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자꾸 미루던 30대 온라인 게임인의 첫 프리다이빙 여행_10편
예전에는 해 보고 싶거나 좋아하는 일을 당장의 우선순위에서 미루다 못해 자꾸 마지막에 뒀다. 일을 다 하고 돈을 더 모으고, 운동해서 살도 빼고 체력도 좋아지면 그때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시간도 생길 줄 알았다. 문제는 그 ‘언젠가’가 스스로 날짜를 정해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해 보고 싶은 일도 아끼다 보면 똥이 될 수 있었고 오래 묵히면 변비에 걸린 듯 이상 증상이 생길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 걸려 배운 사람이다.
오키나와에 다녀온 뒤에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바다에 가기로 했다. 두 번이면 더 좋겠지만,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조금씩 시간을 내보기로 했다. 다음 바다에 갈 때까지 마냥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바다가 아니면 실내 다이빙장도 좋았다.
그 마음이 또다시 ‘나중에’, '언젠가'로 밀려나기 전에, 동생과 바로 3개월 이내 날짜를 잡아 캘린더에 일정을 넣었다. 그렇게 올해는 파라다이브와 딥스테이션, 두 곳의 실내 다이빙장에 다녀왔다.
파라다이브는 주말 오후에 사람이 많다고 들어, 평일 이른 아침을 골라 연차를 내고 갔다. 이른 아침의 풀은 텅 비어 고요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각 부이마다 두세 명씩 사람들이 붙기 시작했고, 물속에도 천천히 활기가 생겼다. 그래도 평일 오전의 다이빙장은 충분히 여유로웠다.
사람이 적어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따로 있었다. 마음속으로만 ‘가야지, 가야지’ 하던 곳에 이번에는 너무 오래 미루지 않고 내가 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에는 인어공주 같은 프리다이버가 많았지만, 나는 이 구역의 황제펭귄답게 내 속도로, 내 깊이로 잘 놀았다. 실내 딥풀에는 오키나와의 물고기도 거북이도 없었다. 대신 파라다이브에는 이집트를 떠올리게 하는 테마가 있었고, 딥스테이션에는 바오바브나무가 서 있었다. 바다와는 다른 풍경 속에서도 다시 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좋았다.
파라다이브에 갔을 때와 달리, 딥스테이션에 가는 날은 하늘이 흐렸고 비도 내렸다. 다행히 바다와 달리 실내 다이빙장은 날씨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았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파도에 마음 졸일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예약한 시간에 거의 약속대로 들어갈 수 있는 물이라는 점이었다. 바다까지 가는 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을 즐길 방법은 있었다. 내게 필요한 건 다음 여행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일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이렇게 대체할 수 있는 활동을 위해 하루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계획이 언제나 100퍼센트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획은 그저 방향을 만들어주는 것에 가깝다. 그 방향으로 60퍼센트쯤만 가도, 나는 꽤 만족하는 편이다. 애초에 기준을 100퍼센트를 기준으로 삼았다가는 평생 자주 불행할 것 같아서, 나는 일찌감치 60퍼센트쯤에 만족하는 요령을 배웠다. 그래서 난 늘 계획을 먼저 세운다. 계획은 늘 사람을 어느정도는 이끈다.
처음 프리다이빙을 배울 때는 내려가는 법에 신경을 많이 썼다. 덕다이빙을 배우고, 스태틱과 프렌젤을 연습하면서 몇 미터까지 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프리다이빙을 배우 던 때 나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들 처럼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오키나와에서 돌아온 뒤 자꾸 떠오르는 건 깊이가 아니었다. 물 위로 올라와 첫 공기를 들이마시던 순간, 거북이를 보자마자 기뻐서 동생을 찾았던 일, 돌아오는 배에서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일이었다. 그날 밤 숙소에서 돌아가던 세탁기 소리와 우리 자매의 기분 좋은 재잘거림도 함께 남았다.
바다는 내가 얼마나 숨을 참았는지, 얼마나 깊이 내려갔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 여행에 돈을 얼마나 썼는지, 몇 달을 기다렸는지, 얼마나 기대했는지도 몰랐다. 그저 그날의 바다였고, 나 역시 그날의 몸과 마음으로 물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몸이 좋지 않으면 무리하지 않아야 했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날 바다에 간 일이 전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아니었다. 물에 몇 미터를 내려갔는지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는 하루가 있었다.
내려갈 때만큼 다시 잘 올라오는 일도 중요했다. 그래야 그날 본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다음에도 물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내가 오래 하고 싶은 것은 깊이 내려가는 한 번의 다이빙보다, 들어갔다 돌아오는 일을 거듭하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때로는 전시에서 물속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기획 OCEAN 가장 거대한 기록》을 보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상도 좋아하고 디즈니도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전시였다.
디즈니 캐릭터와 함께 사진과 탐사 영상, 바다 생명의 소리를 따라 물속의 여러 삶을 만났다. 내가 잠깐 들어가 놀다 나온 곳에서 다른 생명은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 옆에, 그곳이 오래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이 나란히 생겼다.
