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밤늦게 아버지의 담배가 떨어져 심부름을 간 적이 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조금 높은 곳에 있었고 담배가게는 그보다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낮에는 익숙한 길을 따라가면 되는 거리였지만, 밤에는 호롱불을 들고 길을 나서야 했다. 아버지에게서 “담배 좀 사 와라”라는 말을 들으면 호롱불부터 챙겼다.
집을 나서면 익숙한 길이 이어졌다. 호롱불을 조금 높이 들면 몇 걸음 앞의 길이 희미하게 보였고, 그 너머는 어둠이었다. 낮에는 주변 집과 나무, 논과 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밤에는 불빛이 닿는 곳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논 옆을 지나는 길에서는 자연스럽게 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길 가장자리와 논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아 발밑을 살피며 걸었다. 호롱불을 앞으로 내밀어도 몇 걸음 앞까지만 보였다. 그 너머는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면 걸음을 멈추었다. 무엇이 움직이는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인지 작은 동물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기다리면 다시 조용해졌고,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개가 짖었다. 한 집에서 짖던 개가 잠잠해지면 다른 곳에서 또 개가 짖었다. 낮에는 눈으로 보면서 지나던 집들이 밤에는 소리로 느껴졌다. 어느 방향에서 들리는지 귀를 기울이며 걸었다.
산 쪽에서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크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작은 동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멀리 담배가게의 작은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이 눈에 들어오면 마음이 놓였다. 가게에 들어가 담배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마음이 조금 편했다. 이미 지나온 길이었고, 가게에서부터 집까지의 방향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호롱불이 비추는 범위는 여전히 좁았다. 몇 걸음 앞을 확인하고 다시 걷는 일을 반복했다.
집에 도착해 담배를 아버지에게 건네면 심부름은 끝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담배가 떨어지면 사러 가는 것이고, 밤이면 호롱불을 들고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밤길을 몇 번씩 오가다 보니 낮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기억에 남았다. 풀숲에서 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작은 불빛이었다.
지금은 밤에도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이 길을 밝혀준다. 멀리 있는 곳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때처럼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몇 걸음 앞을 살피며 걸을 일은 거의 없다.
가끔 불빛이 거의 없는 길에 서면 그 시절의 밤이 떠오른다. 집을 나서 호롱불을 들고 걷던 길과 논 옆의 어둠, 풀숲에서 들리던 소리, 멀리서 보이던 작은 가게의 불빛이 차례로 생각난다.
호롱불 하나가 밝혀주는 곳은 몇 걸음뿐이었다. 그 작은 불빛을 따라 나는 밤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