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민재는 부모님 집 식탁에 앉아 사과를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신문을 접고 말했다.
“돈은 해줄 수 있어. 날짜만 미리 말해. 한 번에 빼려면 정리해야 되니까.”
은서와 살 신혼집은 8억 1천5백에 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둘이 모은 돈에 대출을 보태도 부모님 도움이 필요했다.
“알았어. 고마워.”
“은서네는 얼마 해주신대?”
어머니가 사과를 하나 더 깎으며 물었다.
민재는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정확히는 아직 몰라.”
“둘이 집을 사는데 알아야 계산하지.”
은서 부모님도 보태주겠다고 했지만 금액까지 들은 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그쪽 사정이고. 우리는 더 해주긴 어려워.”
“알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민재가 아버지를 봤다.
“왜 내가 섭섭해 해.”
“그냥 하는 말이지.”
“5천도 큰돈이야.”
말이 조금 빠르게 나왔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쳐다봤다.
“얘가 더 달래?”
“그런 말 안 했어.”
“그럼 됐지. 애 앞에서 왜 미리 미안해하고 그래.”
아버지는 다시 신문을 폈다.
민재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은서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 부모님이랑 얘기했어?
민재가 답했다.
— 응. 5천 해주신대.
답장은 금방 왔다.
— 알겠어. 나도 오늘 얘기해볼게.
민재는 입력창에 손가락을 올렸다.
— 얼마나 해주신대?
쓰다가 지웠다.
오후에 만나기로 했다.
은서는 백화점 시계 매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어.”
“주차하는 데 오래 걸렸어.”
“십 분이나?”
“주말 백화점 처음 와?”
은서는 대답 대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예물 시계를 보러 온 건 두 번째였다.
지난번에 봤던 시계를 다시 차본 은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에서 풀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제일 예쁘다며.”
“예쁘다고 삼백팔십만 원을 꼭 줘야 되는 건 아니잖아.”
“결혼할 때 하나 사는 건데.”
“당신은 시계 필요 없다며.”
“나는 필요 없지.”
은서는 진열장을 한 번 더 내려다봤다가 몸을 돌렸다.
“그럼 나도 됐어. 차라리 TV 큰 걸 사.”
“그건 찬성.”
둘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매장을 나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민재가 말했다.
“어제 너 내려주고 부동산에 전화했어.”
“왜?”
“8억 천오백이면 바로 계약할 수 있는지 물어봤어.”
은서는 아래층에 도착하자 옆으로 비켰다.
“우리 8억 천까지라고 했잖아.”
“오백 때문에 놓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사장님이 내가 동의했냐고 안 물어봤어?”
민재가 대답하지 못하자 은서가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는데?”
“얘기됐다고.”
뒤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둘 사이를 지나갔다.
민재는 은서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아직 계약한 건 아니야.”
“나한테 전화 한 번 하면 되는 일이잖아.”
“어제는 어차피 안 된다고 할 줄 알았어.”
“그럼 더더욱 왜 해.”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앞으로 집 돈 얘기는 혼자 결정하지 마.”
“알았어.”
잠깐 어색하게 걸었다.
민재가 물었다.
“근데 진짜 천오백에 된다고 하면?”
“그때 둘이 다시 계산하고 결정해.”
“가능하긴 한 거네.”
“둘이 결정하자고.”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서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나도 아빠랑 얘기했어.”
민재는 조금 전까지의 이야기를 잊고 은서를 봤다.
“뭐라고 하셔?”
“1억 5천 해주신대.”
민재가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많이?”
“나도 몰랐어. 한 1억 정도 생각했는데.”
“현금으로?”
“엄마 거랑 아빠 거 정리하면 된대.”
민재는 다시 걸었다.
“예식 비용도 거기 포함이야?”
“아니. 집에 보태는 돈으로만.”
은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많이 해주시네.”
“그러게.”
민재는 오전에 들었던 오천만 원을 떠올렸다.
오천도 큰돈이었다.
아버지는 퇴직한 뒤 예전처럼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고, 어머니도 큰돈이 들어갈 때마다 몇 번씩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오천만 원을 마련하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알고 있었다.
오전까지는 분명 큰돈이었다.
그런데 1억 5천이라는 숫자를 들은 뒤부터 오천만 원이 이상하게 작아 보였다.
은서가 말했다.
“우리 카페 가서 돈 다시 한번 맞춰볼래?”
“지금?”
“집주인이 천오백 된다고 하면 계약할 수도 있잖아.”