나는 사람이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도, 아무도 없이 자연만 남아 있는 풍경도 좋아했다. 결국 전시 도록까지 한 권 품에 안았다. 그러고 보니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전에도 물속의 사람 앞에서 한참 발을 멈춘 적이 있었다. 오래전 성수에서 본 나탈리 카르푸셴코의 사진전 《모든 아름다움의 발견》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바라보았던 <Ocean Breath>를 지금 다시 찾아보니, 물에 잠긴 사람의 모습이 내가 배운 프리다이빙과 닮아 있었다. 무엇에 마음이 가는지도 모른 채 들여다보던 사진이 나중에 내가 해볼 일과 이어져 있었던 걸까. 그런 연결을 발견하면 괜히 운명 같은 생각도 해본다.
그녀의 사진을 모두 반갑게만 볼 수는 없었다. 물속에서 맨몸으로 웅크린 사람도 있었고, 〈Plastic Mermaid〉처럼 쓰레기에 휘감긴 사람을 담은 작품도 있었다. 아름다워서 들여다보다가 그 아름다움을 둘러싼 것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제 그 사진들을 떠올리면 자마미섬에서 본 하얗게 변한 산호도 생각난다. 사진 속 바다의 일이 내가 다녀온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좋아해서 바라보고, 바라보다 직접 들어가 보고, 다녀온 뒤에는 더 아끼게 됐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생기니 그곳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하게 됐다. 텀블러와 다회용기를 쓰고, 불필요한 포장과 쓰레기를 줄이고, 전기를 아끼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조차 꾸준히 미루던 사람이니 이런 일도 늘 잘 챙기는 것은 아니다. 그 일들로 바다가 얼마나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다시 들어갈 바다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이 건강했으면 한다. 그 마음을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조금씩 옮겨보는 중이다.
여행을 다녀온 뒤 달라진 것은 이런 것들이다. 다시 물에 들어갈 시간을 내고, 전시의 사진 앞에서 내가 만난 바다를 떠올리고, 돌아와서는 그곳을 아끼는 방법을 생각한다. 바다에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다녀온 뒤에도 좋아하는 마음을 쓸 곳은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원하는 쉼을 갖는 것은 내 삶의 국물에 즐거움 한 스푼, 행복 한 국자를 넣는 것 같다. 그렇게 더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내 입맛에 맞는 진국이 되어가겠지. 오래 끓이는 곰탕처럼 살면서 맛을 보고, 내게 필요한 것을 보태고 싶다. 쉼도 물도 꿈도 그런 재료들이다.
문제는 무언가를 보태기에 딱 좋은 때를 기다리면 또 오래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를 해결하면 슬쩍 다음 문제를 내미는 성실한 출제자 같다. 나는 자주 틀리고, 가끔은 운 좋게 맞힌다. 모든 문제를 다 푼 뒤에 행복해지겠다고 기다리기에는 다음 문제가 너무 부지런히 찾아온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동안에도 좋아하는 사람과 밥 한 끼 먹고, 물에 들어갈 날짜 하나쯤은 잡아두려고 한다. 그렇게 내 삶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그림-사진-영상 작품처럼 만들어가고 싶다.
이번 여행을 떠날 때도 나의 상황이나 내 몸이 완전히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갔다. 내가 정한 기준에 맞게 완성된 나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도 가면 됐다.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고 가족과 여행을 가는 것, 가끔 물에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 내 침대에서 자는 것도 내가 말하는 ‘잘 사는 것’ 안에 있었다.
물론 여행 한 번 다녀왔다고 통장 잔액은 돌보지 않은 채 로망을 좇는 무작정 낭만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 벌어야 한다. 다음 바다에도 가야 하니까. 그러니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이 여행의 반대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놀고 돌아오면 슈트를 빨고 노트북을 켠다. 해야 할 일을 하며 다음에 쓸 시간과 돈을 마련한다. 그사이에 몸도 살핀다. 한동안 운동을 못 했으면 다시 2kg 아령을 들고, 글을 오래 미뤘으면 한 문장을 쓴다. 꼭 프리다이빙이 아니어도 좋다. 수영이든 다른 좋아하는 일이든, 내 몸과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사진첩에만 두어도 되는 여행을 이렇게 오래 꺼내 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내가 본 것과 웃겼던 것, 아쉬웠던 것을 다른 날의 내가 읽어볼 수 있도록. 이 원고를 쓰는 일 역시 좋아하는 것을 자꾸 다음으로만 미루지 않으려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앞으로도 한동안 물과 멀어졌다가 다시 찾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사이에는 나의 월요일을 살고, 쉬는 날에는 침대에서 뒹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날짜를 하나 정하면 노란 캐리어를 꺼내고, 잘 놀고 돌아와서는 슈트를 빨아 널 것이다. 내려가는 법과 다시 올라오는 법을 익히며, 물속에서 보낸 시간과 돌아와 살아갈 날들을 함께 챙기고 싶다.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magazine/article/emperor-penguins
앞으로도 이불이 이기는 날은 많겠지만,
가끔은 이불 밖으로.
이불 밖은 여전히 귀찮다.
그래도 그 너머에 바다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당신의 지구 버디 황제펭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