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세상은 바카라보다 먼저 말을 걸었다
어릴 때의 밤은 지금과 달랐다. 지금도 시골에 내려가면 불빛이 적은 하늘을 만날 때가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밤과는 느낌이 다르다. 하늘을 가로질러 비행기가 지나가고, 멀리 작은 불빛 하나쯤은 남아 있다. 별도 보이지만 그때처럼 깊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밤은 단순히 어두운 밤이 아니었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소리마저 멀어진 듯한 고요 속에서 별이 반짝였다. 지금과 같은 별이었을 텐데 그때는 유난히 선명했다. 어둠이 깊으니 작은 빛 하나도 눈에 잘 들어왔다.
별 하나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 빛 너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울을 빼고는 저수지에서 수영을 자주 했다. 시간이 남는 밤이면 물에 들어갔다. 한참을 헤엄치다가 힘을 빼고 배영으로 몸을 띄우면 물에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물에 등을 대고 누우면 내가 움직이는 것은 거의 없었다. 팔과 다리에 힘을 풀고 몸을 물에 맡긴 채 하늘만 바라보았다.
저수지라는 같은 장소였는데 별은 늘 조금씩 달라 보였다. 계절이 바뀌면 보이는 별이 달랐고, 같은 계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별의 위치가 달라졌다. 어제 보았던 곳에 있던 별이 어느 날에는 다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궁금했다.
내가 움직인 것도 아닌데 별은 왜 자리를 옮겨 있을까. 저 별은 원래 저곳에 있었던 것일까. 밤이 깊어지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절이 바뀌면 왜 하늘의 모습도 달라질까.
수영을 하러 들어갔다가 별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날도 있었다. 물에 누워 있으니 하늘이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바라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북두칠성을 알고 있었다. 금성도 알아보았다. 다른 별보다 유난히 밝은 빛이 보이면 한동안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름을 아는 별이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늘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는 것이 적으니 모르는 곳이 더 넓었다.
그때부터 별의 위치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하늘을 보고 있는데도 어제와 오늘이 달랐다. 계절이 지나면 또 달라졌다. 내가 보는 쪽이 달라진 것인지, 별이 움직이는 것인지, 지구가 움직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으니 더 오래 보게 됐다.
그러다 바카라에서 혼천의(渾天儀)라는 것을 보게 됐다.
밤하늘의 별자리와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고 측정하기 위해 만든 천문 관측 기구였다. 둥근 고리들이 겹쳐 있는 모양도 신기했지만, 더 마음에 남은 것은 따로 있었다. 나처럼 별의 위치가 궁금했던 사람이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저수지 물에 누워 별의 위치가 왜 달라지는지 궁금해했는데, 옛사람들은 하늘을 오래 관찰하고 그 움직임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아내려고 했다. 혼천의는 그 궁금증이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일성정시의라는 것도 그때부터 눈에 들어왔다. 정확한 원리까지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옛사람들이 별과 해를 바라보면서 시간과 하늘의 움직임을 알아내려 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혼천의와 일성정시의를 알게 되면서 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역사로 이어졌다. 나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궁금해했던 옛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했는지가 궁금해졌다. 위인전에서 사람의 생애를 읽는 것보다, 한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알아갔는지를 따라가는 일이 더 재미있었다.
나는 그때 그것을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별 하나에서 시작한 궁금증을 따라가고 있었을 뿐이다.
어릴 때의 밤하늘은 미지의 세계였다.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별을 보는 일이 좋았다. 자연이 얼마나 큰지, 내가 얼마나 작은 지를 굳이 말로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눈앞의 어둠과 그 안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만으로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크기가 달라졌다.
지금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별의 이름도 검색할 수 있고, 행성의 크기와 거리도 알아볼 수 있다. 어느 계절에 어떤 별자리가 보이는지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바카라을 찾아야 했을 것들이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기억 속의 밤하늘은 여전히 지금보다 크다.
하늘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때와 같은 별이 같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그것을 바라보던 나다. 지금의 하늘에는 내가 아는 것이 많아졌고, 기억 속의 하늘에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그때의 별빛이 더 오래 남았는지도 모른다.
저수지 물에 등을 대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밤도 그렇다. 어제와 다른 별의 위치가 궁금했고, 계절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하늘이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혼천의와 일성정시의를 만나면서 오래전 사람들도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는 사실로 이어졌다.
생각해 보면 별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고,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
나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바라본 것은 별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별을 바라보며 같은 궁금증을 품었던 사람들의 시간까지 조금씩 궁금해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