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활하십니까?

by이룸

실내건축 일을 하면서 의뢰인을 만나면 나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려고 했다. 주거공간이라면 하루를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집 안에서 어느 곳에 가장 오래 머무는지, 가족은 언제 함께 모이는지부터 물었다. 같은 평수의 집이라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하루가 다르면 필요한 공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도면 위에서는 같은 크기의 거실과 주방으로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어느 집은 거실이 중심이 되고 어느 집은 주방이 중심이 된다. 누군가는 서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소파 한쪽에 앉아 바카라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집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활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 공간을 제대로 설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거공간을 설계하다 보면 생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집에서 누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공간의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한 사람이 가족을 대표해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가장 분명하게 들리고, 자연스럽게 설계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정권자의 생각이 그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남에게 보여주기 좋은 집을 원했다. 손님이 찾아왔을 때 넓고 깔끔해 보이고 가구와 조명이 잘 어울리는 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반대로 다른 누군가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손에 잘 닿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집을 놓고도 원하는 모습이 이렇게 달랐다.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는 의견이 더 다양해졌다. 아내가 주거공간의 결정을 주도하는 경우에는 주방과 거실, 수납공간에 관심을 많이 두기도 했다. 매일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주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물건을 어디에 넣어야 편한지, 가족이 거실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가 중요했다. 남편은 또 다른 것을 원할 수 있었다. 손님에게 보이는 공간이나 자신의 취미를 위한 자리,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필요로 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 나름의 생활과 요구도 있었다.

나는 이런 차이를 누구의 의견이 맞고 틀린 문제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라고 생각했다. 결정권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설계자가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부분은 그 말 뒤에 드러나지 않은 생활이었다. 상담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뿐 아니라 조용히 듣고 있는 가족에게도 필요한 공간이 있을 수 있었다. 평소에는 말하지 않던 작은 불편이나 바람이 실제로 살아보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로 표현된 요구만 가지고 공간을 결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누가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지, 누가 가장 늦게 집에 들어오는지, 가족은 언제 함께 식사를 하는지, 주말에는 어디에 모이는지, 집에서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같은 생활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렇게 하나씩 들여다보면 처음 상담에서 들었던 요구와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족 모두의 의견을 그대로 공간에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는 크기의 한계가 있고 예산에도 한계가 있다. 모두가 원하는 공간을 각각 만들어줄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줄일지 선택해야 했다. 설계자는 그 과정에서 가족의 요구를 조율하고, 실제 생활에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집을 완성하고 나면 또 다른 일이 생긴다. 설계할 때는 모두가 만족했던 공간이 막상 몇 달 동안 살아보면 가족마다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보기 좋았던 거실이 생활하다 보면 너무 넓거나 오히려 수납공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주방의 수납장이 실제로는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넣기에 불편할 수도 있다. 식탁의 위치나 소파의 방향처럼 도면에서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던 것도 매일 사용하다 보면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설계자가 부족해서만 생기는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묻고 살펴도 실제로 살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활은 도면처럼 일정한 선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고 가족의 생활이 달라지고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공간도 변한다. 처음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수납공간이 몇 년 뒤에는 절실해질 수도 있고, 가족이 자주 모이던 공간이 어느 순간 각자의 방으로 흩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주거공간은 공사가 끝나는 날 100퍼센트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계자는 공간의 뼈대를 만든다. 그러나 그 공간에 어떤 생활을 담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몫이다. 처음에는 비어 있던 수납장에 가족이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하나씩 들어가고, 식탁 위에는 매일 쓰는 물건이 놓인다. 소파 옆에는 누군가 읽던 바카라이 쌓이고,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린다. 어느 자리에 무엇을 두면 편한지 가족 스스로 알아가면서 공간에는 설계도에 없던 생활의 흔적이 생긴다.

나는 그것이 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설계자가 아무리 세심하게 계획해도 미처 알지 못했던 생활은 남는다. 그 미완성의 부분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살아가는 사람이다. 필요하면 가구의 위치를 바꾸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치우고, 새로운 물건을 들여놓으면서 집은 조금씩 달라진다. 가족의 생활이 바뀌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그래서 집은 완성된 상품처럼 끝나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조금씩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공간에 가깝다. 설계자가 만든 공간에 가족의 시간이 들어가고, 그 시간이 쌓이면서 처음의 도면에는 없었던 집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나는 의뢰인을 만날 때마다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생활하십니까?”

그 질문은 단순히 어떤 방을 원하는지를 묻는 말이 아니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집을 원하는지, 자신이 편안하게 살아갈 집을 원하는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 무엇을 많이 사용하고 무엇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지를 알아가기 위한 질문이었다.

말로 표현되는 요구도 중요하지만, 말하지 않은 생활까지 살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설계에 담는다고 해서 완벽한 집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집은 사람이 들어와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기 모습을 갖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거공간에는 100퍼센트 완성이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공사가 끝나는 날은 설계가 끝나는 날일 뿐이고, 그다음부터는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습관으로 빈 곳을 채워간다. 설계자가 만든 공간에 사람이 하나씩 자기 생활을 입히면서 집은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어쩌면 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계속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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