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궁금해하며 살 것인가

by이룸

요즘은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일이 어렵지 않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궁금한 것을 검색할 수 있고, AI에게 물으면 복잡한 내용도 짧은 시간 안에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바카라을 찾아야 했던 일도, 사람에게 물어야 했던 일도 이제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정보가 부족해서 답을 찾기 어려웠던 때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답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된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을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궁금해할 것인지 고르는 일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부모님에게 물어도 대답을 듣기 어려웠고, 집에는 읽을 바카라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름을 모르는 꽃을 보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작은 식물을 보면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비가 그친 뒤에는 물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지 따라가 보았고, 밤이 되면 별을 올려다보며 저 멀리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했다.

그때는 그것을 호기심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냥 궁금했다. 궁금하니 바라보았고, 답을 모르니 또 바라보았다.

바카라을 읽을 수 있게 된 뒤에는 그 질문들을 바카라으로 가져갔다. 한 권을 읽으면 또 다른 바카라이 필요했고, 바카라장을 넘기다 보면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별을 궁금해하다가 옛사람들이 하늘을 어떻게 관찰했는지 찾아보게 됐고, 자연을 바라보다가 나무와 식물에 관한 바카라을 읽었다. 바카라은 내 질문에 답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답 뒤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질문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간을 설계하면서부터는 질문의 대상이 조금 달라졌다. 문과 창문, 의자와 조명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게 됐다. 같은 의자라도 누구는 편하게 앉고 누구는 몸을 조금 고쳐 앉았으며, 같은 통로에서도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잠시 멈춰 몸을 비켜야 했다. 도면의 숫자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공간을 설계하는 일이 결국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집을 설계할 때는 그곳에서 누가 하루를 시작하고 어디에서 오래 머무는지 살폈고, 상업공간을 볼 때는 사람들이 어느 시간에 들어오고 어디에서 멈추는지를 관찰했다. 같은 장소라도 시간과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면서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또 한 번 달라졌다. 걷고 일어나고 먹고 씻고 옷을 입는 것처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동작도 누군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오래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익숙한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릴지를 살펴보게 됐다.

그래서 나는 아직 노인이 되기 전에 요양보호사 공부를 한번 해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자격증을 따서 일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내게는 준비된 노년생활을 위한 공부에 가깝다. 부모를 돌보는 입장이 될 수도 있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미리 알아두는 것 역시 노년을 준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오래 궁금해했던 것들은 대부분 당장 쓸모가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개미가 어디로 가는지, 나무뿌리가 왜 땅 위로 드러나는지, 비가 그친 뒤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별은 얼마나 멀리 있는지 같은 질문이었다. 그것들이 당장 공부나 일에 도움이 된 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경험과 만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쓸모없는 호기심’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됐다.

쓸모가 있다는 것은 대개 당장 결과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모두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한때 아무 의미 없이 바라보았던 것이 몇 년 뒤 다른 경험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오래전에 읽었던 한 문장이 어느 날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 남아 있던 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다.

AI가 있는 지금은 그런 과정을 조금 더 의식하게 된다. 답은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무엇을 궁금해할지는 여전히 내가 정해야 한다.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그 질문이 정말 내가 알고 싶은 것인지, 답을 얻은 뒤 무엇을 다시 살펴볼 것인지는 AI가 대신 정해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검색하고 AI에게 묻는다. 다만 그 답을 그대로 내 생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본 것과 맞는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부분은 무엇인지, 설명에는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지를 다시 살펴본다. 답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답과 현실 사이에는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무엇을 궁금해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는지도 모른다.

거창한 질문일 필요는 없다. 오래된 건물의 창문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고, 늘 지나던 길에서 사람들이 유난히 한쪽으로만 걷는 이유를 살펴볼 수도 있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은 일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면 그 말의 옳고 그름부터 판단하기보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잠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질문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느냐에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작은 것에 오래 시선을 두는 버릇이 있었다. 바위손을 보고 집으로 가져왔고, 나무뿌리가 드러난 것을 보면 흙을 덮어주었다. 꽃이 피는 길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보고 싶어 돌을 골라내고 흙을 채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궁금해서 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을 바라보는 눈이 되었고, 사람의 생활을 살피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사람의 생각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는 질문 하나가 오래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다른 경험과 만난다. 그때 비로소 그 질문이 왜 내 안에 남아 있었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며 살 것인지 정해놓지는 않았다.

새로운 공간을 만나면 공간이 궁금할 것이고, 낯선 물건을 보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할 것이다. 오래된 나무를 만나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산길에서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를 만나면 예전처럼 걸음을 늦출 수도 있다.

모든 질문에 답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 두는 것도 이제는 불편하지 않다.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이 있다고 해서 내 삶이 부족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은 답보다 그 질문을 품고 있었던 시간이 더 오래 남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답이 부족해서 바카라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답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들여다볼 것인지 골라야 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내게 남은 버릇 하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눈앞의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데서 한 번 더 멈추는 것,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평생 해온 일도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마당 한쪽의 개미굴을 바라보던 아이에서 바카라장을 뒤지던 학생으로, 공간을 살피는 설계자로, 사람의 몸과 생활을 공부하는 나이 든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질문의 대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한 번 더 들여다보았고, 답을 얻은 뒤에도 다시 확인했다.

이제 그 앞에 AI가 있다.

내가 묻기도 전에 답을 내놓을 만큼 빠른 존재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답을 얻기 전에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려고 한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무엇을 더 알고 싶은지 생각한 뒤에 묻고 싶다.

무엇을 궁금해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직 그 답을 정하지 않았다.

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궁금한 것은 살아가면서 계속 달라질 테니까.

오늘은 별이 궁금할 수도 있고, 내일은 오래된 문 하나가 마음에 걸릴 수도 있다. 어느 날에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오래 남을 수도 있다.

그렇게 질문이 생길 때마다 잠시 걸음을 늦추면 된다.

그리고 한 번 더 바라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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