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사 가는 길

맑은 물처럼 마음을 씻다

by진경수
“영하 11도의 강추위 속에서 능강교를 출발해 맑은 능강계곡과 눈 덮인 오르막을 따라 정방사에 닿는다. 석문과 해우소를 지나 고즈넉한 경내로 들어서고, 의상대 아래에서 청풍호와 월악산을 바라본 뒤 눈길을 따라 돌아오는 길.
맑은 물에 잡념과 허욕을 씻고, 근심을 내려놓은 무심에서 고요와 평안을 얻으며, 고통과 인생도 눈 위의 발자국처럼 머물다 사라짐을 배운 겨울 산행이다.”



DSC_0063.JPG정방사/사진 진경수



정상 : 정방사 450m

출발 : 능강교 주차장

거리 : 약 4.4km 왕복

주제 : 무심과 평안

산행일 : 2022. 12. 18.



정방사길.png





01. 맑은 계곡에서 마음을 씻다


DSC_0162.JPG능강계곡의 명경지수/사진 진경수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잡념과 허욕을 하나 둘 씻어내고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영하 11도의 공기는 살을 에지만 능강계곡의 물은 명경지수처럼 맑고 고요하다. 눈은 산길의 높고 낮음을 한빛으로 덮고, 흐르는 물은 아래의 돌까지 숨김없이 보여준다. 겨울의 차가움이 오히려 마음의 흐림을 걷어낸다.



“차고 신선한 공기가 코와 입으로 들어오면서 막힌 가슴을 활짝 열어젖힌다.”

가파른 오르막에서도 몸이 더디게 데워지지만, 한 걸음마다 마음은 가벼워진다. 삶에서 쌓인 걱정은 생각만으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고 자연의 숨에 나를 맞출 때, 닫혀 있던 마음에도 비로소 길이 열린다.




DSC_0153.JPG용마를 닮은 수빙(樹氷)/사진 진경수



“근심과 걱정을 훌훌 털어버린 무심으로 경내에 들어선다.”

석문을 지나 해우소라는 이름 앞에서 마음에 오래 지닌 근심을 돌아본다. 문 하나를 지나며 걱정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지만, 내려놓겠다는 마음은 이미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된다.


무심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욕심과 판단에 끌려가지 않고 지금 만나는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좁은 석문을 지나 넓은 경내로 들어서듯, 붙잡고 있던 생각을 놓으면 마음에도 자리가 생긴다.




02. 낮아짐에서 깊은 평안을 얻다


DSC_0096.JPG지장전에서 바라본 청풍호와 월악산/사진 진경수



“하늘보다 높은 것은 도리어 아래로 내려가고, 맑은 물은 깊어질수록 검어진다.”

원통보전의 주련은 높음과 깊음의 이치를 들려준다. 참으로 높은 것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아래로 향하며, 깊은 것은 밖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거대한 바위 아래 낮게 자리한 산사의 모습이 그 뜻을 말없이 보여준다.



“경이로운 자연과 고즈넉한 산사가 주는 마음의 고요와 평안이 추위를 몰아낸다.”

원통보전 앞마당에 서면 청풍호를 둘러싼 산줄기와 멀리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의 장엄함 앞에서 개인의 근심은 작아지고, 산사의 침묵 속에서 마음은 제자리를 찾는다. 밖의 추위는 그대로이지만 안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DSC_0104.JPG금수산이 지키는 관음보살/사진 진경수



오래도록 풀지 못한 숙제가 한순간에 해결된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답은 어느 순간 생긴 것이 아니라, 번잡한 생각이 사라지자 이미 마음 안에 있던 길이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고요는 문제를 없애기보다 문제를 바라보는 자리를 바꾸어준다.


산사는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곳이라기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바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욕심이 걷힌 뒤에도 남는 바람이라면 그 바람은 삶을 움직이는 소망이 되고, 놓아도 되는 바람이라면 비움이 곧 응답이 된다.




03. 눈 위의 발자국처럼 흘려보내다


DSC_0131.JPG눈 위의 발자국/사진 진경수



“눈에 새겨진 발자국은 얼마 가지 않아 녹아서 사라질 것이다.”

하산길의 벤치는 많은 눈을 품은 채 묵묵히 주인을 기다린다. 눈 위에 남은 발자국도 햇빛을 만나면 녹고, 다시 내리는 눈에 덮이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영원할 것 같던 자국도 자연의 시간 안에서는 잠시 머물 뿐이다.



“고통도 인생도 이와 같아 잠시 왔다가 사라져 가는 것이다.”

괴로움 속에 있을 때는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고통도 기쁨도 한 계절의 발자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라짐은 허무가 아니라, 지금의 고통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위안이다.




DSC_0140.JPG고통도 인생도 걸음처럼 지나간다/사진 진경수



돌아오는 길에 만난 금월봉은 한때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이었다. 평범한 야산 속 기암괴석을 소중한 자원으로 바라본 사람이 있었기에 작업은 멈추고 자연은 보존되었다. 같은 대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라질 대상이 보물이 되기도 한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처럼 삶의 풍경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맑은 계곡을 보며 마음을 씻고, 해우소에서 근심을 내려놓고, 산사의 고요 속에서 평안을 얻은 뒤, 사라질 발자국 앞에서 집착을 놓는다. 정방사길은 더 많이 얻는 길이 아니라 마음을 맑게 비우는 길이었다.



금월봉.jpg금월봉/사진 진경수



산이 남긴 질문

나는 마음속에 오래 붙잡은 어떤 근심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지금의 고통도 눈 위의 발자국처럼 지나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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