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개미굴 앞에 앉는다면

by이룸


어릴 적 우리 집 마당 한쪽에는 개미굴이 있었다.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마당의 어느 모퉁이였는지, 담장 가까이였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흙바닥에 작은 구멍 하나가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자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개미 한 마리가 구멍 밖으로 나왔다. 잠시 뒤 또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개미는 작은 것을 물고 있었고, 어떤 개미는 빈 몸으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부딪히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참 밖에서 움직이다가 다시 흙 속으로 사라지는 개미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때는 시계를 보며 시간을 재지 않았다. 누가 부르면 일어났고, 배가 고프면 집으로 들어갔다. 개미를 오래 바라본다고 해서 칭찬을 받는 것도, 학교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앞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잘 갔다.

저 작은 구멍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개미들은 어디에서 지낼까. 저렇게 작은 몸으로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물어볼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답답하지도 않았다. 모르는 채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분히 머물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장면은 남아 있다. 개미굴의 위치와 마당의 흙빛은 흐릿해졌지만, 작은 구멍을 드나들던 개미들의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이 꼭 중요한 일만 붙잡아두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머니가 장구를 치던 모습과 돌담 아래 심어놓은 꽃도 떠오른다. 산에서 내려오다 무덤 곁에 기대어 쉬던 밤에는 구름이 걷히면 별들이 보였다. 북두칠성과 금성이 눈에 들어오면 나는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꽃이 피면 꽃을 보고, 비가 오면 비를 보았다. 이름을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남아 있었다.

나중에 바카라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를 알게 되면 그 안에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바카라은 답을 알려주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까지 데려왔다. 내가 알던 세계 바깥에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지금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금방 찾아볼 수 있다. 바카라을 구하느라 기다릴 필요도 없고, AI에게 물으면 복잡한 설명도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되어 돌아온다. 편리해진 만큼 알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그런데 가끔은 어린 시절의 느린 시간이 그립다. 답을 찾지 못해도 한동안 궁금해할 수 있었던 시간, 별다른 목적 없이 무언가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돌아서던 시간 말이다.

지금도 길을 걷다가 오래된 나무를 만나면 잠시 바라보고, 담장에 남은 흔적을 보면 누가 이곳을 지나갔을지 생각한다. 오래된 집의 창문 앞에서는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잠깐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매번 그 흔적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기억은 흐릿한 채로 남아 있어도 괜찮고, 어떤 궁금증은 끝내 답을 얻지 못해도 그 자체로 내게 남는다.

어린 시절의 개미굴도 그렇다. 어디에 있었는지, 몇 살 때였는지, 무엇을 하다가 그 앞에 앉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작은 구멍 하나와 그 주변을 오가던 개미들은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때의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한동안 그 앞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아마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 개미굴 앞에 쪼그리고 앉을 것이다. 이번에도 개미의 종류를 알아내려고 서두르지는 않을 것 같다. 한 마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다른 한 마리가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것이다. 흙을 발끝으로 건드리지도, 손으로 구멍을 막지도 않고 조금 떨어져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누군가 나를 부르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뒤를 돌아볼지도 모르겠다. 내가 떠난 뒤에도 개미들은 아까처럼 작은 구멍을 드나들고 있을까.

평생 궁금한 것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이제는 모든 궁금증을 끝까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은 바카라 속에서 답을 얻고, 어떤 것은 직접 보고 확인한다. 또 어떤 것은 이름을 얻지 못한 채 기억 속에 남는다. 한 번 눈길을 주고 마음을 기울였던 시간은 그렇게 오래 남기도 한다.

어린 내가 개미굴 앞에 앉아 있던 것처럼, 나이가 든 지금도 나는 가끔 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바라본다. 그때의 작은 구멍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 굳이 한마디로 정리하지 않아도 좋겠다. 다만 아무런 쓸모를 따지지 않고 오래 바라보았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 다시 개미굴 앞에 앉는다면, 나는 서둘러 답을 찾기보다 개미 한 마리가 구멍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먼저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움직임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조금 더 오래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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