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서 다시 연락이 온 건 다음 날 오전이었다.
민재는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집주인분이 8억 1천5백에 하신대요.”
민재가 상체를 일으켰다.
“진짜요?”
“대신 말씀드린 것처럼 계약은 빨리 했으면 하세요. 오늘 오후 괜찮으세요?”
“오늘이요?”
“매도인분도 오늘 시간 된다고 하시네요. 두 분 가능하시면 계약서까지 쓰죠.”
민재는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이 가격에 받아줄지 말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받아준다고 하니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제가 여자친구하고 얘기해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은서에게 전화했다.
은서는 세 번 만에 받았다.
“응.”
“됐대.”
잠깐 조용했다.
“진짜?”
“응. 오늘 계약하자는데.”
은서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오늘 몇 시?”
“그건 우리가 정하면 된대.”
은서가 한숨 비슷하게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실감 나네.”
“나도.”
“우리 어제 계산한 거 다시 한번 볼까?”
민재가 휴대폰을 집어 들어서 계산기 앱을 켰다.
“또?”
“8억짜리 사는데 한번 더 보는 게 뭐가 어려워.”
은서 말이 맞았다.
둘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전날 정리했던 숫자를 다시 맞췄다.
민재가 가진 돈, 은서가 가진 돈, 양가에서 받을 돈. 취득세와 중개보수, 이사비용, 가전 비용도 다시 넣었다. 은서가 대출을 조금 덜 받는 경우와 더 받아 현금을 남기는 경우를 각각 계산했다.
집값은 8억 1천5백이었다.
둘이 모은 돈과 양가에서 보태줄 돈을 전부 집값에 넣어도 3억 3천만 원 남짓이 모자랐다.
세금과 결혼 비용을 내고 손에 남길 현금까지 생각하면 대출은 그보다 더 받아야 했다. 최종 금액은 은행 심사를 거쳐 정하기로 했다.
결론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살 수 있었다.
민재가 말했다.
“하자.”
은서도 잠시 뒤 대답했다.
“응.”
그 말 한마디를 하고 나니 통화가 어색하게 끝나지 않았다.
둘 다 끊어야 할 것 같은데, 먼저 끊지는 않았다.
은서가 말했다.
“이게 맞나.”
“뭐가?”
“집을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어서.”
“그럼 안 사?”
“그건 아니고.”
“나도 좀 이상해.”
“뭐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의 집 구경 다녔는데.”
은서가 웃었다.
“아직 우리 집 아니거든.”
“오늘 되지.”
“잔금 쳐야 우리 집이지.”
“하여간 초를 쳐요.”
“정신 차리라고.”
오후 세 시로 약속을 잡았다.
부동산에는 매도인 부부가 먼저 와 있었다.
민재가 예상했던 것보다 젊었다. 남자는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였고, 여자는 서류봉투에서 등기사항증명서와 신분증을 꺼내고 있었다.
중개사가 양쪽을 소개했다.
“매수인분들 오셨어요.”
서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다음부터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중개사가 계약서를 한 장씩 넘겨가며 읽었다.
매매대금 815,000,000원.
계약금 81,500,000원.
중도금은 한 달 뒤 100,000,000원.
나머지는 잔금일에 지급하고 소유권을 넘기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은서가 계약서를 읽다가 물었다.
“잔금일은 조금 조정할 수 있나요?”
매도인 여자가 달력을 확인했다.
“저희는 이 날짜면 제일 좋아요.”
중개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매수인분들은 대출 일정 괜찮으시죠?”
민재가 은서를 봤다.
“은행에서는 이 정도면 된다고 했지?”
“응. 본심사 넣을 시간 충분해.”
날짜가 정해졌다.
중개사가 특약사항을 읽어 내려갔다. 근저당이 있으면 잔금과 동시에 상환하고 말소한다는 내용, 현재 상태로 인도한다는 내용, 붙박이 가구와 시스템에어컨을 두고 간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민재는 처음에는 꼼꼼하게 들었다.
그런데 계약서 가운데 적힌 주소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108동 1303호.
그 주소가 이제 자기하고 관련 있는 주소가 된다는 게 이상했다.
중개사가 말했다.
“명의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민재는 잠깐 은서를 봤다.
어제 공동명의 얘기로 분위기가 어색해졌던 게 떠올랐다.
은서가 먼저 말했다.
“저희 공동명의로 하려고요.”
중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분은 반반?”
“네.”
민재도 말했다.
“반반으로 하죠.”
은서가 그를 한번 봤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오전까지도 민재는 조금 고민했다.
자기가 모아놓은 돈은 은서보다 많았고 대출도 자기 소득을 기준으로 받는 비중이 컸다. 반대로 부모 지원까지 합치면 은서 쪽에서 들어오는 돈이 더 많았다.
어떻게 나누든 누군가 계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그래서 오십 대 오십으로 하기로 했다.
어젯밤 은서가 전화로 말했다.
“우리 결혼해서 같이 갚을 건데 그냥 반반 해.”
민재도 그게 제일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중개사가 계약서 두 군데를 고쳤다.
그리고 도장을 찍었다.
매도인이 먼저 찍고 은서가 찍었다.
민재 차례가 왔다.
도장을 가져오라는 말을 듣고 서랍을 한참 뒤진 끝에 찾은 막도장이었다. 몇 년 전 은행에서 적금 들 때 만들었던 걸로 기억했다.
민재는 중개사가 가리키는 곳에 도장을 눌렀다.
생각보다 별 느낌은 없었다.
“계약금 보내시면 돼요.”
그 말부터 조금 달랐다.
민재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둘이 계약금으로 쓰기로 한 돈은 미리 한 계좌에 모아놨다. 은행 앱을 열고 매도인 계좌번호를 입력했다.
