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물으면 답이 돌아온다. 궁금했던 단어의 뜻도, 오래된 건물의 용도도, 어떤 현상이 생기는 이유도 몇 초 안에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예전에는 바카라을 찾아야 했고, 바카라에서 다시 다른 바카라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그 과정이 손바닥 안에서 끝난다.
AI가 생활 속으로 들어온 속도도 빠르다.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증권에 관한 판단을 참고하는 일에도 AI가 쓰인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건 AI에게 물어보면 되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글쓰기와 디자인도 달라졌다. 질문을 던지면 문장이 만들어지고, 공간의 조건을 설명하면 여러 디자인 이미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편리한 변화인데도 가끔 마음이 묘해진다. AI가 몇 초 만에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나는 왜 이렇게 오래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블로그를 잠시 쉬고 있다고 후배에게 이야기했다. 온라인카지노 글쓰기와 함께 이어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였다. 후배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요즘은 AI한테 불러주면 글을 뽑아주잖아요. 십 분이면 원하는 글을 받을 수 있고, 수익도 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들게 쓰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AI의 도움을 받는다. 생각이 막힐 때 다른 방향을 살펴보기도 하고, 문장을 다듬거나 맞춤법을 확인하기도 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AI를 이용해 글을 쓰는 사람을 비판하고 싶지도 않고, 반대로 AI를 쓰지 않는 방식이 더 옳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글을 쓰는 사람마다 목적과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질문을 듣고 나니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가 다시 떠올랐다.
나는 처음부터 글을 잘 쓰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바카라을 내려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생각들을 꺼내놓고 싶었고, 지나온 세월의 기억도 하나씩 남겨두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려진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장면도 어느 순간 빈 곳이 생긴다. 그래서 생각날 때 붙잡아두고 싶었다.
어머니가 밤늦게 재봉틀을 돌리던 소리, 새벽 버스 창가에서 어둠 속 논과 밭을 바라보던 일, 어린 시절 마당 한쪽 개미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시간 같은 것들이다. 그때는 이런 장면들이 훗날 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간 일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려고 앉으면 이상하게도 그런 장면들이 하나씩 돌아온다.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한 문장을 적었다가 지우고, 다시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밤이 깊도록 다음 문장이 나오지 않아 빈 화면만 바라본 날도 있다. 그렇게 한참을 붙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문장 하나가 손끝에서 흘러나오면 앞에서 막혀 있던 생각까지 따라 움직인다. 머리를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 같은 순간이다.
그 기쁨이 있어서 다시 쓴다.
잘 쓴 문장이라서가 아니다. 내 안에 있던 생각 하나가 비로소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 좋다. 쓰는 동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된다. 기억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오래 남아 있던 감정이기도 하고, 별것 아니라고 지나쳤던 장면이 지금까지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내게 글쓰기는 완성된 글만을 뜻하지 않는다.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 자체가 글쓰기의 일부다.
디자인을 할 때도 비슷했다.
예전에는 디자인 아이디어 하나를 찾기 위해 마인드맵을 그렸다. 하얀 종이 한가운데 주제를 적어놓고 주변으로 가지를 뻗듯 단어를 이어갔다. 하나의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선을 연결하고 그 끝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종이 위의 가지가 늘어날수록 생각도 넓어지는 것 같았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잡히지 않는 날에는 아무리 선을 이어도 막막함이 가시지 않았다.
밤이 깊도록 펜을 놓지 못한 날도 많았다. 적어놓은 단어를 지우고 다른 단어를 붙여보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더 생각해 봐야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으면 종이를 덮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사무실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어느 날도 그랬다.
비가 내린 직후라 밤거리는 젖어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는 노랗게 젖은 은행잎이 도로와 보행자 길 사이의 경계석 가까이에 흩어져 있었다. 경계석은 빗물을 머금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낙엽은 그 옆에 붙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이 조금씩 움직였고 젖은 보도블록 위로 가로등 불빛이 길게 번졌다. 구두 밑창이 낙엽을 밟을 때마다 낮은 소리가 났다.
