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자꾸 미루던 30대 온라인 게임인의 첫 프리다이빙 여행_6편
미루던 30대 온라인 게임인의 첫 프리다이빙 여행_1편
“와, 날씨 좋다!”
아침에 창문을 열자 뜨거운 햇빛이 들어왔다. 하늘은 파랗게 뚫려 있었고 바람은 선선했다. 어제 프리다이빙에 실패한 사람에게 이보다 좋은 재도전 날씨가 있을까. 허벅지 바다를 겪은 사람에게 파란 하늘은 꽤 훌륭한 응원이었다.
전날 밤 챙긴 짐을 다시 확인했다. 젖은 것을 담을 비닐 백부터 수영복과 슈트, 마스크와 노란 핀, 선크림과 모자까지. 간단한 간식과 야채주스로 속을 달랜 뒤에는 배에서 멀미가 날까 봐 챙겨온 멀미약도 먹었다.
아침 첫 임무는 점심용 샌드위치 구하기였다. 우리가 신청한 투어는 점심 제공은 없는 투어였기에 배에서 먹을 요깃거리를 준비해야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마침 작은 빵집이 보였다. 따뜻한 빵 냄새가 풍기는 문 앞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이 봉투를 들고 나왔다. 필요한 순간 눈앞에 나타난 빵집이 반가워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안에는 어렸을 적 봤던 호빵맨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법한 하얀 제빵복을 정갈하게 입은 할머니 세 분이 계셨다. 두 분은 빵을 만들고 한 분은 계산을 맡았다. 작은 공간에 빵들이 옹기종기 놓여 저마다 노릇한 색을 뽐냈다. 한참 고민하다 돈가스 샌드위치와 만득이빵 샌드위치를 골랐다.
계산하는 할머니가 번거롭지 않도록 동전까지 금액에 딱 맞춰 준비했다. 따뜻한 날씨와 청명한 하늘, 맛있는 빵 냄새와 딱 맞는 동전. 별것 아닌 일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졌다. 뭐든 될 것 같은 아침이었다. 길에서 만난 칠변화 꽃까지 예뻤다.
어제에 이어 동생의 필살 동전지갑은 버스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승차할 때 번호표를 뽑고 내릴 때 그 번호에 해당하는 요금을 내는 방식이었다.
카드가 안 된다는 후기를 읽고 준비한 덕분에 비축한 동전으로 요금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선착장.
선착장에 도착해 가이드를 확인하고 서약서를 썼다. 한국어 서류와 안내문이 있어 내용을 익히기 어렵지 않았다. 건강 상태를 살피고 무리하지 말 것, 버디를 확인할 것 같은 안전 안내를 들은 뒤 배에 올랐다.
서양인 커플 한 쌍, 일본인 가족 네 명과 커플 한 쌍, 한국인 모자, 그리고 우리 자매까지 다섯 팀이었다. 다섯 팀의 기대를 안고 배가 선착장에서 멀어졌다.
같은 배에 탔어도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달랐다.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을 스노클링팀과 공기통을 메고 내려갈 스쿠버다이빙팀, 한 번의 호흡으로 들어가는 우리 같은 프리다이빙팀이 각자의 안내를 들었다.
햇살은 뜨거웠고 바람은 시원했다. 모자를 챙겨와 다행이었지만 날아가지 않게 붙잡고 있어야 했다. 거친 파도에 배가 위아래로 움직여도 멀미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통통배를 탄 아이처럼 즐거웠다. 가는 길에는 바다 사이사이로 오래된 전쟁의 흔적인 콘크리트 구조물도 보였다. 그 곁을 지나 마음껏 수영하러 가는 아침이 새삼 고마웠다.
한참 달리던 배가 속도를 줄였다. 바다색이 달라졌다.
“와…….”
입에서 소리가 나오더니 입꼬리도 귀 쪽으로 올라갔다. 히실히실 웃음이 샜다. 몰디브에서 봤던 것처럼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였다. 배 위에서도 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어제는 아무리 걸어도 허벅지였는데 오늘은 보기만 해도 내 키보다 깊었다. 내 키보다 깊은 바다가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맑고, 밝고, 연한 푸른빛.
내 키보다 깊은 바다가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프리다이빙은 힘으로 깊이 내려가는 운동이 아니다. 긴장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호흡도 흐트러진다.
우린 기쁜 만큼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장이 조금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배를 부드럽게 울렁이게 하는 바다의 리듬에 몸을 맞췄다.
다른 사람들이 대여 장비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가져온 장비를 챙겼다. 먼저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를 받고 준비운동을 했다. 발을 물에 적셔 수온을 느끼고 마스크를 쓴 뒤 핀을 신었다.
동생과 서로 상태를 확인하고 눈을 맞췄다. 우린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사인으로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사다리를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풍덩!
몸 전체가 바다에 잠겼다. 먼저 온도가 느껴졌다. 생각보다 차갑지는 않았다. 내게는 딱 냉탕 같은 시원함이었다. 수면에 둥둥 뜬 채 얼굴을 넣었다.
“와…….”
오늘 두 번째 감탄이었다. 아래에서는 이미 다른 세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산호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오갔고 은빛 떼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조금 아래에는 커다란 버섯 하나가 바닥에 납작하게 퍼져 자란 듯한 산호가 있었다.
