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천만 원 차이

by서재원

다음 날 아침, 은서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 일어났어?


민재는 침대에 누운 채 시간을 확인했다. 아홉 시 십칠 분이었다.

— 응.

— 목소리가 아닌데.

— 지금 일어났어.

— 어제 몇 시에 잤어?

— 한 시쯤.


실제로는 두 시가 넘었다.

부동산 앱을 보다 잠든 탓에 휴대전화가 베개 옆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화면을 켜자 어젯밤 마지막으로 보던 108동 매물이 먼저 떴다.

8억 2천.


— 오늘 부동산 갈 거지?

— 응.

— 나는 어제 말한 거랑 똑같아. 8억 천까지.


민재는 상체를 일으켰다.

— 알았어.

— 계약금 보내기 전에 대출도 다시 확인하고.

— 그것도 알아.

— 왜 짜증 내?

— 안 냈는데.


잠시 말이 없었다.

— 열한 시쯤 볼까?

— 응.


전화를 끊고 민재는 매물을 새로고침했다.

아직 있었다.

중개사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어젯밤 집을 본 부부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지만 먼저 묻고 싶지는 않았다. 사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욕실로 들어가다가 다시 나와 중개사 번호를 눌렀다.

통화 버튼 앞에서 멈췄다.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은서는 약속 시간보다 십 분 먼저 와 있었다.

부동산 앞 카페에서 바닐라라테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민재가 맞은편에 앉자 가방에서 작은 빵 하나를 꺼내 밀어줬다.


“밥 안 먹었지?”

“어떻게 알았어.”

“얼굴 보면 알지.”


민재가 포장을 뜯는 동안 은서는 태블릿을 켰다.

엑셀 파일이었다.

“또 계산했어?”

“집 사고 얼마 남는지.”


화면에는 매매가 아래로 취득세와 중개보수, 이사비, 가전, 예식 잔금과 신혼여행 비용이 적혀 있었다.

맨 아래 두 줄에 민재의 시선이 멈췄다.

8억 1천에 매수할 경우 예상 잔여 현금 3,420만 원.

8억 2천이면 2,420만 원.


“가전을 너무 많이 잡은 거 아니야?”

“지난번 견적 그대로 넣은 거야. 싸게 사면 남는 거고.”

은서가 화면을 가리켰다.

“나는 남는 돈이 삼천 밑으로 내려가는 건 싫어.”


민재는 빵을 씹으며 숫자를 다시 봤다.

“천만 원 차이인데.”

은서가 민재를 봤다.


“그래서 천만 원을 더 쓰자는 거야?”

“그런 얘기는 아니고. 집 전체 가격에서 보면 1퍼센트 조금 넘잖아.”

“그렇게 따지면 가전 천만 원도 집값의 1퍼센트밖에 안 돼.”

“가전은 감가되는 거고 집은 자산이잖아.”

“어제까지 집에 돈 다 넣기 싫다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은서는 표를 저장하고 태블릿을 가방에 넣었다.

“나도 그 집 좋아해. 그래서 원래 생각했던 금액보다 이미 올린 거잖아.”

“8억 천까지.”

“응. 거기까지.”


밖으로 나오자 부동산 유리문 너머로 중개사가 보였다.

민재는 들어가기 전에 유리창에 붙어 있는 매물 종이를 한번 확인했다.

그대로였다.


중개사는 두 사람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어요? 앉으세요.”

민재는 소파에 앉으며 바로 물었다.

“어제 저녁에 보신 분들은 어떻게 했어요?”

“그분들도 고민 중이래요.”

“계약은 안 했고요?”

“아직은요.”


그 말을 듣자 민재는 자기도 모르게 안심했다.

은서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저희는 8억 천이면 하려고요.”

중개사가 잠깐 머뭇거렸다.

“그게요. 상황이 조금 바뀌었어요.”


민재가 몸을 앞으로 당겼다.

“뭐가요?”

“어제 보신 분들도 8억 천이면 할 생각이 있다고 했거든요. 그 얘기를 들은 집주인이 아침에 8억 천오백을 말씀하시네요.”

민재가 헛웃음을 냈다.

“어제는 8억 천 된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렇게 얘기했죠. 이제 와서 바꾸면 어떡하냐고.”

“사겠다는 사람이 둘 있다고 오백 올린 거예요?”

“아무래도 마음이 달라졌겠죠.”


민재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두 달 동안 집을 보러 다니며 비슷한 경우를 몇 번 봤다. 매도자가 가격을 올리면 매번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하면 됐다.


은서가 말했다.

“그럼 저희는 안 할게요.”

민재가 고개를 돌렸다.

중개사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되물었다.

“바로요?”

“저희가 정한 금액이 8억 천까지라서요.”

“그래도 집은 마음에 드셨잖아요.”

“마음에는 들어요. 근데 예산도 마음에 들어야죠.”