쩍, 쩍.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디자인 문제는 그대로였지만 그 순간에는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경계석을 보고 낙엽을 보고 젖은 길을 보고 발밑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새벽이면 청소차가 지나가 사라질 풍경이었지만 그날 밤에는 가로등과 빗물, 은행잎과 어두운 길이 하나의 장면으로 들어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풍경이 남았다.
그제야 마인드맵을 떠올렸다. 종이 위에서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며 생각을 넓혀갔지만 그날 밤 내가 만난 것은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비가 그친 거리의 냄새와 젖은 낙엽의 감촉, 구두 밑창에서 전해지는 소리, 가로등 아래의 빛과 어두운 길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바카라상 앞에서 애써 끌어내려고 했던 생각이 오히려 바카라상을 떠난 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셈이었다.
그때부터 디자인을 생각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답을 얻기 위해 머릿속의 가지를 계속 늘리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었다. 공간을 직접 걸어보고 사람이 어디에서 멈추는지 살피고, 빛이 어느 곳에 머무는지 보고, 같은 장소가 시간과 날씨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바라보았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과 다른 것을 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설계도면을 그릴 때도 비슷했다. 도면에 적힌 치수는 틀리지 않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불편이 생겼다. 통로 폭은 숫자로 충분해 보여도 사람이 마주치면 서로 몸을 틀어야 했고, 의자의 높이는 기준에 맞는데도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했다. 숫자가 틀린 것이 아니라 도면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있었던 셈이다. 사람의 움직임과 습관처럼 실제 공간에서만 드러나는 것들이 있었다.
AI가 내놓는 답을 바라볼 때면 그 경험이 떠오른다.
AI는 막혀 있는 곳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빠르게 내놓는다. 글의 방향을 잡아주기도 하고 디자인의 개념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전처럼 빈 종이를 앞에 놓고 한참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답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날 걸었던 길의 젖은 냄새도, 은행잎을 밟던 구두 밑창의 소리도, 답을 찾지 못해 늦은 밤까지 고민했던 시간도 들어 있지 않다. 그것은 내가 직접 지나온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을 받으면 그대로 넘기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맞는지, 실제로 본 것과 다른 부분은 없는지, 처음 질문할 때 빠뜨린 조건은 없었는지를 다시 살핀다. 매끄러운 문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 말이 되는 것은 아니고, 보기 좋은 디자인이라고 해서 실제 공간에서도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AI에게 내 생각을 설명하고 몇 초 만에 잘 정리된 문장을 받을 수 있지만, 다시 읽다 보면 내가 오래 망설였던 시간이나 실제로 지나온 장면이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문장은 매끄러운데 내 말 같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고치거나 지운다. 때로는 AI가 만들어준 문장보다 조금 서툰 내 문장을 남겨둔다. 그 문장에는 내가 고민했던 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AI가 너무 잘해서 불안할 때도 있다. 글도 이미지도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고, 앞으로 디자인과 글쓰기에서 AI를 사용하는 일은 더욱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비슷한 질문을 하고 비슷한 답을 받는다면 결과물도 서로 닮아갈 수 있다. 그 안에서 누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점점 알아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다. 마인드맵을 그리며 밤늦게까지 고민했던 시간과 지금의 AI는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서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고, 그 답을 내 경험과 맞혀보면서 내가 받아들일 것과 버릴 것을 판단하면 된다.
어릴 때는 답이 없어서 바카라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답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AI에게 답을 얻는 일은 쉬워졌지만 그 답을 내 경험 속에 가져와 다시 생각하고 내 말로 바꾸는 시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곳에 있는지 모른다. 쉽게 얻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내가 지나온 장면과 맞춰보고, 그 안에 남아 있는 내 생각을 찾아내는 것. 오래 생각하고 지우고 다시 쓰는 동안 문장 하나가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
나는 그 시간을 건너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