수면에서 쏟아진 햇빛은 물 안으로 들어오며 잘게 부서졌다. 사진으로 봤던 바다보다 훨씬 멋있었다.흥분을 가라앉히며 수업에서 배운 덕다이빙을 떠올렸다. 몸을 접고 다리를 들어 올려 물속으로 향하던 동작. 머릿속에서는 알겠는데 몸이 그대로 따라줄지는 해봐야 알았다.
덕다이빙 기술
준비 단계: 수면에서 깊게 호흡하고 몸 전체를 띄운다.
압력 평형: 입에서 스노클을 빼기 전 미리 한번 이퀄라이징 시행.
자세 잡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손끝을 대문자 'T'자 모양으로 만들거나 앞으로 나란히 뻗는다.
입수 동작: 배를 앞으로 내밀었다가 엉덩이로 물을 밀어내듯 90도로 구부리며 물속으로 들어간다.
다리 동작: 동시에 다리를 물구나무서기나 앞 구르기 하듯 들어 올리며 들어간다.
양팔 동작: 시선은 벽면을 향하고, 양 팔로 물을 잡아당기듯 스트로크를 한다.
이퀄라이징: 한 손은 곧바로 코를 잡고 한 번 더 이퀄라이징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접었다. 덕다이빙을 하고 프렌젤로 귀의 압력을 맞췄다.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머리 위로 수면이 멀어졌다. 드디어 바다 다이빙이었다.
처음 덕다이빙을 배우던 내가 떠올랐다. 그때는 언젠가 오키나와 바다에서 이 동작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실내 다이빙장에서 연습하던 몸이 여기서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방수 케이스에 넣은 아이폰을, 동생은 인스타360을 챙겼다. 그런데 머문 시간에 비해 사진과 영상은 많지 않았다. 첫 바다에서는 기록할 것보다 눈에 담을 것이 더 많았다. 카메라보다 오래 그냥 눈으로 보고 싶었다.
몸이 기억하는 잠영을 하며 물속을 둘러보다 숨에 여유가 있을 때 올라왔다.
"푸하!"
첫 공기가 시원하게 들어왔다. 숨을 고른 뒤 버디인 동생에게 괜찮다는 OK 사인을 보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몸 안쪽에서부터 기분 좋은 행복감이 퍼졌다.
다음은 동생 차례였다. 그날 동생은 프렌젤이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았고, 귀의 압력이 맞춰지지 않으면 더 내려가지 않았다. 첫 번째 포인트의 수심은 대략 3~5미터여서 깊이 가지 않아도 산호와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내려갔다. 누가 더 깊이 가는지보다 서로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다.
그때부터는 여유롭게 놀았다. 번갈아 내려갔다 올라오고, 수면에 떠 있다가 궁금한 곳을 다시 들여다봤다. 첫 번째 포인트를 마친 뒤에는 두 번째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물고기가 정말 많았다. 백만 스물한 마리쯤. 물론 세어본 건 아니다. 그중 알록달록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노란 핀 근처를 계속 맴돌았다.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생물이 자기 동네에 들어와 궁금했을까. 핀 아래에 몸을 숨기려던 걸까. 우리는 서로에게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한참 풍경을 보고 있는데 길쭉한 것이 스르륵 움직였다.
바다뱀이었다.
나는 그대로 멈췄다. 물고기 백만 스물한 마리 앞에서는 대담하더니 뱀 한 마리 앞에서는 갑자기 신중해졌다. 정작 녀석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수면 가까이 올라왔다가 자기 갈 길을 갔다. 그래도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바다가 예쁘다고 모든 생물과 친해질 필요는 없다.
아래로 스쿠버다이버들이 지나갔다. 그들이 내뿜은 공기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누군가는 공기통을 메고 내려가고, 누군가는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었다. 나는 한 번 들이마신 숨으로 갈 수 있는 만큼 갔다.
한 번은 수면에 등을 대고 누웠다. 노란 핀도 힘없이 둥둥 떴다. 위를 보니 하늘이었다. 앞에도 파란색, 등 뒤에도 파란색.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바다에 풍덩했는데 하늘에도 풍덩했나.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여러 일을 동시에 생각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생각할 게 별로 없었다. 물의 온도와 내 숨, 몸이 떠 있는 감각이면 됐다. 오늘에 대해 무슨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냥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아주 많이.
기쁜 마음에 동시까지 지었다.
제목 : 보글보글 둥글둥글
지은이: 황제펭귄
바다는 보글보글
지구는 둥글둥글
물고기는 살랑살랑
거북이는 느릿느릿
햇빛은 물결 따라
반짝반짝 내려오고
나는 버디 따라 풍덩,
오리 궁둥이로 내려가고
행복은 동글동글
마음도 몽글몽글
숨 한 번 참았더니
세상이 조용조용
바다를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파란 바다에는
구름이 둥실둥실
바다에 풍덩했는데
하늘에도 풍덩했나
내 마음까지
둥실둥실
내 행복까지
보글보글
그러던 중, 어딘가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한국인은 우리 자매밖에 없는데 다른 목소리였다.
“거. 북.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