81,500,000.
숫자가 너무 커서 한 번 더 확인했다.
은서가 옆에서 말했다.
“계좌 맞아?”
“응.”
“이름도?”
“맞아.”
민재는 이체 버튼을 눌렀다.
추가 인증을 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마지막 확인창이 떴다.
81,500,000원을 이체하시겠습니까?
민재가 손을 멈췄다.
중개사무소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누구도 민재를 보고 있지 않았다. 매도인 남자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었고, 중개사는 계약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은서만 화면을 같이 보고 있었다.
“보낸다?”
“응.”
민재가 눌렀다.
잔액이 바뀌었다.
매도인 휴대전화에서 알림음이 났다.
“들어왔네요.”
그 말로 끝이었다.
8천만 원이 넘는 돈이 빠져나갔는데 별일은 없었다.
천장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누가 박수를 쳐주지도 않았다.
중개사가 계약서 한 부를 봉투에 넣어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은서가 받았다.
“감사합니다.”
“좋은 집 잘 사셨어요.”
중개사가 민재를 보며 말했다.
“이제 집주인 되셨네.”
민재가 웃었다.
“잔금 아직 남았잖아요.”
“그래도 계약했으면 반은 집주인이지.”
매도인 부부도 웃었다.
부동산을 나오면서 은서가 계약서 봉투를 민재에게 내밀었다.
“당신이 들고 있어.”
“왜?”
“가방에 안 들어가.”
민재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얇았다.
8억이 넘는 걸 샀는데 손에 든 것은 계약서 몇 장뿐이었다.
“기분 어때?”
은서가 물었다.
“모르겠어.”
“좋아?”
“좋긴 하지.”
“나는 무서운데.”
“뭐가?”
“대출 갚을 거 생각하니까.”
민재가 은서를 봤다.
“아까는 육아휴직 해도 괜찮다며.”
“괜찮다는 거랑 안 무서운 건 다르지.”
차까지 걸어가는 동안 은서는 계속 돈 얘기를 했다.
이제 예물 예산을 줄이고, 가전은 할인 많이 할 때 사고, 입주 전에 필요한 것과 나중에 사도 되는 걸 나누자고 했다.
민재는 적당히 대답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 문을 열다가 108동 쪽을 바라봤다.
저기였다.
정확히 어느 창인지는 이번에는 찾을 수 있었다.
며칠 전에는 남의 집이어서 중개사를 따라 들어갔고, 신발을 벗기 전에 집주인 허락을 받아야 했다.
몇 달 뒤에는 열쇠를 받아 그냥 들어가면 된다.
민재가 말했다.
“한 번 가볼까?”
“어딜?”
“우리 집 앞.”
은서가 웃었다.
“아까 보고 왔잖아.”
“그래도.”
“뭐 하러 가.”
“그냥.”
결국 가지 않았다.
차에 타자 은서는 부모님에게 계약했다고 연락했다.
민재도 가족 단체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 집 계약했어요. 8억 1천5백.
어머니가 제일 먼저 답했다.
— 축하한다. 이제 아껴 살아라.
동생은 집 모양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아버지 답은 조금 늦게 왔다.
— 잘했다. 잔금 날짜 정해지면 알려줘.
민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은서가 자기 부모와 통화하는 동안 심심해서 부동산 앱을 켰다.
단지 이름을 검색했다.
108동 매물부터 봤다.
아직 8억 2천이라고 떠 있었다.
“이거 아직 안 내려갔네.”
은서가 통화를 끝내고 물었다.
“뭐가?”
민재가 화면을 보여줬다.
“매물.”
은서가 웃었다.
“벌써 우리 집이야?”
“계약했잖아.”
“잔금 치러야 우리 거라니까.”
“아까 사장님도 집주인이라던데.”
“그 양반은 복비 받을 사람이니까 그렇지.”
은서는 안전벨트를 맸다.
“가자. 배고파.”
민재는 앱을 닫으려다가 아래쪽에 있는 월세 탭을 봤다.
손가락이 잠깐 멈췄다.
110동.
며칠 전 봤던 월세 매물이 아직 몇 개 남아 있었다.
보증금 5천에 230.
1억에 200.
유진이 사는 집도 저중 하나와 비슷할 것이다.
물론 유진은 곧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게 어디인지는 아직 몰랐다.
민재는 화면을 닫았다.
차를 출발시키고 단지 정문을 빠져나올 때까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8억 1천5백짜리 집을 계약했다.
그 전부가 빚은 아니었다. 둘이 모은 돈과 부모님 지원금을 보태고, 모자라는 돈은 잔금일에 대출받을 예정이었다.
오늘 통장에서 빠져나간 8천150만 원은 미리 모아둔 계약금이었다.
앞으로 갚아야 할 대출은 아직 실행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날보다 마음이 가벼웠다.
집을 보러 다닐 때마다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서 가격을 묻고, 대출을 계산하고, 살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일이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은서가 말했다.
“왜 혼자 웃어?”
“내가?”
“응.”
민재는 룸미러로 자기 얼굴을 한번 봤다.
“그냥.”
“뭐가 좋아서?”
민재는 잠깐 생각했다.
집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해도 됐고, 가격을 깎아서라고 해도 됐다.
둘 다 맞았다.
“이제 월세 안 살아도 되잖아.”
은서가 민재를 쳐다봤다.
“지금도 전세잖아.”
“그냥 그렇다고.”
신호가 바뀌었다.
민재는 차를 출발시켰다.
잠깐 뒤 은서가 저녁 메뉴를 묻기 시작했고, 민재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 전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이 계속 마음에 들었다.
월세 안 살아도 된다.
정확히는 그 말보다 다른 표현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자가.
민재는 그 단어를 속으로 한번 읽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