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채 두는 용기

by이룸

예전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답을 찾아야 마음이 놓였다. 바카라을 펼치고 사람에게 묻고 직접 확인했다. 어린 시절에는 바카라 한 권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어렵게 바카라을 손에 넣으면 궁금했던 것부터 찾아 읽었다. 알게 된다는 것은 내 안에 비어 있던 한 칸을 채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산에서 이름 모를 풀을 만나면 그 이름이 궁금했고, 별을 올려다보면 우주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고 싶었다. 바위틈에 자라는 작은 식물을 보면 왜 하필 그곳에서 살아가는지 생각했다. 바카라을 읽을 수 있게 된 뒤에는 궁금증을 따라가며 하나씩 답을 찾아갔다. 하나를 알면 또 다른 것이 궁금해졌고, 그때마다 바카라장을 넘겼다. 그렇게 알고 싶은 것을 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오래된 집을 지나가다 창문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왜 저 위치에 냈을까 생각한다. 벽에 남은 흔적을 보면 그곳에서 어떤 생활이 이어졌을지 짐작해 본다. 하지만 닫힌 문 앞에서는 멈춘다. 안쪽이 궁금하다고 문을 열어볼 수는 없다. 밖에서 볼 수 있는 만큼 보고 지나간다.

공간을 설계할 때도 비슷했다. 도면에는 문과 벽, 가구의 위치가 정해져 있지만 실제 공간에 사람이 들어오면 예상하지 못했던 움직임이 나타난다. 같은 의자에 앉아도 누구는 깊숙이 기대고 누구는 앞쪽에 걸터앉는다. 통로가 충분해 보여도 어떤 사람은 한쪽으로 몸을 비켜 지나간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공간을 다시 살폈다. 모든 행동의 이유를 캐내기보다 무엇이 불편한지를 찾았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와 반복되는 움직임이 공간을 이해하는 단서가 됐다.

그러면서 사람에게도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누군가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예전에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계속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모르는 시간이 그 사람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범위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쉽다. 내가 겪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은 겪었을 수 있고, 같은 일을 겪어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 차이를 모두 알아내려 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이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그대로 남겨두기도 한다.

모르는 것을 그대로 두는 일이 처음부터 편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은 빈 곳에 이유를 채우고 싶어 한다. 한 번 본 표정에 사정을 붙이고, 짧은 말 한마디에 의미를 더하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한 이야기는 내가 만든 것일 뿐 실제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려 한다. 내가 본 것은 여기까지이고, 그 뒤는 모른다. 그렇게 선을 그어놓으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다.

자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모르는 꽃을 만나면 잠시 바라보다 지나간다. 이름을 알아야 아름다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된 나무를 만나도 나이를 굳이 계산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면 그저 오래된 나무로 기억한다. 모른다는 사실이 그 풍경을 부족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어릴 때 별을 보며 품었던 궁금증도 여전히 남아 있다. 북두칠성과 금성을 찾아보면서 우주는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은 얼마나 되는지, 다른 곳에도 생명이 있는지 생각했다. 훗날 일본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일본어 사전을 옆에 두고 며칠씩 읽었다. 나중에는 한국어판도 구해 읽었지만 처음 바카라장을 넘겼을 때의 감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많은 것을 알게 됐는데도 처음의 궁금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를 알게 되면 그 뒤에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답을 얻는다고 궁금증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질문에 답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직접 찾아볼 수 있고, 어떤 것은 사람에게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오래 궁금한 채로 남겨두어도 된다. 닫힌 문 앞에서 안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고, 이름 모를 꽃을 이름 모른 채 바라보는 순간도 있다.

모르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다. 내가 닿지 못한 영역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남겨두면 세상을 바라볼 여지가 생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완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도 한 번 보고 전부 알 수 없었다. 시간과 사람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다시 찾았을 때 드러난다. 그래서 한 번의 관찰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의 만남, 한마디의 말, 한순간의 표정으로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도 여전하고, 바카라을 읽다가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찾아본다. 다만 이제는 답을 얻지 못한 채 바카라장을 덮는 일도 자연스럽다.

산길에서 이름 모를 풀을 만나면 잠시 바라본다. 오래된 집의 닫힌 문 앞에서는 그 안을 상상해 본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직도 우주의 끝이 궁금하다. 그러나 그 끝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모르는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내가 바라볼 것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 모르는 채 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고, 알 수 없는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 그것도 오래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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