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보는 버릇

by이룸

어릴 때부터 나는 눈에 들어오는 것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산에 나무하러 가는 길에도 발밑의 돌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걸음을 늦췄고, 풀 사이에 처음 보는 것이 있으면 몸을 낮춰 들여다보았다. 이름을 모르는 것은 더 궁금했다. 꼭 이름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알 필요도 없었다.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한동안 바라볼 만했다.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바위틈에 붙어 있는 작은 식물을 발견한 적이 있다. 잎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끝이 뾰족했고, 마른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그것이 바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이름조차 몰랐다. 날씨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것도 신기했다. 마른날에는 잎을 오므리고 있다가 비가 오거나 습기가 많아지면 다시 펼쳐졌다. 작은 식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왔다. 산에서 보았던 것처럼 돌이 많은 곳에 심어두면 잘 자랄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잎이 시들기 시작했다. 물을 주고 살펴보았지만 살아나지 않았다. 한동안 그 앞에 앉아 시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산에 그대로 두었으면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산에서 이름 모를 풀이나 꽃을 만나면 쉽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지도 않았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모양을 살피고 잎의 생김새를 들여다보았다. 가져오지 않아도 궁금한 것은 그대로 궁금했다.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다시 만난 적도 있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방학 숙제로 개미를 주제로 한 과제를 가져왔다. 아이는 개미에 대해 무엇을 탐구할지 생각하다가 ‘개미는 멀미를 하는가’라는 제목을 정했다. 개미에게도 멀미가 생기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질문을 듣고 나도 직접 살펴보고 싶어졌다.

산에서 큰 검은 개미 세 마리를 잡아와 종이로 작은 길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놓았다. 종이를 움직이면 개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한참 들여다보았다. 개미가 방향을 바꾸고 더듬이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마당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개미굴을 바라보던 때가 떠올랐다.

그런데 개미를 바라보는 일이 늘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우리 집과 같은 건물 아래층에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우리 집은 옥상층이었는데, 어느 때부터 할아버지가 옥상에 큰 통 일곱 개를 갖다 놓고 산에서 가져온 흙을 채워 채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통마다 거름도 넣었다. 창문을 열면 옥상에서 올라오는 분뇨 냄새가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아야 할 때도 있었다.

다음 해부터 집 안에서 개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가 늘었다. 벽이나 바닥을 따라 움직이는 개미를 발견하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따라가 보았다. 틈을 막아도 며칠 지나면 다른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나는 개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며 주변을 살폈다. 집 안의 틈을 지나 밖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찾고, 개미들이 어디에서 몰려오는지 지켜보았다. 그러다 옥상에 놓인 통 주변에서 개미가 많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산에서 가져온 흙을 담아 채소를 키우던 그곳과 개미의 움직임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통을 치워달라고 이야기했다. 신고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이웃과는 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불편한 마음이 있어도 참고 지냈다.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는 병원과 요양시설을 오가게 되었고,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옥상의 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결국 내가 치우기로 했다.

자루를 준비하고 흙을 하나씩 퍼냈다. 통을 비우기 시작하자 흙 속에서 개미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작은 몸들이 흙 위로 흩어지고 서로 뒤엉키며 움직였다. 개미가 붙어 있는 흙을 따로 모으면서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어릴 때는 개미 한 마리를 붙잡아 놓고도 궁금해서 오래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개미를 없애기 위해 흙을 퍼내고 있었다. 같은 개미를 바라보면서도 그때와 지금의 마음은 달랐다.

나는 개미가 섞인 흙을 산으로 가져갔다. 그냥 버리면 그 안에 있던 개미까지 함께 죽을 것 같았다. 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흙과 함께 다시 바깥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바위손을 가져왔던 일도 그때 떠올랐다. 궁금하다는 이유로 손을 뻗어 집으로 가져왔고, 결국 그 식물은 시들었다. 개미도 그랬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고 싶었던 마음과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던 마음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다.

그 뒤로도 산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꽃을 만나면 걸음을 늦춘다. 바위틈에 풀이 올라오면 잠시 들여다보고, 오래된 나무를 만나면 뿌리가 땅을 붙잡은 모양을 살핀다. 이름을 몰라도 그대로 지나가지 못하는 것은 어릴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미 한 마리에서 시작된 궁금증도, 바위틈에서 만난 작은 식물도, 돌담을 따라 피었던 꽃도 그렇게 내 눈을 붙잡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걸음을 늦춘다.

그리고 한 번 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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