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결국에는 잘될 거북이들

좋아하는 일을 자꾸 미루던 30대 온라인 게임인의 첫 프리다이빙 여행_7편

by황제펭귄


7편| 결국에는 잘될 거북이들



일본어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큰 소리가 들렸다.

“거. 북. 이!”

일본인 가이드의 입에서 아주 정확한 한국어 세 글자가 튀어나왔다. 한두 번 외쳐본 솜씨가 아니었다. ‘거북이’만큼은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발음이었다. 동생이 곧장 나를 향해 외쳤다.

“언니! 거북이 있대!”

우리 자매의 반응 속도 200%, 의욕 20,000%.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헤엄쳤다.


두 번째 포인트는 첫 번째보다 조금 깊었다. 한 차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뒤라 몸은 훨씬 익숙해져 있었다.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내려가 아래를 봤다. 있었다. 거북이였다.


숨참고 러브다이브


푸른 물 사이로 둥근 등과 네 개의 지느러미, 천천히 움직이는 몸이 보였다. 진짜 거북이다. 숨이 허락하는 만큼 그 모습을 봤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충분했다. 녀석은 우리가 이렇게 냅다 몰려온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자기 길을 갔다


IMG_5605.JPEG나의 첫 거북이!

수면으로 올라와 제일 먼저 동생을 찾았다.

“우리 거북이 봤어!”

동생도 웃고 있었다. 마스크가 얼굴 절반을 가렸지만 웃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물속만 아니었다면 둘 다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을 것이다.


IMG_5606.JPEG거북이는 천하태평하게 근처를 돌아다녔다.


이번 여행에서 속으로 바라던 일이 두 가지 있었다. 머리끝까지 푹 잠기는 프리다이빙을 해보는 것, 운이 좋다면 거북이를 만나는 것. 둘 다 성공했다.


멀어지는 거북이를 보내고 더 행복한 마음으로 산호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됐다.


배에 올라오니 젖은 몸에 바람이 닿아 추웠다. 판초를 뒤집어쓰자 따뜻해졌고, 이제 배가 고팠다. 아침에 빵집에서 산 샌드위치와 동생이 가져온 스팸 무스비를 꺼냈다. 바다를 앞에 두고 햇살을 받으며 먹는 샌드위치가 맛없을 리 없었다. 짭조름한 스팸과 밥이 붙어 있는 무스비도 실패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맛있다.”

진짜 맛있었다. 물놀이하고 밥을 맛없게 먹기도 쉽지 않다. 점심을 먹으며 같은 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거북이 봤어요?”

“저희는 동시에 두 마리 봤어요.”

누군가는 작은 상어도 봤다고 했다. 거북이와 상어, 이런 물고기와 저런 물고기. 사람들이 자기가 본 것을 하나씩 꺼냈다. 그날 배 위에서는 누가 오늘 뭘 봤는지가 가장 큰 자랑이었다. 다 큰 어른들이 초등학생처럼 됐고 우리도 빠질 수 없었다.

“저희도 한 마리지만 거북이 봤어요.”


배 앞머리 모습


밥을 먹고 배 앞머리로 갔다. 동생과 나란히 서서 바다를 보는데 일본인 가족이 웃으며 말했다.


“타이타닉!”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우리가 아니었다. 냅다 팔을 벌렸다. 자매 타이타닉이었다. 가족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도 그 부부를 향해 외쳤다.


“니혼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

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예쓰. 아임 디카프리오.”

배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거북이를 몇 마리 봤는지 이야기하고 타이타닉 한 번 했더니 같이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오늘 할 일은 다 했다 싶었다. 프리다이빙도 했고, 물고기 백만 스물한 마리도 봤고, 거북이도 만났다. 밥도 맛있게 먹었고, 배 위에서는 전 세계 국룰처럼 타이타닉 포즈까지 했다. 훌륭한 하루였다. 그런데 가이드가 세 번째 포인트까지 가보겠다고 했다. 보통은 한두 곳을 둘러보는 일정인데, 이날은 날씨가 좋았고 모두 투어를 잘 따라와줘 한 곳을 더 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우린 정말 운이 좋았다. 막 슈트를 벗으려던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3차전. 당연히 가야지.' 우리는 다시 슈트를 추슬러 입었다.


펀다이빙


세 번째 포인트에서는 마음이 더 편했다. 거북이도 봤고 물고기 떼도 봤으니 더 깊이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저 펀다이빙을 했다. 그런데 앞쪽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또다른 거북이였다.


내 시야에 정말 자~연스럽게 나타난 거북이


너무 자연스럽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 녀석은 아까보다 작아 보였다. 동생에게 위치를 수신호로 알리고 천천히 내려갔다. 느긋하게 가던 녀석은 어느 순간 제법 빠르게 멀어졌다. 더 따라가지는 않았다. 하루에 거북이를 두 마리나 만났다. 어제는 물고기 한 마리도 소중했는데 오늘은 물고기를 셀 수도 없었고 거북이는 두 마리였다. 물속에서 실실 웃었다.


빅토리!

기분이 좋아서인지 도파민으로 체력도 생생했다. 마지막까지 바다를 즐기고 배로 올라왔다. 우리 다음으로 스쿠버팀도 올라왔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다이빙 일정은 오후 1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image.png안녕 바다야


젖은 머리와 뜨거워진 얼굴을 하고 동생과 배 옆 구석에 나란히 앉았다. 판초 안쪽은 따뜻했다. 위잉 위잉, 엔진 소리가 바닥에서 울리자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거북이와 상어를 자랑하고,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되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줄였다. 갑자기 다들 감성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image.png


배가 지나간 자리에는 하얀 물길이 길게 이어졌다. 젖은 머리에 바람이 닿았고, 조금 전까지 놀던 바다가 멀어졌다. 그날의 바다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돌아가는 사람들의 표정 위에서도 한동안 잔잔하게 울렁였다.


나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좋아서. 프리다이빙 배우길 잘했다. 함께 오길 잘했다. 인생이 바뀌었다거나 새로운 내가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프리다이빙 배우길 잘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우린 지치지 않고 거북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진짜 두 마리 봤다.”

“그러니까.”

“소원성취했네.”

어제는 바다가 허벅지에서 끝났는데 오늘은 물고기가 백만 스물한 마리였고 거북이도 두 마리였다. 큰 거북이 한 마리와 조금 작은 거북이 한 마리. 각각 푸른 물속으로 멀어지던 모습을 떠올리다 웃었다. 꼭 우리 같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꾼 일을 십 년 살다가 안정 쪽으로 왔고, 동생은 안정적인 일을 십 년 살다가 자기 꿈 쪽으로 나갔다. 방향도 속도도 달랐지만 둘 다 자기 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날 만난 거북이들이 큰 언니와 작은 동생처럼 느껴졌다.


어느방향으로든 결국에는 잘될 거북이들. 고마운 내 버디와 나. 느려도 앞날을 몰라도, 우리의 바다는 전날보다 조금 더 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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