 퇴근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너무 피곤하면 생각을 놓고 쉰다.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있으면 겉보기에는 예전과 같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미루면서 눕는 것과 오늘은 쉬기로 결정하고 눕는 것은 내 안에서 다르다. 물론 쉬기로 해놓고도 운동을 안 한 날에는 괜히 배를 한 번 만져본다. ‘내일부터 해야지’는 여전히 잘한다. 사람이 쉽게 새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쉬고 나면 이번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게 된다. 방 한편에는 전시에서 산 굿즈와 그림, 관련 서적이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물속에 들어온 듯 조용한 전시장을 좋아한다. 볼 것도 생각할 것도 있으면서 무엇을 얼마나 보아야 하는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마음이 가는 그림 앞에서는 오래 머물러도 된다.
수영이나 프리다이빙을 좋아하는 마음도 그와 닮았는지 모른다. 여러 사람의 말과 표정에 흩어졌던 관심이 물에서는 내 몸의 움직임과 상태 가까이 머문다. 전시장에서도 남의 표정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바라본다. 조용한 곳 자체보다 내 관심을 어디에 둘지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일을 미루면서 그런 시간도 내게 자꾸 늦게 주었던 셈이다.
오래 좋아했던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도 그렇게 내 방에 들어왔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그의 그림 속 물은 좋았다. 〈A Bigger Splash〉나 〈A Lawn Being Sprinkled〉를 보면 물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열심히 떨어지는 빗물, 야무지게 흐르는 시냇물, 대차게 나아가는 강물, 여러 생명을 품은 바다. 어딘가 고인 물조차 바람과 그날의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조용히 그림 속 물을 감상하는 시간이 좋다.
이상원의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다. 《레스토피아》 전시에서 본 〈Floating People〉이 기억에 남는다. 그가 그린 휴양지를 보고 있으면 언젠가 놀러 갔던 곳이 떠오른다. 그림 속에서 내 기억을 발견하고 나면 그 풍경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된다. 그러다 연차든 휴가든 내고 다시 쉬러 가고 싶어진다. 그림을 보러 갔다가 다음에 쉬고 싶은 곳까지 생각하고 오는 셈이다.
내게 전시는 쉬는 시간이자 무엇을 좋아했는지 다시 알아보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림 앞에서는 잘 알겠던 마음도 누군가 물으면 바로 답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일전에 본 방송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상담심리학자 이호선 선생님이 한 부부에게 각자 원하는 쉼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다.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그렸지만 아내는 쉽게 그리지 못했다. 쉬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끝내 종이를 다 채우지 못했다. 쉼은 꿈과 같았고 그녀에게는 꿈이 없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내가 바라는 쉼을 떠올렸다. 방해받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조용히 자유롭게 만끽하는 것. 내가 꿈꾸는 생활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어떻게 쉬고 싶은지 생각하니 지금 무엇을 바라는지도 알 것 같았다.
쉼을 그리지 못했다고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일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 무엇을 원하는지 물을 틈부터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 다른 일부터 하던 사람이었다. 그 질문을 남의 이야기로만 듣고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날도 일을 마치고 노트북을 껐다. 딸깍, 화면이 까맣게 변하자 일정과 프로젝트로 가득했던 자리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내일도 할 일은 있고, 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표정을 보며 가끔 필요 이상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게 나니까.
다만 퇴근할 때쯤에는 다른 사람과 다른 일을 향해 있던 안테나를 내 쪽으로도 돌려보려고 한다. 오늘 나는 얼마나 피곤한지, 어떻게 쉬고 싶은지, 정말 어딘가 가고 싶은지. 답을 당장 정하지 못하더라도 묻는 일까지 미루지는 말아야겠다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