중개사는 이번에는 민재를 봤다.

민재가 말했다.

“8억 천으로 한 번만 더 얘기해주세요. 저희 바로 계약할 수 있다고 하시고요.”

“그건 해볼게요.”

은서가 덧붙였다.

“대신 더 올리지는 않을 거예요.”


부동산을 나오자 은서는 아무렇지 않게 점심 메뉴를 찾기 시작했다.

민재는 한 번 뒤를 돌아봤다.

“진짜 안 살 거야?”

“8억 천오백이면?”

“응.”

대답이 너무 빨랐다.

“고작 오백 때문에?”


은서가 걸음을 멈췄다.

“오백도 돈이지.”

“8억에 오백이면 1퍼센트도 안 되잖아.”

“어제는 8억 이천이 비싸다며.”

민재는 입을 다물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은서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격 정해놓은 이유가 뭐야. 집 보다가 마음에 든다고 계속 올리면 끝이 없으니까 그런 거잖아.”

“끝없이 올리자는 게 아니지.”

“지금 오백이 괜찮아지면 다음 오백도 괜찮아져.”

“다음은 안 올리지.”

“집주인이 또 올리면?”


민재가 대답하지 않자 은서가 웃었다.

“나도 놓치면 아쉬워. 근데 아쉬운 거랑 사야 되는 건 다른 거야.”

그 말은 어제 민재가 했던 말과 비슷했다.

마음에 드는 것과 무조건 사는 건 다르다고 했었다.

그때는 은서가 집을 놓치기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민재가 더 아쉬웠다.


근처 국밥집에 들어갔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민재는 두 번이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은서가 물었다.

“부동산 연락 기다려?”

“아니.”

“기다리네.”

“그게, 그 집을 사고 싶은가 봐.”


은서는 물컵을 민재 쪽으로 밀었다.

“그러면 사고 싶어 해. 그것까지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니까.”

“가격은 안 올리고?”

“응.”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중개사였다.

민재가 전화를 받았다.

— 네, 사장님.

— 집주인이 8억 천오백 밑으로는 안 한대요.


민재는 젓가락을 내려놨다.

— 8억 천은 아예 안 된대요?

— 네. 제가 꽤 얘기했는데 안 된다고 하네요. 그리고 어제 보신 분들도 오늘 오후까지 답 준다고 했고요.

— 그쪽도 천오백에요?

—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양쪽에 똑같이 얘기한 것 같아요.


민재는 은서를 봤다.

은서는 통화 내용을 짐작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 일단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은서가 물었다.

“천오백?”

“응.”

“그럼 끝이네.”


민재는 바로 밥을 먹지 못했다.

오백만 원.

며칠 전까지는 8억이라는 숫자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8억 1천까지 올라오고 나니 오백만 원은 이상하게 작아 보였다.


가전 하나를 낮추면 되는 돈 같았다.

신혼여행에서 조금 줄여도 됐다.

소파를 나중에 사도 됐다.


물론 은서가 말한 게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쓸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 쓰기로 했느냐의 문제였다.


식당을 나와 둘은 예약해둔 가전 매장에 잠깐 들렀다.

지난번 견적에서 냉장고 모델을 하나 낮추자 백만 원 넘게 줄었다.

직원이 말했다.

“기능 차이는 아주 크지 않아요. 이 모델도 많이 하세요.”

은서가 가격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금 줄어든 백만 원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집값 쪽으로 옮겨갔다.

은서는 그런 계산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결혼식 슬롯를 누구에게 부탁할지가 화제가 됐다.

민재는 운전하면서 대충 대답했다.

은서를 집 앞에 내려주고 나서도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공동현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부동산 앱을 열었다.

108동 매물은 여전히 있었다.

8억 2천.

민재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8억 1천.

8억 1천5백.

차이는 500만 원이었다.

오백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돈 때문에 이 집을 놓친 뒤, 몇 달 후 비슷한 집을 8억 3천에 산다면 그게 더 바보 같은 일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은서였다.

정확히는 은서와 조금 전에 한 약속이었다.

민재는 휴대전화를 조수석에 내려놨다.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직전에 다시 멈췄다.


중개사에게 전화했다.

세 번쯤 신호가 간 뒤 상대가 받았다.

— 네, 사장님.

— 아까 그 집 있잖아요.

— 네.

— 저녁에 본다는 분들 아직 연락 안 왔죠?

— 아직이요.


민재는 공동현관 쪽을 한번 봤다.

— 만약에 저희가 8억 천오백 한다고 하면요.

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 그 가격이면 하시게요?

— 다른 분들 안 기다리고 저희랑 바로 계약할 수 있는지만 집주인한테 한번 물어봐주세요.

— 여자친구분하고 얘기는 되신 거죠?


민재는 공동현관을 다시 봤다.

은서가 내려올 이유는 없었다.

— 네.

민재는 전화를 끊고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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