둘은 지하 카페로 내려갔다.
은서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나는 지금 1억 2천3백 정도.”
“전에 1억 2천이라며.”
“적금 하나 만기됐어.”
“나는 1억 6천 조금 넘고.”
은서가 숫자를 입력했다.
“우리 것만 2억 8천 조금 넘네.”
그다음 숫자를 넣었다.
“당신 부모님 5천.”
“응.”
“우리 부모님 1억 5천.”
화면에 합계가 떴다.
4억 8천.
은서가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대출 적게 받아도 되겠다.”
민재도 계산해봤다.
8억 1천5백에서 4억 8천을 빼면 3억 3천5백이었다. 취득세와 결혼 비용, 현금을 얼마나 남길지 생각하면 실제 대출은 더 필요했지만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는 분명 적었다.
“이자 꽤 줄겠네.”
“그치?”
“그러면 나 나중에 육아휴직 해도 조금 낫고.”
그 말까지 듣고 나니 좋은 일이 맞았다.
“그건 좋네.”
은서는 계산기를 닫으려다 말했다.
“아, 아빠가 명의도 알아보래.”
“왜?”
“공동명의가 나은지 단독명의가 나은지 세금 비교해보라고.”
민재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아버님이 공동명의 하라고 하셨어?”
“그런 게 아니라 알아보라고.”
“갑자기?”
은서가 민재를 봤다.
“집을 사니까 하는 얘기지. 뭐가 갑자기야?”
“그냥. 돈을 많이 보태주시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나 싶어서.”
은서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 아빠가 돈 많이 넣으니까 내 이름 넣으라는 뜻으로 말했다는 거야?”
“내가 그렇게까지 말했어?”
“지금 말이 그렇잖아.”
“그냥 물어본 거야.”
은서는 민재를 잠시 바라봤다.
“당신 부모님이 5천 해주시고 우리 부모님이 1억 5천 해주는 거 신경 쓰여?”
“내가 왜.”
“아니면 됐고.”
은서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민재는 커피를 마셨다.
조금 전까지는 자기 돈이 1억 6천, 은서 돈이 1억 2천이라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조금 더 많이 모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부모 돈을 붙이자 방향이 바뀌었다.
자기 쪽 2억 1천.
은서 쪽 2억 7천3백.
6천만 원이 넘게 차이 났다.
그걸 왜 나눠서 생각하는지도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혼해서 같이 살 집이었다. 대출도 같이 갚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동명의라는 말이 나오자 어느 쪽에서 얼마가 들어오는지부터 계산됐다.
은서가 말했다.
“공동명의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래. 취득이랑 보유할 때랑 나중에 팔 때 다 다르다니까 찾아보고 결정하자.”
“응.”
“그리고 저 집 안 되면 다음 집은 다시 8억 아래부터 보자.”
민재가 은서를 봤다.
“왜?”
“부모님 돈까지 이렇게 많이 받는데 우리가 굳이 끝까지 당겨서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저 집은 마음에 든다며.”
“근데 마음에 드는 거랑 무조건 사는 건 다르잖아.”
민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전 자기가 했던 말이었다.
카페를 나올 때쯤에는 분위기가 조금 풀렸다.
은서가 가구 사진을 보여주며 식탁 가격을 물었고, 민재가 너무 비싸다고 하자 다시 평소처럼 말다툼을 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민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중개사였다.
민재가 전화를 받았다.
— 네, 사장님.
은서도 걸음을 멈췄다.
중개사의 말을 듣던 민재가 물었다.
— 집주인이요?
잠시 뒤 다시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은서가 물었다.
“뭐래?”
“아직 결정은 안 했대.”
“천오백에 팔건지?”
“응. 다른 부부 답도 기다려보는 것 같아.”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다리자.”
“오늘 안에 연락 준대.”
“오면 그때 둘이 결정하고.”
은서가 ‘둘이’를 조금 세게 말했다.
“알았어.”
은서는 먼저 주차장 쪽으로 걸었다.
민재가 뒤따라갔다.
몇 걸음 가다가 은서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아까 말한 집 있잖아. 아직 계약한 건 아니고.”
민재는 두세 걸음 뒤에서 그 말을 들었다.
자기도 부모님에게 다시 전화해야 하나 생각하다 그만뒀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었다.
차키를 손가락에 걸고 한 바퀴 돌렸다.
오전 식탁에서 들었던 아버지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5천이 최대야.
민재는 그 숫자가 아침보다 작아졌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