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자꾸 미루던 30대 온라인 게임인의 첫 프리다이빙 여행_8편
어느새 배가 육지에 닿았다. 함께 바다에 들어갔던 사람들과 만족스러운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선착장에서 한참 멀어졌는데도 몸은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발은 땅을 밟고 있는데 어딘가 둥실둥실 떠 있는 기분이었다. 머리는 젖어 있었고 입술에는 옅은 짠맛이 남았다. 육지로 돌아왔는데도 몸 어딘가에는 아직 바다가 있었다.
선착장을 벗어나고 나서야 피로가 느껴졌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보람찬 피곤함이었다. 거기에 질세라 배고픔까지 몰려왔다. 분명 샌드위치도 무스비도 먹었는데, 물놀이는 먹었던 사실을 아주 쉽게 없던 일로 만든다.
우린 아메리칸 빌리지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날씨가 좋아 몇 번씩 멈춰 바닷가 풍경을 봤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바다를 옆에 두고 뚜벅뚜벅 걷다가 동생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알록달록하고 조금은 과장된 건물, 영어 간판과 미국풍 상점, 바닷가 산바카라로를 보니 왜 아메리칸 빌리지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미국에 가본 적은 없어도, 오래된 해변 마을을 오키나와식으로 옮겨놓으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우리 자매는 아메리칸 빌리지를 가볍게 둘러본 뒤, 근처 일식집에 들어가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빠르게 골랐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푸른 바닷속에서 거북이를 보고 있었는데, 이제 눈앞에는 노랗고 부드러운 계란을 덮은 오야코동이 놓여 있었다. 한 숟갈 먹자 바다에서 한참 놀고 난 몸에 따뜻한 안정감이 퍼졌다. 밥을 먹으면서도 우리의 이야기는 자꾸 거북이에게로 돌아갔다.
“우리 진짜 결국 두 마리나 봤네.”
“그러니까. 진짜 대박. 나도 지난번에 이렇게까지는 못 봤는데.”
몇 시간째 같은 이야기인데 질리지 않았다. 소원성취한 사람들의 대화였다. 그 와중에도 다음 날 귀국편 모바일 체크인은 잊지 않았다. 출국할 때는 놓쳤지만 이번에는 빨랐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밟듯 텅 빈 좌석표를 살피고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랐다. 프리다이빙 경험도, 모바일 체크인 경험도 각각 1점씩 늘었다.
숙소에 돌아와 무거운 짐을 풀고 빨랫감부터 구분해두었다. 빨래는 잠시 미루고 성공적인 프리다이빙을 축하하러 다시 나갔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타코야키와 나마비루였다.
이제 다이빙 일정도 무사히 끝났으니 한결 편한 마음으로 맥주잔을 들었다. 뜨거운 타코야키와 차가운 생맥주를 앞에 두고, 우리는 마치 숙제 끝낸 불량 학생들처럼 건들건들 잔을 부딪쳤다.
“짠!”
한 모금 마시자 절로 소리가 났다.
크-, 캬!
이 맛이었다.
머리끝까지 잠긴 바다에서 놀았고 물고기 떼와 거북이 두 마리를 만났다. 이제 동생과 뜨거운 타코야키를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이날 나는 꽤 거창한 행복을 누렸다.
적당히 먹고 마신 뒤 숙소에 돌아오자 아까 미뤄둔 현실이 기다렸다. 아주 많은 젖은 것들. 수영복과 수건, 삭스와 슈트, 판초와 바닷물이 묻은 장비까지. 아침에는 그렇게 소중하게 챙겨 나갔는데 밤이 되니 죄다 축축한 빨랫감이었다. 낭만적인 바다 여행의 현실적인 마무리는 빨래였다.
슈트부터 손으로 빨기 시작했다. 물을 머금은 슈트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미지근한 물에 조물조물 애벌빨래를 하자 바닷물 냄새와 짠기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슈트와 수영복은 욕조에 다시 담가 중성세제를 조금 풀어 손으로 빨았다. 물을 몇 번이나 갈아가며 살살 눌러 헹궜다.
나머지 옷과 타월은 애벌빨래를 한 뒤 세탁기에 넣었다. 곧 세탁기가 돌아가고, 뒤이어 옷과 타월을 넣은 건조기도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배 엔진 소리를 들으며 바다로 갔는데 밤에는 세탁기와 건조기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끝냈다. 잘 놀았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소리를 냈다.
위잉, 위잉.
숙소를 고를 때 세탁기를 확인한 나 자신을 다시 칭찬했다. 건조기까지 있어 한결 수월했다. 슈트만 빨아도 묵직한데 옷과 타월을 전부 손으로 빨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덜 마른 물건을 넣고 돌아갔다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축축하고 비릿한 짐부터 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일하는 동안 기념품을 넣고 캐리어를 정리했다. 빨래를 마치고는 각자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열었다. 사진을 처음부터 넘기자 이야기가 또 시작됐다. 노란 캐리어와 보라색 피크민, 계란 샌드위치와 노란 핀을 지나 허벅지 바다가 나왔다. 물고기도 있었고 버섯처럼 넓게 퍼진 산호도 있었다.
거북이 사진에서는 손가락이 오래 멈췄다. 실제로 봤을 때만큼 선명하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저 안에 정말 있었네. 우리는 사진을 보며 떠들다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장비는 말라 있었고 빨래도 보송했다. 마지막 짐까지 넣고 캐리어를 닫으니 올 때보다 제법 무거워져 있었다. 새로 산 핀과 기념품이 들어간 탓도 있었지만, 전날 사진을 넘겨보며 나눴던 이야기까지 그 안에 함께 쌓인 것 같았다.
우리는 조금 무거워진 캐리어를 끌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온라인카지노로 장식했다. 한국에서 먹을 때보다 가격 부담도 덜해,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먹고 싶은 메뉴들을 골랐다.
이후 시간에 맞춰 공항에 갔고, 이번에는 나란히 앉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길 비행기는 이상하게 평안한 요람 같았다. 몸을 좌석에 기대자 밀려오는 졸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금세 꿀잠에 빠졌다.
한국에 도착하니 또 다른 안도감이 들었다. 집에 왔구나.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돌아오는 것도 좋아한다. 낯선 곳에 가는 재미가 있다면 내 집에 돌아와 내 침대에서 자는 재미도 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캐리어를 대충 펼쳐놓고 누웠다. 짐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잠들었다. 즐거움에 가려져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불은 여전히 나에게 강했다. 이번에는 바다가 한 번 이겼을 뿐이다.
잘 놀았다. 잘 자고 내일부터는 또 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