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조금 위쪽에 있었다. 집 옆으로 밭이 붙어 있었고 뒤쪽으로는 산이 가까웠다. 몇 걸음만 옮기면 밭이었고, 필요한 채소가 있으면 바로 거둘 수 있는 자리였다. 밭에는 자갈이 많았다. 좋은 땅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고구마는 잘되었고 콩과 깨도 심었다. 해마다 심는 작물은 달라졌지만 밭은 늘 우리 식구의 먹을거리와 이어져 있었다.
농사철이 되면 일손이 부족했다. 심을 때도 사람이 필요했고 풀을 뽑을 때도 손이 많이 갔다. 수확철에는 더 바빴다. 그래서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것보다 고구마밭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소 한 마리와 돼지도 키웠다. 먹이고 돌보는 데에도 손이 들어갔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면서도 살림은 늘 빠듯했다.
그런 집 뒤쪽에 농작물을 심지 않는 자투리땅이 하나 있었다. 높낮이가 조금 달랐고 돌도 많았다. 밭으로 쓰기에는 마땅하지 않은 땅이었다. 특별히 쓸모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곳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부터 돌을 하나씩 골라내기 시작했다. 손으로 집을 수 있는 돌은 주워 옮겼고 큰 돌은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흙이 부족한 곳에는 다른 곳에서 흙을 가져다 채웠다. 한꺼번에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손을 보았다.
꽃을 심고 싶었다.
농사를 짓는 밭 옆에서 꽃을 키운다는 것이 그때는 이상하지 않았다. 밭에서는 먹을 것을 키우고, 자투리땅에서는 꽃을 키우면 됐다. 꽃이 밥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손질한 자리에 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도 작은 자리가 있었다. 우리 집에는 대문이 따로 없어서 길에서 그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도 꽃을 심었다. 지나가다 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밭에서 하던 일과는 달랐다. 수확할 것도 없었고 팔 것도 없었다. 그저 내가 손을 댄 자리에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좋았다.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옆집의 돌담이 이어져 있었다. 대문이 따로 있는 길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그 돌담을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길이 그냥 지나가는 길로만 보이지 않았다.
돌담을 따라 채송화 씨를 뿌렸다. 흙이 있는 곳에는 코스모스도 심었다. 씨를 뿌리고 나면 며칠 동안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지나갈 때마다 흙을 들여다보았다. 싹이 올라오는지, 비가 온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살폈다.
여름이 지나고 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하면서 길의 모습도 달라졌다. 채송화가 낮게 피어나고 코스모스가 그 사이에서 키를 올렸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이 되자 코스모스가 더 많이 피었고 채송화도 남아 있었다.
돌담을 따라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꽃으로 이어졌다.
먹을 것을 키우는 밭과는 달랐다. 누가 돈을 주고 사갈 것도 아니었고, 수확해서 집안 살림에 보탤 것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꽃을 보았다. 내가 뿌린 씨앗과 심어놓은 꽃이 계절을 따라 자리를 채워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 좋았다.
집 안에도 내가 마음을 둘 수 있는 곳이 하나 생겼다.
부엌 한쪽 귀퉁이에 작은 창고방이 있었다. 부엌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다. 평소에는 물건을 넣어두는 곳이라 방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했다. 그 방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없었다. 꽃을 바라볼 수 있는 창도 없었다. 작은 쪽창이 하나 있었지만 열고 닫을 수 없는 창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곳을 내 공간처럼 여기며 지냈다.
어느 때인가 그 방의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도 바꾸었다. 창고처럼 쓰던 곳이 조금씩 방의 모습을 갖추었다. 나는 그곳을 혼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좁았다.
그래도 좋았다.
부엌을 지나야 하는 불편함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문을 닫으면 혼자 있을 수 있었고, 밖으로 나가면 내가 손질해 놓은 곳을 볼 수 있었다.
집에는 방이 두 개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방 하나를 사용했고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와 함께 방을 썼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이 넓지 않았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밤에도 일을 해야 했다.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마치면 다시 안방 귀퉁이에 놓인 재봉틀 앞에 앉았다. 부엌은 장작불을 때는 재래식 아궁이를 쓰는 곳이라 신발을 신고 드나들었고 높이도 낮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할 때면 방 안에서 재봉틀을 돌렸다. 밤이 깊어 집 안의 불빛이 하나둘 줄어들어도 어머니는 재봉틀 앞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한지 문 너머로 비쳐 오는 실루엣으로 보곤 했다. 전등 아래 어머니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종이문 위의 그림자도 함께 흔들렸다. 발판을 밟는 발이 일정하게 움직이면 재봉틀이 덜컹거리며 돌아갔다. 바늘은 전등 아래에서 빠르게 오르내렸고 천이 조금씩 앞으로 밀려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기도 했다.
재봉틀 옆에는 밭에서 가져온 농산물이 놓여 있기도 했다. 콩을 거두어온 날에는 흙과 작은 돌을 골라냈고, 깨를 수확한 뒤에는 잘 말리고 털어야 했다. 고구마를 캐온 날에는 흙을 털어내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따로 골랐다. 밭에서 끝내지 못한 일이 집까지 따라 들어온 셈이었다.
어머니는 재봉틀 앞에 앉았다가 농산물 앞에 앉기도 했다. 콩을 한 움큼 가져다 놓고 손끝으로 하나씩 살폈다. 쓸 만한 것은 그릇에 담고 돌이나 상한 것은 옆으로 밀어냈다. 손에 흙이 묻어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와 콩이 그릇에 떨어지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바깥에서는 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이어졌고, 멀리서 개가 한 번 짖고 다시 조용해졌다. 집 안이 조용할수록 어머니의 손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이 더 크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작은 방에 앉아 있기도 했다.
집 안에서는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었고, 밖에는 내가 손질해 놓은 자리가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은 좁은 방 하나였지만 그 안에 있으면 다른 곳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방을 오래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난방이 되지 않아 겨울에는 추웠고, 집안 사정에 따라 다시 창고로 쓰이기도 했다. 길어야 두세 달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시간이 좋았다.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 밖으로 나가 내가 심은 꽃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집 옆 밭에서는 고구마와 콩과 깨를 키웠다.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집 뒤쪽과 입구의 작은 자리에는 내가 보고 싶은 꽃을 심었다. 그리고 옆집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채송화 씨를 뿌리고 코스모스를 심었다.
가을이 오면 돌담을 따라 꽃이 피었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고 낮은 곳에서는 채송화가 피어 있었다. 돌담을 따라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전과는 달라 보였다. 나는 그 길을 지나면서 꽃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때는 내가 왜 그런 일을 좋아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먹을 것을 키우는 밭 옆에 꽃이 있는 모습이 좋았고, 내가 손을 댄 자리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좋았다. 돌을 골라내고 흙을 채운 곳도 그랬고, 씨를 뿌리고 꽃을 심었던 길도 그랬다.
지금도 가끔 그 길이 떠오른다.
옆집 돌담을 따라 걷던 길, 그 길에 피어 있던 채송화와 코스모스, 집 뒤쪽의 작은 자리와 대문 없이 들어오던 입구가 한꺼번에 떠오른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꽃길은 특별한 길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지나가는 자리에서 꽃을 볼 수 있고, 잠시 멈춰 바라볼 수 있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